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날 대통령이 전사자 묘역서 발언…'1948년 대한민국 건국 정통성' 정면으로 부정
  • ▲ 약산 김원봉.ⓒ네이버 인물정보 화면 캡처
    ▲ 약산 김원봉.ⓒ네이버 인물정보 화면 캡처
    약산(若山) 김원봉이 뜨거운 감자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언급한 후 일부 단체들을 중심으로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 추진 움직임이 일었다. 김원봉을 다룬 드라마가 방영되고,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엔 서훈 추진 청원까지 올라왔다. 여권은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야권에서는 "고도로 기획된 김원봉 서훈 추진 수순"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10일 YTN 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6·25 공로를 인정받아 북한에서 훈장 받은 사람을, 현충일날 그것도 대통령이 국군 전사자 묘비 앞에서 하느냐"며 "현충일 하면 무엇보다 6·25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굳이 김원봉을 광복군의 주축으로, 이어 국군과 한미동맹까지 연결시킨 그 행위야말로 논리적 비약이 심한 추념사였다"고 지적했다.

    전 대변인은 "김원봉은 대한민국 건국과 6·25 전후 복구과정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을 집요하게 흔든 사람 중 한 명"이라며 "독립운동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할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건국 이후의 역사 속에서 김원봉의 행적은 우리가 올바르게 판단하고 있어야 한다. 친일-반일 프레임으로 몰고 가선 안 된다. 김원봉이 독립운동을 했다고 해서 6·25 국군 전사자들 앞에서 추앙받아야 하는 것은 명백히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반(反) 대한민국' 김원봉, 부쩍 재조명된 이유는

    항일 독립운동가인 김원봉은 동시에 장관급에 해당하는 북한 최고위직을 지냈다. 6·25 당시 대한민국 국군을 많이 죽인 대가로 김일성 최고훈장을 받기도 했다. '북한 정권을 향한 부역' 즉 반국가행위, 그가 다른 항일운동가들과 다르게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하는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한 이유다.
     
    그러나 근래 들어 부쩍 '김원봉 재조명 붐'이 일었다. 2015년 영화 <암살>을 기점으로 문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김원봉을 언급하기 시작하면서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 대통령은 영화 관람 후 "마음속으로나마 김원봉 선생에게 최고급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잔 바치고 싶다"고 토로했다.

    국가보훈처는,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 및 적극 동조한 것으로 판단되거나 정부수립 후 반국가 활동을 한 경우'에는 포상에서 제외한다. 그러나 정권교체 후 보훈처는 슬그머니 견해를 바꿨다. 지난 4월에는 '약산 김원봉의 독립운동에 대한 현재적 검토' 토론회를 직접 개최하기도 했다.

    국방부도 거들고 나섰다. 국방부는 10일 "김원봉의 활동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부분이라면 어느 정도 기록의 필요성은 있다고 보고 있다. 김원봉의 공적을 창군 과정에 반영하는 내용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군사편찬연구소가 지난해 약산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결성 사실 등을 군(軍) 연혁에 추가할 것을 국방부에 제안한 데 대한 응답이다.

    정부·軍 이어 언론까지 동참...댓글 여론은 정반대

    정권 차원의 '김원봉 군불때기'에 방송사들도 참여했다. 김원봉을 지속해서 대중에게 노출시키는 것이다. MBC는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이몽'을 5월부터 방영 중이다. 공영방송 KBS 역시 김원봉을 주제로 한 대하 사극을 제작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여기에 문 대통령이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진행된 현충일 추념식에서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고 소개하는 등 노골적으로 거론하자,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등 일부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은 기다렸다는 듯 '김원봉 서훈 서명운동'에 나섰고, 7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도 '약산 김원봉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수여해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이 게재됐다. 

    10일에는 찬반 여론조사 결과도 언론에 보도됐다. '리얼미터'가 OBS 의뢰를 받아 지난 7일 전국 성인남녀 5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4.4%P)에 따르면, 김원봉 서훈에 대해 찬성 응답이 42.6%, 반대 응답이 39.9%로 집계된 것으로 나타났다.


  • ▲ ⓒ네이버 화면 캡처
    ▲ ⓒ네이버 화면 캡처
    그러나 해당 기사의 '순공감순' 댓글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네이버 아이디 ilma****는 "댓글에서 여론조사를 해보자. 서훈에 반대하면 공감, 찬성하면 비공감을 눌러보자"고 제안했고, 해당 댓글에는 9976표의 공감(반대), 321표의 비공감(찬성) 추천이 달렸다. 네티즌들은 "엉터리 여론조사"라고 입을 모았다.

    야권 "대한민국 역사 바꿔치려는 의지" 성토

    정치권에서도 야권을 중심으로 연이어 민감한 반응을 내놓았다. 정권교체 후 시작된 일련의 시도들이 '조직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김원봉을 서훈하는 것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위기감이 고조됐다.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9일 페이스북을 통해 "좌파는 우리의 훌륭한 독립운동가들을 친일파로 낙인찍어 공격해왔다. 그들이 말년에 친일 행적을 보였다는 게 이유인데 일생의 한 부분만으로 삶 전체를 규정하는 식이었다"며 “그런데 김원봉에 대해서만은 일생 전체 공과를 보자고 한다. 공정하지 않은 이러한 역사인식에 동의할 수 없다. 이런 모순 끝에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를 바꿔치려는 의지가 있다”고 꼬집었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 역시 8일 "문 대통령의 추념사는 고도로 기획된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 수여를 위한 제2차 작전의 시작"이라며 "항일투쟁 공은 인정되지만 6·25를 일으킨 김원봉을 통해 주류세력 교체와 국가정체성 재정립 작업이 '보훈정책'으로 시도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야권의 한 관계자는 10일 본지와 통화에서 "김원봉이 북한에서 숙청됐다는 사실로 그의 반국가행위를 희석하려는 목소리가 있는데,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김원봉이 북한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다 숙청됐는가"라고 물은 뒤 "김원봉이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했길래 그에게 서훈을 해야 하는가. 이러다가는 김일성도 독립유공자로 인정해 서훈하자고 할 판"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김원봉 서훈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긋고 나섰다. 청와대 관계자는 10일 "보훈처 조항에 의해 김원봉은 서훈 부여가 불가능하다. 또 이런 규정을 고치거나 할 의사도 없다.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또 과거 야당 대표 시절 문 대통령이 김원봉을 언급한 것을 두고는 "독립운동 했던 인사들에 대한 존경심을 다 갖고 있는 차원, 정부 차원의 서훈 추진은 없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