이낙연 총리 "일본이 수출규제 철회 땐 재검토"… 아베 주변선 '강경론' 우세 분석
  • ▲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이낙연(가운데) 국무총리,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이낙연(가운데) 국무총리,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오는 2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나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를 표명할 예정이다. 특히 '11월 내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상 간 신뢰 회복'이 성사될지 관심이 모인다.

    이 총리는 18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일본이 수출규제 강화를 철회하면 재검토할 수 있다"면서 "양국 관계가 (규제강화가 발동된) 7월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양국이 협력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양국 정상이 역사적 의무라 생각하고 (한일 갈등을) 해결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며 자신이 심부름꾼 역할을 하겠다고도 밝혔다. 지소미아 복원과 수출규제 조치 철회를 동시에 타결하는 방안을 시사한 것이다.

    11월22일까지 지소미아 철회 기한

    정부는 악화일로에 빠진 한일관계를 개선하고자 이번 이 총리의 방일을 계기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1월 한일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은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철회할 수 있는 기한이 11월22일인 것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 이번 갈등을 촉발한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한 구체적 해결 방안은, 타협점을 찾기 어려운 실무협상보다 정상 간 신뢰 구축 이후 '톱 다운' 방식으로 실무 외교 채널을 통해 본격 조율하겠다는 것이다.

    이 총리는 징용문제 해결과 관련해선 문 대통령이 "굳은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남관표 주일대사는 더 나아가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문제에 대해 열린 자세로 협의할 수 있다"는 점을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강조했다.

    남 대사는 "제한을 두지 않고 대화할 수 있다"며 "한국 정부가 배상에 좀 더 기여할 수 있다. 해결의 길이 보인다면 조건 없이 회담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겠다. 일본이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일본 신문은 한국 정부가 배상을 위한 펀드에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이 '지소미아 해결' 압박한 듯

    우리 정부의 전향적 입장 변화는 미국이 한일 지소미아를 복원해야 한다는 강력한 신호를 연이어 발신한 것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이 이수혁 주미대사 지명자의 아그레망을 두 달 넘게 해주지 않은 것도 지소미아 파기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북한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협상 종료 이후 연일 강경발언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한ㆍ미ㆍ일 안보공조를 위한 한일 지소미아 유지를 강력하게 희망한다. 미 전문가들은 "한일 갈등이 세계경제에도 악영향을 준다"며 조속한 해결을 강조한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최근 빈번하게 미일 카운터파트와 접촉하고 있다.

    하지만 '수출규제 철회 시 지소미아 회복'이라는 우리 정부의 기대는 단순한 망상에 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견해를 고수한다. 이에 맞서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부당한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철회하라는 요구로 맞섰는데, 협상을 위해 한 발 물러선다 해도 크게 양보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우리 기업과 일본 기업이 함께 배상하는 '1+1'안 외에 추가적인 협의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본은 이에 응하지 않는다.

    日 총리관저 "한국에 더 강한 조치 해야"

    일본의 방침은 강경하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총리관저 측은 한국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정권에 플러스로 작용할 것이라는 계산도 했다.

    이들은 "싸움은 첫 한 방을 어떻게 때리는지가 중요하다. 국내 여론도 따라온다"며 수출규제 등 한국에 대해 강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 주변에서는 "일한문제가 지지율을 밀어올렸다. 일한 쌍방의 여론이 '더 하라'고 과열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여론 악화로 수세에 몰린 문재인 정부의 상황을, 일본 정부가 감안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언론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국내 갈등 상황을 연일 주요 뉴스로 다루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요미우리신문은 지난달 한국의 '조국 사태'에 대해 검찰과 청와대 전면 대결이라는 제목을 뽑아 조 전 장관 의혹을 둘러싼 검찰 수사를 자세히 다루기도 했다.

    아베 총리가 최근 한일 간 대화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일본의 방침 변화 가능성을 키우지만,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두 정상이 만났음에도 아무런 성과가 없을 경우 한일 갈등의 골만 더 깊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오히려 만나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가 우려된다.

    우리 정부의 '외골수' 같은 외교정책에 대해 야권에서는 비판이 나온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전날 당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지긋지긋한 이념정책을 당장 중단하시라"며 "대한민국은 대통령과 좌파 이념집단의 소유물이 아니라  영속되어야 하는 국민들의 나라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문 대통령의 지난날에 대한 집착이 반일 선동을 가져왔다"며 "그런데 걱정할 일은 지난 100년이 아니라 자신이 집권한 지난 3년의 세월이다.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는 지지자 결집 행위 말고 책임질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