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A “인천항-남포항서 같은 선박 신호 잡혀"… 해수부 "신호 추적 업체의 오류"
  • ▲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찾아낸 '골든레이크 801호'의 최근 항적. 마린트래픽 검색 결과다. ⓒ미국의 소리 관련보도 화면캡쳐
    ▲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찾아낸 '골든레이크 801호'의 최근 항적. 마린트래픽 검색 결과다. ⓒ미국의 소리 관련보도 화면캡쳐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이미 폐선된 선박의 위치 정보가 남북한 항구에서 잇따라 포착됐다”고 29일 보도했다. 특정 선박 한 척이 남한의 인천항과 북한의 남포항 등을 오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소리> 방송이 보도한 ‘폐선된 선박’은 ‘골든레이크 801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난해 말부터 ‘골든레이크 801호의 미스터리’라는 글이 계속 올라오기도 했다.

    10년 전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던 원양 트롤어선 ‘골든레이크 801호’가 폐선된 지 9년 만인 지난해 10월 서해 앞바다에 나타났고, 이어 인천과 남포항 등 북한 항구 연안을 계속 오간다는 게 <미국의 소리> 보도의 내용이다. 선박의 실시간 위치를 보여주는 ‘마린트래픽’이 근거다.

    이 매체는 “한국 해양 당국은 이 선박이 지난 3년 동안 한국 항구를 드나든 적이 없다고 밝혔다”고 남한 측의 입장도 함께 게재했다. 해양수산부와 인천 해경도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잘못된 정보”라는 입장을 보였지만, 의혹은 여전히 남는다.

    “골든레이크 801호의 신호, 한달 간격으로 인천-장산곶서 포착”

    <미국의 소리> 방송은 ‘마린트래픽’을 인용해 “문제의 선박이 지난해 9월 5일부터 8개월 동안 한국과 북한을 수 차례 오간 흔적을 남겼다”며 “선박명과 종류, 위치 정보를 알려주는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를 보면 이 선박은 남북한 영해를 오간 듯 한 동선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방송에 따르면, ‘골든레이크 801호’의 AIS 신호는 지난해 9월 5일, 일반 선박 출입이 제한된 인천해양경찰서 전용 부두에서 포착된 뒤 곧바로 사라졌다. 10월 4일 ‘골든레이크 801호’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 황해남도 장산곶 앞바다 7킬로미터에서 포착됐다가 사라졌다.

    지난해 11월 15일에는 다시 인천해경 전용부두에 나타났다가 이후 인천 앞바다에서 AIS 신호가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한 뒤 사라졌다. 그후 2019년 5월 3일 북한 남포항에서 포착됐다 다시 사라졌다. 그러다가 지난 21일 인천해경 전용부두에 나타났다.
  • ▲ 인천해경 전용부두 위성사진. 이곳은 출입은 함부로 할 수 없지만 민간위성으로 확인할 방법은 있다. ⓒ구글맵 위성사진 캡쳐.
    ▲ 인천해경 전용부두 위성사진. 이곳은 출입은 함부로 할 수 없지만 민간위성으로 확인할 방법은 있다. ⓒ구글맵 위성사진 캡쳐.
    <미국의 소리> 방송은 “한국 해양수산부에 지난 19일 해당 선박의 입항 기록을 확인해 달라고 문의하자 ‘지난 3년 간 한국 항구 입출항 기록이 없다’고 답했고, 소식통을 통해 인천해경에 문의했더니 ‘단순한 GPS 오류 가능성일 것’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방송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인천 해경에 문의했지만 수상한 AIS 신호가 북한 남포항과 인천해경 전용부두에서 거듭 포착되는 데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해수부 “마린트래픽 정보에도 오류 많다”

    29일 해양수산부와 인천 해경에 이를 문의했다. 해수부는 “해당 선박이 폐선될 때 AIS 장비만 따로 팔렸고, 구매자가 신호 정보를 갱신하지 않고 다른 배에서 사용 중이거나 ‘마린트래픽’이 선박 정보를 업데이트하지 않아 오류가 생긴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경은 “인천 입출항 기록을 다 뒤져봤지만 ‘골든레이크 801호’라는 배는 입출항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양영진 해수부 원양산업과장은 “내용을 재확인한 결과 ‘골든레이크 801호’는 2009년 라스팔마스에서 문제가 생겨 스페인 당국에 의해 강제 폐선 됐다”면서 “원양어선이 폐선될 때는 채권자들이 배의 부품을 뜯어가 팔아치우는 경우가 있는데, 배의 AIS 장비도 그런 부품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양영진 과장에 따르면, AIS 장비만 구매해도 당국에 정식으로 선박 등록을 하면 문제가 없다. 그는 “그러나 원양어선이 많은 서아프리카에서는 AIS를 정식등록하지 않는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실제 선박과 AIS 장비 정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 과장은 “확실하지는 않다”고 전제한 뒤 “당시 ‘골든레이크 801호’의 AIS 등을 중국 어선이 사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보다 확실한 정보는 인천해경에 전용부두 입출항 기록을 요청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천 해경 “1991년부터 지금까지 그런 배 들어온 적 없다”

    인천해경에 ‘골든레이크 801호’에 대해 문의했다. 오승우 인천해경 입출항 담당 주임은 “시스템 상에 원양 어선 5척이 있는데 기록을 재확인해 알려주겠다”고 답했다. 얼마 뒤 오승우 주임은 “해경이 사용하는 시스템은 해경 전용부두뿐만 아니라 인천항 입출항 기록을 1991년부터 검색할 수 있는데 그런 배는 들어온 적이 없다”고 답했다. 오 주임은 이 배가 과거 부산에 있는 회사 소속이었다며 인천항과 관련이 적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 ▲ 폐선 전 '골든레이크 801호'의 모습. 1968년 건조된 배다. ⓒ쉽 스팟팅 닷컴 관련화면 캡쳐.
    ▲ 폐선 전 '골든레이크 801호'의 모습. 1968년 건조된 배다. ⓒ쉽 스팟팅 닷컴 관련화면 캡쳐.
    마린트래픽을 검색하면 ‘골든레이크 801호’는 여전히 활동 중으로 나타난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다른 해수부 관계자는 ‘마린트래픽’의 문제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마린트래픽’ 정보가 유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선박 소유주가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업체가 폐업하거나 폐선할 때 상태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 잘못된 정보가 된다는 설명이었다.

    이 관계자는 “골든레이크 801호의 기록을 보면, 지난해 9월 4일 갑자기 나타난 뒤 불과 한 달 만에 북한 서해상에 나타났다”면서 “건조된 지 50년 된 배가 과연 그 짧은 시간에 서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올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대형 화물선도 서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오려면 거의 한 달 걸리는데, 어선 속도는 그보다 훨씬 느리다는 설명이었다.

    해외 민간선박 사이트, 국내 정보 반영 못해

    다시 마린트래픽, 쉬핑스팟 닷컴, 마리타임 커넥터 닷컴 등 선박 정보 사이트, 2009년 당시 당좌거래 정지 공고, 세무서 체납 기록 등을 살펴봤다. 해외 사이트와 국내 기록이 달랐다.

    선사인 ㈜골든레이크는 2009년 8월 19일 당좌거래가 중지됐다. (사)한국기업협력협회, 특수법인 한국원양산업협회 회원사였던 ㈜골든레이크는 2000년대 중반까지는 성실 납세법인으로 꼽히고, 협회 임원사를 지내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2009년 부도 이후로는 기록이 없다.

    해수부의 지적처럼 ‘골든레이크 801호’의 선령(船齡)도 눈길을 끌었다. ‘마리타임 커넥터 닷컴’에 따르면, ‘골든레이크 801호’는 1968년 일본 무로란 소재 나라사키 조선소에서 건조됐다. 이후 일본에서 ‘야시마 마루 3호’로, 한국에서는 ‘오양 31호’, ‘오양 3호’로 조업했다. ‘골든레이크 801호’라는 이름은 1995년에 얻은 것이었다.

    길이 52.41미터, 폭 8.8미터, 건조배수량 351톤의 소형 원양어선이 간첩선 마냥 남북한을 비밀리에 오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해수부와 해경 관계자들의 일관된 지적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몇몇 해수부 관계자는 중국 측이 오래 전 폐선한 한국 배의 AIS 장비를 사들인 뒤 뭔가 일을 벌이고 있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