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단체 "이게 '사람이 먼저다'라는 정부냐"… "'과잉복지' 서울서 탈북민 굶어죽는데도 언급 없어"
  • 아사 탈북민 고(故) 한성옥 모자(母子) 추모·장례위원회는 광화문 4번 출구에 한씨 모자를 위한 분향소를 마련했다. ⓒ 박성원 기자
    ▲ 아사 탈북민 고(故) 한성옥 모자(母子) 추모·장례위원회는 광화문 4번 출구에 한씨 모자를 위한 분향소를 마련했다. ⓒ 박성원 기자
    탈북민 사회단체가 '탈북민 아사(餓死)'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과 통일부가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측이 사망 원인 등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 없이 숨진 탈북민을 '무연고자 날림 장례'로 처리하려 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26일 '아사 탈북민 고 한성옥 모자 추모·장례위원회'(이하 탈북모자장례위)에 따르면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남북하나재단)은 지난 20일 탈북민 사회단체 대표 허광일 씨 외 단체장 2명을 접촉해 한씨 모자의 장례를 '무연고 사망자 장례 및 유골 안치'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탈북모자장례위는 한씨 모자의 장례를 3~5일간 진행되는 형식적 '무연고 장'이 아닌, 국민이 함께 추모하는 '애도 시민장'으로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탈북모자장례위는 북한민주화위원회·자유북한방송 등 26개의 '북한인권연합'(탈북민 사회단체)과 보수 지식인단체인 비상국민회의 등으로 구성됐다.

    한씨 모자는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재개발 임대아파트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한성옥(42) 씨와 아들 김모(6) 군의 사망은 수도 검침원이 한씨 집을 방문하면서 확인됐다. 수도 검침원이 요금 미납으로 단수조치했음에도 한씨가 소식이 없자 방문했다가 집에서 나는 악취를 관리인에게 알리면서 숨진 모자를 발견했다. 

    경찰은 발견 당시 한씨 집에 약간의 고춧가루 외에는 기초 식료품이 전혀 없는 등의 정황으로 미뤄, 한씨 모자의 사망 원인을 '아사'로 추정했다. 서울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이미 두 달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사인은 규명 중이나, 자살의 정황이나 타살 혐의점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러나 지난 23일 3주 동안 진행된 부검과 수사결과를 종합해 ‘사인불명’ 판정을 내렸다.

    한씨 모자 사망 이후 관악서는 한씨와 이혼한 중국인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씨 모자를 '무연고자'로 처리했다.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담당 지자체인 관악구청 소관으로 서울 공영장례수용업체 위탁으로 장례가 치러지며, 이후 화장돼 10년간 유골이 보관된다.

    탈북모자장례위 “정부, 진상규명 없이 장례 서둘러 추진”

    탈북모자장례위는 정부가 한씨 모자의 사망 원인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장례와 화장을 서두른다며 진실규명을 촉구했다. 이 단체는 "8월2일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한씨 모자의 부검이 진행됐지만, 결국 사망 원인을 '불명'으로 처리했다"며 "복지를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 아래 굶어 죽은 국민이 나왔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한씨 모자는 사망 전 생활고로 두 차례 거주지 관할 주민센터를 방문했다. 한씨는 지난해 10월 주민센터를 방문해 뇌전증(간질)을 앓는 아들에게 나오는 장애아동수당과 양육수당을 신청해 각각 10만원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한씨의 소득인정액(소득+소득의 재산환산액)이 0원이었지만,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선정에서 누락됐다. 두 달 후 12월 한씨가 주민센터를 재방문했지만, 복지에 관한 어떤 안내도 이뤄지지 않았다. 올 초부터 아들 김모 군의 나이가 만 여섯 살이 되면서 양육수당(0~5세 지원) 지원마저 끊겼다.
  • 한씨 모자 분향소에는 시민 수천 명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 박성원 기자
    ▲ 한씨 모자 분향소에는 시민 수천 명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 박성원 기자
    한씨는 월 최저금액으로 책정된 건강보험료(약 1만3000원)를 17개월간 내지 못했고, 13평짜리 임대아파트 월세 9만원과 공과금은 1년 가까이 미납 상태였다. 통신비를 내지 못해 전화가 차단돼 신변보호 담당관 및 지역 관할 남북하나센터 상담사와 연결도 되지 않았다. 지난 5월 중순쯤 한씨가 마지막 잔액인 3858원마저 출금하여 통장 잔고는 ‘0원’이었다. 

    조형곤 탈북모자장례위 집행위원은 "인권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굶어 죽은 국민 두 명에 대해선 어떤 언급도 없다"며 "정부의 '대북 저자세'로 고인에 대한 사망 원인도 밝히지 않은 채 서둘러 장례를 진행해 참극을 덮으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탈북민들 “내실 없는 복지 시스템, 한씨 모자 죽인 것”

    탈북민들은 한씨 모자는 탈북민에 대한 정부의 외면과 내실 없는 복지 시스템이 죽인 것이라며 비판했다.

    남북하나재단의 올해 예산은 지난해보다 100억여 원 증액된 350억원가량이다. 재단 관계자는 그러나 "예산은 목적사업비로 측정되어 탈북민 취업 지원 프로그램 등에 사용되기에, 직접 극빈 탈북민에게 생계비를 지원하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분향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탈북민 장만송(44) 씨는 "탈북민은 한국에 오기 위해 죽음을 무릅썼는데 한국의 무관심과 배척으로 굶주림 속에 죽었다"며 "정부는 '탈북민 보호 시스템'으로 천문학적 혈세를 사용했지만, 결국 고인은 극빈의 상태에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탈북민 김모 씨는 "문재인 대통령은 바로 옆 세월호 분향소는 방문했지만, 굶어 죽은 국민에게는 조화조차 보내지 않았다"며 "이러한 차별적 정부의 태도 속에서 한씨 모자는 한국사회의 무관심으로 살해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탈북민의 성토에도 통일부는 원론적 견해만 내세웠다. 김은한 통일부 부대변인은 "탈북민 복지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충분히 대처하겠다"며 "(한씨 모자에 대해서는) 남북하나재단 중심으로 탈북민 시민단체와 장례절차에 대해 협의 중이며, 조화·조문이 예정돼 있다"고 말했다.

    한편 탈북모자장례위는 14일 광화문역 4번 출구 앞에 한씨 모자를 위한 분향소를 마련했다. 분향소에는 시민 수천 명의 추모행렬이 이어졌으며, 20~30명의 탈북민 자원봉사자가 조문객을 맞이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를 비롯해 나경원 원내대표, 이주영 국회부의장이 분향소를 찾았고, 조원진·홍문종 우리공화당 공동대표,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 이언주 무소속 의원 등도 방문해 고인을 추모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통일부 장관 등은 방문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