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관급 전용 외투에, 2017년 신형 군복…최고급 '신의주 운동화'에 전문가급 군사지식"
  • ▲ 28일 오전 11시 북한목선 의혹과 관련해 국방부를 항의방문한 김영우 의원 등 자유한국당 진상조사단.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8일 오전 11시 북한목선 의혹과 관련해 국방부를 항의방문한 김영우 의원 등 자유한국당 진상조사단.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26일 "최근 함경북도에서 어선들의 출항을 강력히 통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예전 같으면 당국자들에게 뒷돈을 주면 어선을 타고 나가기가 쉬웠는데 최근에는 어부들의 신상정보까지 철저히 조사하고, 문제를 일으킬 경우 소속 사업소와 담당 보위부·보안서 관계자들까지 연대처벌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북한 어선은 이런 와중에 "귀순하겠다"고 내려온 것이다.

    발견→北에 문의→南에 답변→ 나흘 만에 북송 

    북한 목선은 지난 15일 삼척항에 들어왔다. 이들을 발견한 것은 항구에 있던 주민이었다. 목선에 탄 남성 4명은 “귀순하기 위해 왔다”며 주민에게 “서울에 사는 이모에게 연락해야 하는데 손전화 좀 빌려 달라”고 말했다. “북한사람이 나타났다”는 주민의 신고를 받은 해양경찰이 현장에 와서 이들의 귀순 경위 등을 물은 뒤 목선을 예인해 갔다.

    국방부는 이날 “삼척항 인근에서 조업 중 기관고장으로 표류하던 북한 어선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당시 언론들은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삼척항 동쪽 150km 해상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국방부는 17일 정례 브리핑에서는 “북한 목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계획적으로 귀순을 하려던 사람들로, 남하 중 기관고장으로 표류했다가 수리가 돼 삼척 쪽으로 왔다”고 설명했다. 해군이 이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당시 파도와 목선의 높이가 비슷해서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 발표는 이날 모두 거짓말로 드러났다. KBS 등이 삼척 주민들에게 받은 제보를 보도했다. 북한 목선은 삼척항에 ‘입항’했고, 이들이 들어올 때까지 해군은 물론 해양경찰, 육군 23사단, 삼척경찰서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게 드러났다. “대북 경계망에 구멍이 났다”는 비난여론이 비등했다.

    이튿날 통일부는 “북한 어민 4명 가운데 30대와 50대 남성 2명이 귀순 의사가 없다며 송환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즉각 이를 수락했다. 김연철 통일부장관은 “16일 오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북측에 (선원을 송환하겠다는) 대북통지 계획을 사전에 전달했고, 17일 오전 선원 송환계획 통지문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북측은 17일 오후 “신병을 인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입항 귀순’ 사실이 드러난 이튿날 4명 가운데 2명이 판문점을 통해 “김정은 만세”를 외치며 돌아갔다. 

    “김정은 만세” 외치며 돌아가

    통상 북한 주민이 귀순하면 국가정보원과 군 안보지원사령부 등으로 구성된 합동심문팀이 1차 조사를 하고, 국가정보원이 2차 조사를 한다. ‘위장귀순 간첩’을 걸러내기 위해서다. 시일도 적잖게 걸린다. 그런데 정부는 이들을 발견한 지 하루 만에 조사를 마치고 송환하기로 결정했다.
  • ▲ 공개된 영상에서 맨 뒤에 서 있던 사람이 허리를 숙인 모습. 위아래 모두 얼룩무늬 전투복이다. 이는 2017년부터 보급된 피복이다. ⓒ북한인민해방전선 제공
    ▲ 공개된 영상에서 맨 뒤에 서 있던 사람이 허리를 숙인 모습. 위아래 모두 얼룩무늬 전투복이다. 이는 2017년부터 보급된 피복이다. ⓒ북한인민해방전선 제공
    송환된 2명은 왜 귀순 목적도 없이 월남했는지, 정부는 이들에 대한 조사를 충분히 했는지, 15일 발견된 이들을 왜 하루 뒤인 16일 서둘러 송환을 결정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일반 주민은 구경도 못하는 식량 풍족 

    이후 정부 합동조사팀의 조사가 시작되면서 북한 목선에 실려 있던 물품들이 관심을 끌었다. 처음 발표에 따르면 통신기·위성항법장치·배터리·안테나·전선·연료통·손전등·어망·칫솔·알약·옷가지 등이 발견됐다. 계획적으로 귀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들이 싣고 있던 식량은 탈북단체 관계자들로부터 의심을 샀다. 농림수산식품부 검역본부가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는다며 북한 목선에 대한 긴급방역을 하면서 찾은 식량은 흰쌀 28.8㎏, 양배추 6.1㎏, 감자 4.1㎏과 김치찌개·멸치조림·고추조림·깻잎장아찌·된장 등이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이를 두고 “수확철도 아닌 양배추를 kg단위로 갖고 있고, 북한에서는 구하기도 어려운 깻잎을 갖고 있는 게 평범한 북한 어민은 아닌 것 같다”며 이들이 대남공작원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연료 1000리터 필요한데 연료통 2개만 달랑

    싣고 있던 연료량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북한 목선은 28마력짜리 엔진을 장착하고, 함북 경성군에서 울릉도 인근 해역을 거쳐 삼척항까지 700~800km를 항해했다. <조선일보>는 “이 정도 거리를 항해할 경우 1000리터의 연료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목선에는 녹색 연료통 2개만 실려 있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정부의 다른 거짓말도 들통났다. 이들은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출발한 뒤 북한어선 무리에 섞여 조업했다고 하는데, 잡은 고기를 넣어두는 ‘어창’은 비었고, 어구(漁具)는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 삼척 어민들은 이들이 오징어잡이를 했다는 말도 믿지 않았다. 오징어를 잡으면 먹물이 튀면서 배가 굉장히 지저분해지는데 북한 목선은 너무 깨끗하다는 지적이다.

    전직 북한군 단체 대표 “저 사람들, 어민 아니다”
  • ▲ 삼척항에 입항했을 당시 북한 목선과 선원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삼척항에 입항했을 당시 북한 목선과 선원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 의혹도 제기됐다. 북한인민해방전선의 최정훈 사령관은 북한 목선이 삼척항에 입항해 해양경찰이 처음 만난 당시를 찍은 영상을 공개했다. 북한인민해방전선(이하 북민전)은 장성급부터 병사들까지 100여 명의 북한군 출신 탈북자들로 구성된 북한인권단체다.

    최 사령관은 북민전이 공개한 동영상을 장면마다 끊어 가며 설명했다. 그는 해경에 입항 경위를 설명하는 사람의 말투를 들으며 “저건 함경북도 사투리가 아니라 북한 군대 말투”라고 지적했다. 소위 ‘문화어’라는 평양 표준어, 군대에서 사용하는 말투라고 설명했다.

    최 사령관은 “언론에 보도된 사진을 기준으로, 맨 앞에 선 인민복 입은 사람, 그리고 맨 뒤에 있는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사람이 특히 수상하다”며 “이들은 북한군 좌급(영관급) 이상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본 기사의 세 번째 사진에서 맨 오른쪽부터 왼쪽 방향으로 첫 번째 인민복을 입은 사람, 두 번째 북한군 경보병 동복을 입은 사람, 세 번째 중국제 작업복을 입은 사람, 네 번째로 얼룩무늬 전투복과 북한 장교용 외투를 입은 사람이 서 있다.

    최 사령관은 보관 중이던 북한군 얼룩무늬 군복과 기존 군복을 꺼내 본지에 보여줬다. 그것을 네 번째 사람의 얼룩무늬 군복과 비교했다. 그는 이어 “저 머리 스타일은 북한군 지휘관이 주로 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최 사령관은 "영상에서 그가 몸을 숙였을 때 위아래로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게 보일 것”이라며 “저 군복은 2017년부터 보급한 것으로, 민간에서는 처벌을 우려해 입지도 않는 옷”이라고 설명했다.

    최 사령관은 이어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사람이 걸친 외투를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북한에서는 나름 좀 살았다고 했는데 저건 구하기가 어려웠던 좌급 장교 전용 외투”라며 “저런 외투는 장교 숫자에 맞춰 만드는 한정판이기 때문에 민간인이 입고 있다가는 민간인은 물론 그걸 판 장교도 처벌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사진 속 오른쪽 첫 번째와 네 번째 사람의 운동화 또한 ‘신의주 운동화’라는 게 최 사령관의 분석이다. 그는 “중국에서는 윗부분은 청색이고 밑창은 흰색인 운동화를 만들지 않는다”며 “저 신의주 운동화는 북한사람들 사이에서는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북한이 신의주에서 만드는 운동화는 품질은 중국제보다 좋지만 생산하는 수량이 너무 적어 중국제 신발 10켤레 값에 팔린다고 한다. 때문에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신의주 운동화’는 부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신발 10켤레 값에 팔리는 최고급 운동화

    최 사령관은 해경에게 입항 경위를 열심히 설명했던 두 번째 사람이 실제로 배를 조종했고, 세 번째 서 있는 사람은 네 명 가운데 가장 계급이 낮은 사람이라고 추정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람은 경보병(특수부대)일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최 사령관에 따르면, 북한군 경보병 동복 단추는 금색 구리 단추다. 반면 일반 병사 동복 단추는 플라스틱이다. 영상과 사진을 보면, 해경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사람의 단추는 금색으로 빛난다. 세 번째 사람은 해경이 다가오자 바다 쪽으로 몸을 돌리며 아무 말도 않는다. 네 명 가운데 계급이 가장 낮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라는 게 최 사령관의 설명이다. 그는 “세 번째 사람이 입은 외투는 중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작업복”이라고 덧붙였다.
  • 최 사령관은 “통일부는 30대와 50대 남성이 북한으로 귀환했다고 했다"면서 "인민복을 입은 사람이 30대, 네 번째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사람이 50대로, 이들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경로를 통해서 확인했는데 인민복을 입은 사람이 ‘서울에 사는 이모에게 전화해야 하니 손전화(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했었고, 그가 북한으로 귀환했다”며 “그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21일 <문화일보>는 “군 당국의 설명”이라며 “북한 선원 일부는 한국군의 해안방어체계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 대남 전문가 수준의 군사지식을 갖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북한 목선 관련 의혹, 청와대가 답할 차례

    이처럼 전직 북한군단체마저 목선에 대한 의혹을 계속 제기하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28일 국방부를 항의방문한 한국당 의원들에 따르면 정경두 장관은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도 “한국당 의원들의 1함대 방문은 허락할 수 없다”고 답했다.

    정 장관은 지난 24일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의원들이 1함대를 찾았을 때 방문을 거절한 이유를 “사흘 전 출입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에 국방부를 찾은 한국당 의원들이 “그래서 우리가 출입신청을 했다. 이제는 1함대를 방문할 수 있느냐”고 묻자 “지금은 북한 목선을 합동조사 중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답했다.

    한국당 '북한 목선 의혹 조사단'장인 김영우 의원은 “과거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전방 GP를 방문했을 때도 사흘 전에 공문 보내서 출입조치를 하고 갔는지 의문”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국방부는 출입기자는 물론 정치권으로부터도 "왜 자꾸 거짓말을 하느냐"고 비난받는다. 북한 목선이 정말 귀순한 배이고, 문재인 정부가 투명성과 소통을 강조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국방부 합동조사단이 언론과 야당에 공개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조사 중"이라는 말뿐이다. 기자들은 "국방부가 청와대만 바라보는 것 같다"며 답답해한다. 북한 목선 의혹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청와대밖에 없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