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 근처에서 '오리발' 발견됐는데 수사 종결… "한 사람만 고생하자" 허위자수시켜
  • 해군 2함대에서 거동수상자를 붙잡지 못하고, 부대 내에서 '허위 자수'를 하도록 한 문제 등을 지적하는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 ⓒ박성원 기자.
    ▲ 해군 2함대에서 거동수상자를 붙잡지 못하고, 부대 내에서 '허위 자수'를 하도록 한 문제 등을 지적하는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 ⓒ박성원 기자.
    최근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 무기고 근처에서 정체불명의 거동수상자가 발견됐다. 이 사건과 관련, 해군의 은폐·축소 시도 등이 감지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해군은 부대 부근에서 발견된 ‘오리발’의 정체에 대해 함구하려 했고, 병사들에게 ‘허위자수’ 제의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군의 경계태세와 도덕성이 한꺼번에 허물어졌다는 지적이다.

    김중로 “해군 2함대 주변에서 오리발 발견됐는데 수사 종결”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은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해군 2함대사령부가 영내에서 거동수상자를 발견했지만 붙잡지 못해 결국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면서 “북한 목선에 동해가 뚫린 지 3주도 지나지 않아 서해 평택에서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2함대 측에 따르면, 부대 안팎을 수색하던 중 골프장 입구 아파트 울타리 아래에서 ‘오리발’을 발견했다”면서 “군은 이 ‘오리발’을 골프장 근무자의 것이라고 판단해 자체 수사를 종료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거동수상자를 찾지 못한 것은 물론 합동참모본부에서는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심지어 이와 관련해 사건을 조작한 정황까지 드러났다”고 군 당국을 비판했다.

    김 의원은 “경계작전 실패와 은폐·축소는 물론 사건 조작에다 병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까지 보였다”며 “이미 한계를 넘어선 군의 자정능력으로 볼 때 국방부와 청와대 국가안보실 등 안보 관련 모든 기관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군 “간첩이라면 랜턴 켜고 뛰었겠나”


    비슷한 시간 해군도 관련 사건에 대해 해명했다. 해군 관계자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4일 오후 10시 무렵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해군 2함대사령부내 탄약고 근처에서 일어났다. 탄약고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초병들은 생활관 뒤쪽 길에서 사령부 본청 생활관 쪽으로 뛰어가는 사람을 발견했다. 이 사람은 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가방을, 다른 손에는 켜진 랜턴을 들고 있었다.

    이 사람은 본청 생활관 앞에 이르러 30초가량 서 있다 경계근무자들이 있는 탄약고 쪽으로 달려왔다. 켜진 랜턴을 손에 든 채였다. 이를 수상히 여긴 경계근무자들은 거동수상자가 40~50m까지 다가오자 수하(암구호를 외쳐 피아를 식별하는 일)를 했다. 이 사람은 수하에 응하지 않고 반대편으로 뛰어 달아났다. 달아나는 와중에도 랜턴을 두세 번 켰다.
  • 경기 평택시에 있는 해군 2함대 정문.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경기 평택시에 있는 해군 2함대 정문.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계근무자들은 즉시 상황실에 보고했다. 사령부는 5분대기조와 기동타격대를 출동시키는 한편 부대를 봉쇄하고 수색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골프장 입구 관사 아파트 옆에서 ‘오리발’을 하나 찾아냈을 뿐이다.

    거동수상자의 대공용의점과 관련해 해군 관계자는 “그 사람이 간첩이라면, 그래서 부대에 침투하려 했다면, 야밤에 손에 랜턴을 든 채 길을 따라 뛰어다니겠느냐”면서 “이런 여러 가지 점으로 미뤄봤을 때 간첩 등 대공용의자는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이 지적한 ‘오리발’도 2함대 체력단련장 주변에서 발견된 것인데, 함대 인원의 개인물품으로 최종 확인됐다는 게 해군의 설명이다.

    해군 관계자는 “하지만 병사에게 '허위자수'를 하게 한 점은 해군과 사령부 관계자들도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건과 관련, 해군의 ‘허위자수’ 제의 시도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거동수상자 못 찾아내자 ‘가짜’ 만들어


    해군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거동수상자를 발견한 뒤 2함대사령부 헌병과 정보병과 관계자 등이 부대를 샅샅이 훑었다. 하지만 거동수상자는 찾을 수 없었다. “부대원이면 자수하라”고 권유해도 아무도 안 나왔다.

    그러자 한 영관급 장교가 ‘아이디어’를 냈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부대원들이 지쳐가자 이를 단순한 부대내 해프닝으로 만들 생각을 했다. 즉 ‘가짜 거동수상자’를 만들어 자수시키기로 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한 사람만 좀 고생하면 될 텐데 혹시 나설 사람 없느냐”고 물었고, 한 병장이 “그럼 제가 해보겠다”고 나서서 '허위자수'했다.

    하지만 어설픈 공모로는 헌병 관계자들을 속일 수 없었다. 진술이 계속 번복되고 사실관계가 틀리면서 헌병 수사관들이 다그치자 영관급 장교와 함께 벌인 일임을 자백했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2함대사령부를 돌아다녔던 거동수상자를 끝내 못 찾았다.

    2함대사령부와 해군 측은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는 것을 미루다 결국 12일 국방장관에게 보고했다. 국방장관은 이번 일을 엄중하게 보고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단장을 중심으로 한 합동수사단을 현장으로 보내 수사를 시작했다.
  • 지난 3월 22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이 행사에서 추념하는 전사자들 대부분이 해군 2함대 소속으로 전사한 사람들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3월 22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이 행사에서 추념하는 전사자들 대부분이 해군 2함대 소속으로 전사한 사람들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해군 관계자는 이날 “당시 상황에서 부적절한 조치와 지시가 있었던 점에 대해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야밤에 뛰어다니던 거동수상자는 어디에?


    2함대사령부를 비롯해 해군 측은 논란이 된 거동수상자가 2함대 소속 장병이라고 추측했다. 부대 안팎의 CCTV에도 찍히지 않았고, 부대 주변 철조망도 훼손된 흔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외부에서 침투했을 리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남공작에 투입되는 북한 간첩들은 침투할 시설을 미리 다 조사한 뒤 계획을 세운다. CCTV 위치나 철조망 가운데 허술한 부분을 찾아 놓는 것은 당연하다. 철조망 또한 침투한 흔적을 안 남게 하는 게 정상이다.

    가장 큰 의문점은 경계근무병들이 묘사한 거동수상자 그 자체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군부대 안에서 어두운 야밤에 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뛰어다니는 사람을 보면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랜턴을 켜고 탄약고로 접근하다 뛰어 달아났고, 군은 흔적도 찾지 못했다. 군 관계자 또한 이런 의문에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