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빠르면 10월 본회의… 선거제 개편해 다당제 되면 행정부 견제 못해
  • ▲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이 2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이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지정되자 바닥에 누워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이 2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이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지정되자 바닥에 누워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종현 기자
    30일 새벽 범여권이 선거제 및 공수처 설치 법안을 끝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렸다. 필사적으로 저항했던 자유한국당은 "민주당과 2, 3중대가 기어이 법치주의의 조종을 울렸다"고 개탄하며 “결과와 과정 모두 원천무효이며, 본회의로 가는 마지막까지 필사적으로 저지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더불어민주당과 야 3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 소속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위원들은 29일 자정을 전후해 전체회의를 열고 무기명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각 특위 재적위원 18명 중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11명의 찬성으로 해당 안건을 가결했다.

    당초 특위 회의실 출입구를 봉쇄해 회의 개최를 막았던 한국당은 "다른 회의장에서 특위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달려갔으나, 이상민(민주당) 사개특위 위원장, 심상정(정의당) 정개특위 위원장이 각각 '회의장 질서유지권'을 발동하며 결국 패스트트랙이 지정됐다.


  • ▲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심상정 위원장에게 항의를 하고있다.ⓒ이종현 기자
    ▲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심상정 위원장에게 항의를 하고있다.ⓒ이종현 기자
    선거제 개편안, 범여권에 절대적으로 유리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제 개편을 위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 법률안'은 △의원정수 300명 △지역구 225·비례75석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연동률50%) △비례대표 권역별 배분(전국 6개 권역) △석패율제 도입 등의 내용을 담았다. 선거연령 역시 현행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췄다. 이 안은 지난달 민주당이 야 3당에 제시한 안으로, 여야 4당은 '사표 방지'를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번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핵심은 바로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석패율제를 섞었다는 점이다. 석패율제는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가 아깝게 졌을 경우 비례대표로 부활시키는 제도인데, 이를 권역별 비례와 엮으면 거대정당인 한국당보다 정의당·민평당 등 군소정당이 보다 많은 의석 확보를 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남지역에서 대부분 근소한 차이로 한국당이 1위, 민주당이 2위를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남권에서 적은 표차로 떨어진 민주당 후보는 비례대표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대로 호남지역 같은 경우 민주당이 압도적 1위, 정의당·민주평화당 등이 2등을 차지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군소정당들이 석패율제를 이용해 비례로 살아날 확률이 크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을 포함한 범여권 정당에 유리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당은 범여권 4당이 이 같은 합의안을 도출한 것과 관련해 "이런 선거제에서는 내가 찍은 표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사표 방지를 위한 차원이라면 왜 대선에서 발생하는 사표는 고려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전국을 대상으로 다수득표자 1인만 선출하는 대선에서 발생하는 50% 상당의 사표에 대해서는 여야 4당이 침묵한다는 지적이다. 

    절대권력 '공수처'...청와대 보위부 될 가능성도

    선거제 개편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오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공수처)'이 이번 사태의 핵심 법안으로 불린다. 공수처는 막대한 기소권을 쥔 검찰개혁을 목표로 논의됐다.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 등 고위공직자를 전담하는 수사기관을 만들자는 취지다. 그 대상은 입법부·사법부·행정부·군·국정원 등 대한민국 핵심 권력기관을 망라한다.

    그러나 문제는 공수처가 '사법 위의 사법부'가 된다는 점이다. 민주당 측에서는 이를 독립적인 수사기관이라고 하지만 한국당은 "공수처장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다. 자칫 정부권력이 악용돼 표적수사·편향수사로 이어지거나, 대통령 측 고위관료는 비리 의혹이 생기더라도 수사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마음에 안 드는 판결이 나오면 그 판사 수사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특히 한국당은 "대통령 권한이 공수처로 인해 막강해지는데, 선거제 개편으로 다당제가 출현하게 되면 사실상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기능이 사라진다"고 우려한다. 또한 선거 룰인 선거제를 의석수 114석의 제1야당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점에 대해 "결과적으로 보나 과정으로 보나 이번 패스트트랙 추진안은 원천무효"라고 주장하는 실정이다. 

    김현아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30일 "공수처법안에 따르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수처장은 일선 수사기관의 범죄수사 중 대통령과 그 가족, 청와대 수석 등에 대한 수사를 공수처로 이첩할 것을 요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그렇다면 청와대 인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악용될 수 있지 않겠느냐. 특정이념성향 검사들로 채워진 공수처는 청와대를 검찰로부터 보호하는 든든한 성벽이 되어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 ▲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사개특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이상민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에게 회의절차를 항의를 하고 있다.ⓒ이종현 기자
    ▲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사개특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이상민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에게 회의절차를 항의를 하고 있다.ⓒ이종현 기자
    본회의까지 남은 절차는...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들은 최장 330일(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 본회의 부의 60일)의 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상임위(사개특위-정개특위) 안건 조정제도를 통해 이를 90일로 대폭 줄이고, 국회의장 재량으로 본회의 부의시간을 0일로 줄이면 이를 180일로 단축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330일은 국회법상 명시된 최장기간이다. 각 소관위 위원들의 심사 경과에 따라 기간이 단축될 가능성이 높다. 법사위는 여상규 한국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러므로 최장 90일을 검토할 확률이 높지만, 정개특위·사개특위는 각각 정의당·민주당이 위원장을 맡아 빠르게 논의를 끝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단 180일~최장 330일 내 본회의 처리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번 패스트트랙 법안은 빠르면 올 10월, 늦으면 내년 3월 본회의 표결 문턱에 오른다. 다만 본회의 표결에 올라도 부결 가능성은 존재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선거제 개편안에서 지역구 의석이 감소함에 따라 한국당이 아닌 여야 4당 지역구 의원들이 본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질 확률도 있기 때문이다.

    여야 4당은 본회의 표결을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법 순서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지역구 의석수 문제로 선거제 개편에 제동이 걸린다면 나머지 법안도 연달아 제동이 걸릴 확률이 높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30일 본지와 통화에서 "현행 선거법이 민심을 반영하지 못해서 개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난 대선에서 41% 득표로 당선된 문 대통령이 모든 권력을 다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 이번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과 그 결과 모두 문제가 심각하다"고 선거제 개편을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