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친인척 기소 못하지만, 판-검사는 기소… “사정기관이 정권 하수인될 것”
  • ▲ 판검사 등을 기소 대상으로 한정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이 지난 29일 국회 사개특위에서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됐다.ⓒ뉴데일리 DB
    ▲ 판검사 등을 기소 대상으로 한정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이 지난 29일 국회 사개특위에서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됐다.ⓒ뉴데일리 DB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법조계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공수처 기소 대상에서 대통령과 대통령 친·인척, 국회의원 등은 빠지고 판·검사, 경무관급 이상 고위 경찰 간부만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예전 야당시절 주장한 공수처 안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공수처가 정부여당의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 ‘길들이기용’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야당시절 대통령·친인척 넣더니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는 지난달 29일 밤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공수처,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사법개혁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공수처 법안은 크게 백혜련 민주당 의원의 발의안과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의 발의안 등 두 가지다. 이 중 여야 4당이 합의한 공수처 안은 백 의원의 발의안이다.

    백 의원의 발의안은 공수처 수사 대상을 대통령, 국회의장·국회의원, 대법원장·대법관, 헌법재판소장·헌법재판관, 국무총리, 검찰총장,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등으로 규정한다. 이들의  배우자·직계존비속 등 가족(대통령의 경우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족 포함)도 수사 대상에 포함된다.

    하지만 기소 대상자에는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뿐이다. 대통령과 대통령 친인척, 국회의원 등은 모두 빠졌다.

    민주당의 이번 공수처 안은 과거 민주당 등이 야당시절 발의했던 공수처 안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2016년 8월 박범계 민주당 의원과 이용주 당시 국민의당 의원이 공동 발의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에는 대통령·국회의원·대법원장 등 고위공직자, 그리고 배우자·직계존비속·형제자매 등 가족(대통령의 경우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족)을 대상으로 수사와 공소제기(기소) 등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법조계 "검·경 길들이기" 비판

    법조계에선 범여권이 동의한 공수처 안이 ‘검·경 길들이기 법안’이라고 비판한다. 기소 대상에 검·경의 고위공직자만 포함한 것은 ‘고위공직자’ 비리 근절이라는 공수처 설립 취지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A 변호사는 "(백혜련 발의안이) 대통령 등 고위직 공직자들과 이들의 가족을 기소 대상에서 제외하고 판·검사를 포함시켜, 권력 사정기관을 잡겠다는 의도가 보인다"며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비난했다.

    이 변호사는 그러면서 "본래 공수처라는 제도 취지가 사라졌고, 이대로 가면 공수처를 통해 검찰을 통제할 수 있다"며 "물론 검찰권이 행정권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자체로 삼권분립 위배라고는 볼 수 없겠으나, 과연 대통령이 말한 권력분산과 이 제도가 맞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 ▲ 문재인 대통령.ⓒ뉴데일리 DB
    ▲ 문재인 대통령.ⓒ뉴데일리 DB
    대통령이 공수처장 임명권을 갖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백 의원 발의안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추천위원회가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 중 1명을 지명한 후 인사청문회를 거쳐 처장을 임명한다"고 명시돼 있다.

    "결국 대통령 마음대로?"… 민주당 내부서도 '반대'

    B 변호사는 공수처 법안 자체가 '탁상공론' 결과물이라며 "완전 헛발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안은 수사실무 경험이나 법조 경험이 없는 ‘탁상공론’ 학자들의 작품밖에 안 된다"며 "공직자 비위 수사는 정보가 들어오면 기업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가고 그 다음 공직자 수사로 이어지는 절차가 통상적인데, 이 안을 보면 정보를 수집할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처장을 결국 대통령이 임명한다"며 "결국 정권 하명수사만 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현실적이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1일 페이스북에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금 의원은 이 글에서 △공수처 설치가 새로운 권력기관을 만든다는 점 △고위공직자를 수사·기소하는 공수처가 전 세계적으로 없다는 사실 △강력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중심제 나라인 한국에서 공수처가 악용될 가능성 등을 근거로 지금의 공수처안 설치에 반대했다.

    금 의원은 "(공수처) 설치에 성공한다면 오히려 개혁과 반대 방향으로 갈 위험성이 크다"며 "설익고 검증되지 않은 정책에 매달리다 검찰개혁의 적기를 이렇게 놓친다고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라고 우려했다.

    서울 모 대학 법학과 C교수는 공수처가 삼권분립의 기본 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C교수는 "기소 대상 축소, 대통령이 처장을 임명하는 구조 등을 보면 대통령이 사법부를 지휘·감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이유 중 하나가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것이었고, (대통령으로의) 과도한 권력집중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거꾸로 대통령 권력을 더 강화시키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아 혼란이 가중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공수처, 삼권분립 위반"… "공수처 출발에 의의" 의견도

    반면 김준우 변호사(민변 사무차장)는 "기소 대상을 축소한 건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면서도 "그간 검찰이 자기 식구를 감싸는 등 온정주의 역사를 보여왔고, 이 제도는 이런 역사를 반성하는 과정 중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검찰개혁의 열망을 담아 공수처를 출발한다는 데 의의를 둬야 한다"는 답변을 내놨다.

    한편 국회법 85조의 2항에 따르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안건은 최장 330일(위원회 180일, 법사위 90일, 본회의 60일) 내에 국회 심의를 마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