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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무역분쟁, 승산 없다"… 전문가들 '감정 자제' 호소

'한일 갈등 진단과 해법’ 세미나…"대체물품, 관세율, 첨단 기술, 자산 모두 불리해"

입력 2019-07-19 17:13 | 수정 2019-07-19 19:03

▲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과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포럼이 공동 주최한 '한일갈등의 진단과 해법' 토론회. 발제자들의 설명을 들은 의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종현 기자.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를 두고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연일 격한 발언이 나온다.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 5당 대표 간담회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일본의 경제침략”이라고까지 말했다.

이처럼 정부와 여당이 ‘반일정서 고양’에 앞장서지만, 전문가들은 “한일 간에 경제·무역분쟁이 확산하면 한국은 승산이 없다”고 본다. 19일 국회에서 열린 ‘최근 한일 갈등의 진단과 해법’ 주제 세미나에서 나온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포럼’은 이날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최근 한일 갈등의 진단과 해법’이라는 긴급 정책세미나를 열었다. 발제를 맡은 신각수 전 주일대사와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을 적대하는 태도를 거두고 양국 관계를 복원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각수 “한일 균열, 7년간 계속된 결과 나타나”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2010년 8월 이후 7년 동안 한일 양국 관계는 조금씩 계속 무너져왔고, 지난 18개월 사이에 급속히 붕괴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가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로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 전 대사는 2010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찾은 일, 이어 일왕을 향해 “무릎 꿇고 사죄하지 않으면 한국에 절대 올 수 없다”는 말을 한 것이 한일 관계를 무너뜨리기 시작한 시발점으로 봤다. 이후 2011년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외교적 방치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결 등으로 한일 관계의 균열이 더욱 커졌다고 설명했다.

신 전 대사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012년 1월부터 독도 문제를 집중적으로 도발했다. 4월에는 새 교과서에 독도 문제를 포함시켰다. 2013년 2월 들어선 박근혜 정부 또한 일제와 과거사 문제를 제기했다. 일본은 이때 “과거사와 외교는 별개 문제”라고 응답했다. 이후 미국 오바마 정부가 개입해 양국을 압박하자 한국과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화해와치유재단’ 설립 등을 통해 매듭짓고자 했다.

▲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지금의 한일 갈등이 7년 동안 이어진 반일감정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종현 기자.

신 전 대사는 “박근혜 정부는 사실 일본과 상당히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알리지 않아 국민과 정치권, 언론을 설득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일본 측과 합의한 데 반대하는 세력들은 2016년 12월 부산 주재 일본총영사관 앞에 제2소녀상을 세웠고, 일본은 총영사를 귀국시키는 등 갈등이 커졌지만, 당시 대통령 탄핵사태 때문에 이를 제대로 봉합하지 못해 지금과 같은 분쟁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일 관계... 지난해는 바닥, 지금은 지하실”

신 전 대사는 “지난해만 해도 ‘이제 한일 관계가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는데 올해 들어 보니까, 바닥을 뚫고 지하실까지 내려가고 있다”며 “문제는 지금처럼 서로 강경하게 대립하면 지하 몇 층까지 내려갈지 알 수 없다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1965년 한일 양국이 수교했지만, 이후 지금까지 양국 관계는 결코 쉽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하고 수교했지만, 이를 위해 계엄령까지 내려야 할 만큼 국민의 저항이 컸고, 이후 1980년대 말까지 정부 주도로 한일 관계가 유지됐다는 것이다. 그러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89년 해외여행 자율화 조치, 1990년대 초반 냉전질서 붕괴를 통해 세계적으로 자유주의 흐름이 주류가 되면서 한일 관계가 좋아졌고, 그 결과 1993년 무라야마담화가 나왔다는 것이 신 전 대사의 설명이다.

신 전 대사는 “냉전 시절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일본 외교의 핵심은 러시아의 팽창을 억지하는 것이었지만, 2010년 센카쿠열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갈등을 빚은 뒤부터는 중국에 대응하는 것으로 중심이 맞춰졌다”고 지적했다. 통상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국과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한국은 이런 일본과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본이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일본 기업이 배상해주게 되면, 한국인에 대한 배상은 물론 2차 세계대전 당시 승전국 식민지였던 아시아 국가들 모두로부터 배상 요청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때문에 대법원 판결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러가지를 조사, 분석한 결과 일본에 대응할 수단이 한국에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종현 기자.

조경엽 연구위원 “한국, 일본을 이길 방법이 없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일 무역분쟁이 확산될 경우 일어날 상황을 설명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일반적인 무역분쟁은 무역수지가 적자인 나라가 흑자인 나라에 쓰는 건데, 이번에 일본은 무역수지가 아니라 상대방의 산업 공급 사슬을 붕괴시키려는 새로운 양상의 무역분쟁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한일 양국에서 정치적 강경발언이 계속 나오고, 국민들은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어 완충 역할을 하는 곳이 없다”며 “한일 갈등이 점차 커져 일본이 금융제재를 가하거나 다른 측면에서 분쟁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때 한국이 겪는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무역분쟁에서 승패를 가를 요인들을 점검한 결과 한일 양국 간 분쟁에서 한국의 승산은 매우 낮다”며 “한국에는 수출규제로 일본을 압박할 수단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일 양국의 관세율을 비교해볼 때 일본은 인상 여력이 있지만 한국은 이미 높은 관세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펀더멘털도 일본이 한국보다 월등히 탄탄하며, 첨단 기술분야에서도 일본이 한국을 압도한다고 조 선임연구위원은 지적했다. 양국 수출입을 비교해도 일본이 한국에서 수입하는 것은 대체가 가능하지만,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은 국내 핵심 사업의 부품·소재·장비 위주다. 따라서 일본은 한국에 압력을 가할 수 있지만 한국은 일본에 그렇게 못하는 ‘비대칭 무역상황’이라는 것이다. 특히 자동차산업의 경우 일본이 수출규제를 하면 생산이 불가능해지는데 최악의 경우 하청업체 종사자 170만여 명이 실직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일본에 대한 부채가 일본에 있는 자산의 2.1배나 되는 게 현실”이라며 “일본이 한국에 금융제재를 가하면, 한국은 자금이탈과 자금조달비용이 증가하면서 제2의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다. 중국이 미국에 피해를 입은 것보다 훨씬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경제적 측면에서 접근하면, 미국이 한일 간 분쟁을 중재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면서도 “다만 정치적 측면에서는 중국의 시장지배력 증가를 견제하고, 한·미·일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개입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한일 갈등이 심각해지는 상황을 우려하며, 과거 김일성이 주장했던 '갓끈 이론'에 대해 설명했다. ⓒ이종현 기자.

전문가들 “대응방안 없다” 결론에 토론회 참석 의원들 ‘한숨’

신 전 대사와 조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과 질의응답을 통해서도 냉정한 현실을 강조했다.

신 전 대사는 “현재 일본 측이 검토 중이라고 알려진 게 금융제재와 출입국 문제”라고 전했다. 그는 “일본에 취업한 한국 젊은이들은 물론 3개월 무비자를 활용해 양국을 오가며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는 게 출입국 문제이고, 금융제재는 일본 정부가 굳이 공식적으로 정책을 세우지 않아도 재무성 관료가 한국 채권 등에 대해 지침만 내리면 시장이 영향을 받는다”며 “일본이 한국에 가하는 압력은 철저히 비대칭적”이라고 강조했다.

신 전 대사는 국내 일각에서 주장하는 ‘국제사회에서의 여론전’과 관련해 “그런 건 우리만 하는 게 아니라 일본도 한다”면서 “일본이 전 세계에 여론 조성을 위해 확보한 인력, 투입하는 예산, 네트워크는 우리나라를 압도한다. 게다가 그들은 ‘한일청구권협정을 지킨다’는 명분까지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일본이 한국에 가한 수출규제는 그들이 가진 수많은 무기 가운데 일부만 살짝 보여주는 수준에 불과했다”며 “그에 반해 우리는 우리의 무기, 보복수단이 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아니, 보복수단을 찾게 되면 여기 오신 의원들께 먼저 알려 드리겠다”고 말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그러면서 한일 무역분쟁의 해결 방안으로 미국이 개입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에 “대중국 전략의 실행에는 한일 관계가 개선되는 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일본 국내에서도 ‘지금 중국이 부상 중인데 한국의 탈일본화가 진행되면 일본에도 타격을 줄 우려가 있다’고 설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18일 더불어민주당의 회의 장면. 한일 갈등을 두고 '경제침략'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동열 원장 “김일성이 주장한 ‘갓끈 이론’ 기억해야”

이날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한국 내의 반일감정이 북한의 대남적화통일 전술과 연관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 원장은 “1969년 김일성이 간첩 양성기관인 김정일정치군사대학 졸업식에서 주장한 게 바로 ‘갓끈 이론’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김일성은 간첩후보생들에게 “남조선 혁명 측면에서 미국과 일본은 갓끈과 같다. 둘 중 하나만 끊어져도 갓은 떨어진다”며 “따라서 여러분은 대남사업에서 반미·반일 투쟁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유 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이라는 갓끈이 서서히 풀리더니 지금은 일본이라는 갓끈도 위태롭다”며 “이번 정부가 북한이 말하는 ‘갓끈전술’의 실현을 지원하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진태 의원은 한일 수교협상이 이뤄지던 1965년 6월23일 박정희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가운데 일부를 소개했다. 김 의원은 “박 대통령께서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공산주의와 싸운다면 그 누구와도 손을 잡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때와 지금이 다른 점은 영웅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며 “지금 영웅이 없다고 해도 열심히 싸우자”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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