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란 가능성 제기… 이란 "우리와 무관" 일단 부인
  • 사보타지 당한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 가운데 한 척. ⓒ美CBS뉴스 관련보도 화면캡쳐.
    ▲ 사보타지 당한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 가운데 한 척. ⓒ美CBS뉴스 관련보도 화면캡쳐.
    세계 석유공급망의 핵심 지역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 4척이 공격을 받은 것과 관련해 미국은 그 배후로 이란을 지목했다. 이에 이란은 “불상(不詳)의 세력이 공격한 것”이라며 자신들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또한 유조선 공격 소식을 전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측에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사건은 지난 12일 오전 6시(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에서 140km 떨어진, UAE 동쪽 ‘푸자이라(Fujairah)’ 경제특구에서 일어났다. 피해를 입은 배는 사우디아라비아 선적 초대형 유조선(VLCC) ‘아므자드’호와 ‘알 마르조카’호, UAE 선적 석유 운반선 ‘A.미셸’호, 노르웨이 선적 석유제품 운반선 ‘MT 안드레아 빅토리’호였다. 이 가운데 ‘MT 안드레아 빅토리’호의 선사는 “정체불명의 물체가 선체 아래 쪽에 강하게 부딪혔다”는 선원들의 증언을 소개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격벽 선체와 강력한 강판을 사용하는 대형 유조선의 특성 덕분에 석유 유출도 없었다.

    유조선 선체에 1.5~3m 구멍…인명피해·석유 유출 없어

    캐나다 공영 CBC방송에 따르면, 유조선과 석유운반선들은 흘수선 또는 그 아래 물속에 잠긴 선체 부분에 각각 1.5~3미터의 구멍이 났다. 파괴력으로 볼 때 폭탄 가능성이 높다. CBC방송은 “유조선 사보타지가 발생한 곳에서 멀지 않은 두바이 제벨 알리 항은 미국 이외 지역에서 미 해군 함정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이라며 “AP통신 기자는 UAE 정부가 주변 해상 안전관리를 잘 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UAE 당국은 사건 발생 직후 국영 통신사를 통해 상황을 신속히 알렸다. 자국 유조선이 공격을 받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UAE와 함께 신속하게 대응했다. UAE는 미국 측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우리 유조선에 대한 사보타지 사건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은 UAE의 요청에 따라 수사팀을 보낼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은 사건 소식이 전해진 뒤인 13일(현지시간), “현지에 급파된 군 전문가들이 유조선의 피해를 1차적으로 분석·평가한 결과 이번 사보타지는 이란 또는 이란의 사주를 받은 세력이 폭발물을 사용해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켜보자”면서 “그들(이란)이 무슨 일을 저지른다면 커다란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브라이언 훅 미 국무부 이란정책 특별대표는 “우리는 이란이 협박 대신 대화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결국 위협을 선택했다”며 “형편없는 선택”이라고 비판했다.
  • 유조선 사보타지가 발생한 지역. UAE의 경제특구 항만이다. ⓒ中국영 CGTN 관련보도 화면캡쳐.
    ▲ 유조선 사보타지가 발생한 지역. UAE의 경제특구 항만이다. ⓒ中국영 CGTN 관련보도 화면캡쳐.
    이 같은 미국 정부의 의견과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곧 <월스트리트 저널>과 <뉴욕타임스> 등 유력 언론을 통해 이란에 전해졌다. 이란 외무부는 즉각 반박 성명을 냈다. 그러나 미국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정부를 향한 요구였다.

    이란 의원 “우리와 무관, 불상의 제3세력 소행인 듯”

    미국 CBS뉴스에 따르면, 이란 국영 IRNA 통신은 압바스 무사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의 성명을 발표했다. 무사위 대변인은 “지금은 문제의 사고를 판단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하다”면서 “U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피해 유조선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다 상세하고 정확히 밝히라”고 촉구했다.

    무사위 대변인은 이어 “(호르무즈 해협 등) 해당 지역에서의 안정과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그 어떤 ‘나쁜 의도를 가진 무리들에 의한 음모’와 ‘외세에 의한 도전’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경고했다. CBS뉴스 등은 이를 미국과 그 동맹국이 호르무즈 해협에 군사력을 전진 배치하는 것에 반대하는 주장이라고 풀이했다.

    CBS뉴스는 “일부 이란 의원은 13일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에 사보타지를 가한 세력은 ‘불상의 제3세력’이라고 주장했다”고 덧붙였다.

    CBC방송과 CBS뉴스 등은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유조선 공격으로 인해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의 군사적 긴장도가 매우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미군은 최근 핵추진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과 호위함, B-52H 폭격기를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전진배치 했다. 또한 미 공군 소속 F-35 스텔스 전폭기도 UAE 알다프라 공군기지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탄도미사일을 사용해 미군을 공격하려는 징후 때문이라는 게 미국 측 설명이었다.

    이란 측은 이에 맞서 ‘이란 핵합의(JCPOA)’를 파기하고, 농축 우라늄 생산 등 일부 핵무기 개발 공정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가 미국이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이자 “이란 핵합의를 완전히 파기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발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