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유엔사 현장] 에어 부사령관 "유엔사 해체하려면 안보리 결의안 있어야"
  • ▲ 유엔사령부가 사상 처음으로 언론들을 초청하는 '미디어 데이' 행사를 가졌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유엔사령부가 사상 처음으로 언론들을 초청하는 '미디어 데이' 행사를 가졌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엔사령부(이하 유엔사)가 지난 18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에서 언론 공식 초청행사(미디어데이)를 가졌다. 유엔사 관계자는 “언론들을 유엔사령부로 공식 초청한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언론이 유엔사에 대해 보다 잘 알고 이해한 뒤에 관련기사를 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행사를 열었다”고 밝혔다.

    유엔사 “남북 군사합의 이행 적극 지원하겠다”

    기자들을 맞이한 웨인 에어 부사령관(캐나다 육군 중장)과 신상범 유엔사 정전위원회 수석대표(한국 육군 소장), 중립국 정전감독위원회 안더스 그랜스타트 스웨덴 대표(해군 소장), 패트릭 고샤 스위스 대표(육군 소장), 중립국 정전감독위원회 비서장인 버크 해밀턴 미 육군 대령은 유엔사의 역사와 임무에 대해 설명했다.

    2시간에 걸친 유엔사 관련 브리핑 이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남북 철도 연결사업 당시 한국정부가 북한에 열차와 물자를 보내려던 것을 막은 일을 언급하며, 남북협력사업과 남북군사합의 이행에 대한 유엔사의 견해, 한반도평화협정 체결 시 유엔사 존속 여부 등과 관련한 질문이 나왔다. 에어 부사령관과 해밀턴 비서장을 비롯해 정전위 각국 대표들은 “남북군사합의가 제대로 이행되도록 적극 지원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국정부를 도울 것”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유엔사 측은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지난해 말 이미 이뤄졌어야 했던 ‘공동경비구역 남북 자유왕래’의 경우 북측이 지금 협의에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난해 11월 이후 중단됐던 공동경비구역 관광을 빠른 시일 내에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사 측은 또 한국정부와 지자체가 추진 중인 비무장지대의 ‘평화둘레길’ 조성, 북측이 협조하지 않는 비무장지대 유해 발굴 등에 대해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유엔사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매체들은 “유엔사 남북군사합의 이행 적극 지원 약속” “공동경비구역 내 비무장화 늦어지더라도 남측지역부터 관광 재개” “한국정부가 추진하는 비무장지대(DMZ) 둘레길사업 성공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 등과 같은 기사들을 내놨다.

    하지만 이날 유엔사 측이 브리핑한 내용과 질의응답에서 가장 강조했던 부분은 ‘남북협력사업’이나 '남북군사합의' 문제가 아니라, 유엔사의 존속 이유와 해체 조건이었다.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맺고 무슨 말을 하든 유엔사를 내쫓을 수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유엔 안보리 결의 84호로 만들어진 유엔사

    유엔사 측이 브리핑에서 설명한 내용은 대략 이렇다. 유엔사령부는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된 일련의 결의안을 근거로 창설됐고, 미군이 지휘하게 된 것이다. 1950년 6월25일 유엔 안보리 결의 82호를 통해 북한군의 남침 중단 및 철수를 촉구했고, 6월27일 결의 83호로 북한군의 남침을 평화 위반으로 규정, 유엔 회원국들에 지원을 요청했다.
  • ▲ 유엔사 부사령관을 맡고 있는 웨인 에어 캐나다 육군 중장. 사령관은 주한미군 사령관이 겸직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유엔사 부사령관을 맡고 있는 웨인 에어 캐나다 육군 중장. 사령관은 주한미군 사령관이 겸직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7월7일에는 결의 84호를 통해 유엔 안보리가 미국정부에 통합사령부 창설을 요청하고, 이 사령부가 유엔 깃발을 사용하도록 승인했다. 이런 일련의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7월24일 유엔사가 일본 도쿄에서 창설됐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도 ‘미군’이 아니라 ‘유엔사’가 체결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유엔사보다 한참 늦은 1957년 7월1일 창설됐다.

    웨인 에어 부사령관을 비롯한 유엔사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설명하며 그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유엔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 84호에 따라 대한민국의 방어를 지원하며, 정전협정이 이행되는지 감시한다. 또한 북한과 군사회담을 주도하고, 6·25전쟁 당시 한국을 도왔던 17개국이 보내는 전력을 받아들이는 임무를 맡고 있다.

    에어 부사령관에 따르면, 지난 기간 한반도에서 유엔사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다 2014년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던 커티스 스캐패로티 육군 대장의 요청으로 재활성화했다. 이때는 미 국방부가 한국정부에 210화력여단과 한미연합사령부의 현 위치 잔류를 요청한 시기다. 에어 부사령관은 “지난해 유엔사 재활성화 작업이 완료됐다”고 밝혔다.

    유엔사는 한반도 유사 시 유엔 회원국이 보내는 전력을 수용·대기·이동·통합(RSOI)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한 한국에 머무르는 비전투원의 후송도 담당한다. 즉, 한반도 유사시 유엔사가 없으면 미군을 비롯한 동맹국의 지원을 받는 게 매우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북한이 ‘외세’라며 유엔사 해체를 줄곧 요구하는 이유도 이 점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에어 부사령관은 “북한이 유엔사를 해체하거나 배제하려는 의도를 갖고 노력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한반도 상황 개선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은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비핵화 의지를 인정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엔사 해체는 사실상 미국 손에

    에어 부사령관은 “어떤 사람들은 한국과 북한, 미국이 한반도평화협정을 맺으면 유엔사가 없어진다거나 한미 양국 간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완료되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지적하며 “유엔사가 해체되고 한반도를 떠날 수 있는 방법은 단 두 가지 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유엔사를 해체하려면, 창설 때와 마찬가지로 유엔 안보리에서 사령부 해체에 동의하는 결의안이 채택되거나 유엔사를 주도하는 미국이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통해 유엔사를 해체하겠다고 하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정부가 유엔사를 해체한다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통과시키겠다고 할 정도의 정치적 상황이나 환경이 어떤 것인지는 내가 추측하거나 설명할 수준이 아니라 나보다 한참 높은 레벨에서 결정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유엔사 측은 질의응답서도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는 유엔사가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현재 남북 정권이 주장하는 ‘평화협정’이나 남·북·미·중 4개국 간 합의만으로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엔사 측의 설명대로라면 남북 정권이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에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지 알 수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 미군 관계자 또한 “유엔 안보리 결의로 만들어진 조직을 남북한끼리 쉽게 없애기는 어렵다는 게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