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만명 조직이 8000만 이란 경제의 30% 장악… 자체 육해공군, 석유-가스사 갖춘 '국가'
  • 열병식 하는 이란 혁명수비대.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열병식 하는 이란 혁명수비대.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은 지난 8일(현지시간) 이란 혁명수비대(IRGC)를 해외테러조직으로 규정했다. 그러자 이란은 “우리는 미군을 테러조직으로 규정하겠다”고 받아쳤다. 미국이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이유는 수비대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 주체로 반미정권의 척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체제에서 인민군의 역할과 흡사하다.

    이슬람혁명 통해 신정일치체제 추구

    이란 혁명수비대의 정식 명칭은 ‘이란 이슬람교 혁명수비대’다. 1979년 1월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일어난 지 넉 달 뒤인 5월5일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명령으로 창설됐다. 이후 호메이니가 실질적 국가지도자가 되고,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면서 수비대는 ‘이슬람 신정일치체제를 수호하는 세력’으로서 정규군을 능가하는 무력으로 성장했다.

    정규군인 이란 공화국군은 2년짜리 징병제로 모인 장병이 대부분이다. 반면 혁명수비대는 전원 지원자로 편성한 ‘바시즈(민병대)’가 주력이다. 여기에 해외에 이슬람혁명을 전파하는 것이 목적인 특수부대 ‘콰드즈’가 가세한다. 콰드즈는 미국이 이미 2007년 테러조직으로 규정했다. 국회와 정부 고위층 경호를 맡는 ‘안사르 울-마흐디 부대’도 혁명수비대의 한 축이다. 대테러 임무도 맡는다. 

    혁명수비대는 단순한 군사조직이 아니다. 최고 종교지도자(아야톨라)와 그를 떠받드는 12명의 헌법수호위원회, 86명의 전문가의회를 지키는 조직이다. 대통령의 명령을 받기는 하지만, 국회의원이나 공화국군보다 더 높은 정치·사회적 지위를 갖는다. 게다가 혁명수비대는 공화국군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못하게 막는 신정일치체제의 보호자 역할도 한다. 나치의 무장친위대나 북한의 호위사령부를 연상케 한다.

    때문에 혁명수비대 12만5000여 명(미국은 15만 명으로 추정)이 54만5000명의 공화국군보다 더 많은 자원과 권한을 갖는다. 정규군도 아니면서 자체적으로 육·해·공군, 정보기관까지 보유했다.

    장관·국회의원·단체장 등 '핵심 요직' 장악

    혁명수비대가 이처럼 급성장하게 된 계기는 1980년 9월부터 8년 동안 일어난 ‘이란-이라크 전쟁’이라고 한다. 혁명수비대는 이후 레바논 내전, 보스니아 내전, 발루치스탄 분쟁, 시리아 내전, ISIS와의 전쟁에 ‘콰드즈’ 부대를 보내 개입했다. 이들은 시아파 무슬림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다른 나라 내전에 개입해 ‘이슬람 혁명’을 일으켜 신정일치 체제를 만들려 했다. 가장 최근 사례가 예멘과 시리아, 이라크였다.
  • 2013년 5월 이란 혁명수비대 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혁명수비대 장성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3년 5월 이란 혁명수비대 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혁명수비대 장성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혁명수비대의 힘은 군사력보다 인맥에서 나온다. 현재 이란의 핵심 요직은 모두 혁명수비대 출신이 차지했다. 과거 노무현 정권과 집권시기가 비슷한 아흐마디네자드 정권 때부터 혁명수비대 출신의 요직 차지가 두드러졌다. 아흐마디네자드 전 대통령 또한 혁명수비대 출신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이란의 국방·내무·석유장관, 수십여 명의 광역 지자체장과 국회의원, 아야톨라의 명령으로 설립된 재단의 고위직, 정부 공무원 가운데 중견간부급 이상을 모두 혁명수비대 출신이 차지했다.

    직접 경제활동도… 석유업체 등 소유한 ‘공기업 재벌’

    혁명수비대는 독재체제인 중국이나 북한의 군사조직처럼 직접 경제활동도 한다. 혁명수비대의 경제활동 규모는 자료에 따라 다르지만 이란 국내총생산(GDP)의 20~40%로 알려졌다. 참고로 이란의 2017년 말 기준 GDP는 4395억 달러(약 499조500억원)다.

    지난 13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 보도에 따르면, 혁명수비대가 이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 안팎이다. 2016년 7월 <뉴욕타임스>는 혁명수비대만의 경제규모가 이란 GDP의 10% 안팎이라고 추산했다. 혁명수비대가 소유한 기업과 재단을 합치면 이란 GDP의 40%를 차지할 것이라는 소수 주장도 있다.

    혁명수비대가 소유한 기업도 적지 않다. 건설·에너지 회사 ‘카탐 알-안비아’, 석유·천연가스 업체 ‘오리엔탈 오일 키쉬’, 건축업체 ‘사헬 건설감리’, 땅굴 건설 전문 ‘하라 기업’, 종합건설업체 ‘고브(Ghorb)’ 등을 비롯해 통신·항만관리·운송·무역업체들을 거느렸다. 때문에 세계 금융계에서는 혁명수비대를 ‘세계 최대 공기업재벌’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이 벌이던 사업의 단적인 예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 당시에서 엿볼 수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5월2일 이란을 방문했다. 이때 이란정부는 혁명수비대가 쥐고 있던 고속철사업과 가스파이프라인을 다시 정부 관할로 되돌려 한국과 거래하려 했다.

    당시 혁명수비대는 중국 철도건설그룹과 27억 달러(약 3조660억원)짜리 고속철 건설계획과, 계열회사 ‘카탐 알-안비아’를 통해 13억 달러(약 1조4800억 원)짜리 가스파이프라인 건설계획을 추진 중이었다. 이란정부가 이를 도로 빼앗아 국제 경쟁입찰에 붙이려 하자 혁명수비대는 정부를 맹비난했다. 혁명수비대는 이 정도 규모의 사업을 수십 개씩 쥐고 있다고 한다.
  • 2015년 10월 이란 혁명수비대가 관영매체에 공개한 지하 미사일 기지. 북한 기술을 사용한 흔적도 있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5년 10월 이란 혁명수비대가 관영매체에 공개한 지하 미사일 기지. 북한 기술을 사용한 흔적도 있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6년 5월 <한국경제신문>은 혁명수비대가 소유한 업체 가운데 하나인 ‘카탐 알-안비아’의 연간 건설·에너지 수주액이 이란 GDP의 12% 이른다고 지적했다.

    이보다 앞선 2014년 5월, 국제사회의 이란제재가 풀리지 않았을 때 “이란 혁명수비대의 비자금이 한국의 모 은행에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와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혁명수비대 비자금, 한국에 있다” 日언론 주장에 발칵

    일본 '교도통신'은 2014년 5월4일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란 에너지기업 ‘페트로시나 아리야’가 한국의 한 시중은행에 2013년 3분기 기준으로 13억 달러(약 1조4800억원) 규모의 원화예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혁명수비대가 소유한 이란 최대 건설사 ‘하탐 알-안비아’가 ‘페트로시나 아리야’의 실제 소유주로 보인다”면서 “하탐 알-안비아와 석유·천연가스 계열사인 ‘세파니르’가 유엔 안보리 제재 목록에 오르자 거래를 계속하기 위해 만든 유령업체가 페트로시나 아리야”라는 소식통의 이야기를 전했다.

    통신은 “미 재무부가 이 예금이 혁명수비대의 돈세탁 사례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당시 기획재정부는 “전혀 들은 바 없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며 “미국정부로부터 관련 협조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과 시중은행들 또한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북한과 달리 매년 수백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석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인 나라이니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2015년 7월 국제사회와 맺은 핵합의에 따라 이란은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됐지만, 기득권을 쥔 혁명수비대는 자신들의 이권을 정부와 민간에 돌려주지 않으려 한다. 이 와중에 트럼프 정부가 이란 핵합의를 깨버리고, 혁명수비대를 ‘해외테러조직’으로 규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