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검찰, 끼워맞추기식 수사로 무리수"… "제3자 뇌물 입증도 산 넘어 산"
  • ▲ 검찰. ⓒ정상윤 기자
    ▲ 검찰. ⓒ정상윤 기자
    “공소장을 변경하겠다는 것은 전직 대통령의 재판에서 검찰 스스로 수사가 부실했다는 것을 인정한 꼴이다. 오로지 정치적 보복을 위해 수사를 하다보니 당연히 부실수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나. 검찰에서 재판도 하기 전에 이미 형량을 다 정해놓고 끼워맞추기식 수사를 하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고위 법조인)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서 재판부에 삼성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해 ‘직접 뇌물죄’에서 ‘제3자 뇌물죄’로 공소장을 변경하겠다고 요청하면서 검찰의 공소부실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다.

    법조계에서는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인 사법역사상 중요한 재판에서 검찰의 공소장 변경은 부실수사를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열린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공판에서 검찰이 신청한 공소장 변경을 허가했다. 

    삼성 뇌물수수 '직접뇌물'에서 '3자뇌물'로 공소변경 

    검찰의 공소장 변경의 주요 내용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해 직접 뇌물죄에 예비적으로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한 것이다. 이 경우 항소심 재판부가 선고하기 전에 직접 뇌물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예비적으로 제3자 뇌물죄 성립 여부를 다시 판결해야 한다.

    삼성전자 본사는 미국의 대형 로펌 에이킨검프(AkinGump)와 ‘프로젝트M’이라는 자문계약을 하고 2007년 11월부터 2011년 3월까지 매월 12만5000달러의 자문료를 송금했다. 검찰은 이 자금이 삼성이 이 전 대통령에게 지원한 자금이라고 주장하며 이 전 대통령을 직접 뇌물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에이킨검프가 받은 자금이 어떻게 이 전 대통령의 뇌물이 될 수 있느냐”며 검찰에 에이킨검프가 이 전 대통령의 사자(使者) 혹은 대리인이라는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에이킨검프의 계좌가 이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처럼 운영됐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공소장 변경을 요청했다. 

    법조계 “검찰, 공소부실·수사부실 스스로 인정”

    법조계에서는 이번 공소장 변경으로 검찰이 스스로 공소부실과 수사부실을 인정한 셈이 됐다고 꼬집었다. 공소장을 변경하겠다는 것은 검찰이 공소내용을 법정에서 입증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항소심 선고에서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해 이 전 대통령에게 무죄가 선고될 경우 검찰이 수사부실에 대한 비판여론에 휩싸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 이명박 전 대통령. ⓒ박성원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 ⓒ박성원 기자
    정선미 정선미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형법 129조 단순 뇌물수뢰에서 130조 제3자 뇌물수뢰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직접뇌물로 봤는데 이 부분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으니 제3자 뇌물로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며 “재판부에서 직접 뇌물로 볼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하니 무죄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공소장을 변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단순 뇌물과 제3자 뇌물의 형량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검찰이 소송전략을 유연하게 대처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면서도 “무죄선고가 나올 경우 수사부실에 대한 비판은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수사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이헌 홍익법무법인 변호사는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적폐청산, 여론재판으로 수사가 진행되다 보니 무리수가 나온 것”이라며 “결국 검찰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고, 더 나아가서는 문재인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부실검찰’, 제3자뇌물은 밝혀낼까

    공소장 변경으로 향후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은 삼성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을 가려내는 것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소장이 변경되더라도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되려면 공여자의 구체적인 부정한 청탁이 존재해야 하는데, 지난달 28일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은 삼성의 자금 지원에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이 전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사면이나 금산분리 등을 생각하고 지원했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어떤 특정한 사안에 도움을 받고자 했다기보다는, 도와주면 회사에 유익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해서 지원했다”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공소장을 변경하더라도 검찰은 삼성과 이 전 대통령 사이의 부정한 청탁을 밝혀내야 한다는 또 다른 산을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