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회담서 '제재 해제' 집착하다 美에 약점" 판단…특사교환 없으면 장기화 전망
  • ▲ 지난주 삼지연 건설현장을 찾은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주 삼지연 건설현장을 찾은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정은이 오는 11일 한미 정상회담 전까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별도의 메시지나 특사를 보내지 않는다면 정상회담이나 한국정부에 기대하는 게 없다는 뜻이며, 이는 북한이 대북제재를 버티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면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지난 8일 블로그에 올린 주간 북한동향에서 “김정은이 올해 상반기 동안은 미북-남북 간 교착상태를 유지하면서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미국이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삼지연·원산갈마지구 건설 늦춘 = 제재 버티겠다 뜻

    태 전 공사는 지난주 김정은이 삼지연 건설현장과 원산 갈마해양관광지구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면서 완공 날짜를 각각 2020년 10월10일과 2020년 4월15일로 늦추라고 지시한 것은 제재를 버티겠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이어 “김정은이 4월11일 최고인민회의를 며칠 앞두고 이런 ‘속도조절’ 지시를 연이어 내렸다는 것은, 이번 행사에서 하노이 미북회담 결렬로 대북제재가 장기화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자력갱생의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는 문제를 집중 토의하겠다는 의지를 북한주민에게 미리 알리려는 의미와 함께 미국·한국에게도 제재 장기화에 쫓기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여주려는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최근 북한 선전매체들이 판문점선언, 평양선언, 6·12 싱가포르 미북합의를 언급하지 않는 점에 주목하며 “아마 하노이 미북 회담 때 북한이 남북합의 이행을 강조하면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등 제재 해제에 너무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미국에 오히려 약점으로 잡혔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전후로 대북특사를 맡았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전후로 대북특사를 맡았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러면서 “향후 북한은 미북-남북협상에서 대북제재 해제에 촉박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자세를 보여주기 위해 남북경제협력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며 “김정은은 지난 1월 시진핑과의 회담에서 중국에게 올해 분 무상 경제지원을 다 받아냈으니 하반기까지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계산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이 비핵화협상 거부와 같은 ‘폭탄선언’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폭탄선언을 할 경우 한국과 미국보다 시진핑의 관계가 틀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결단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다만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언급한 수준 정도에서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북한의 인내심을 오판해 제재와 압박에 나선다면 북한도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길로 가겠다’는 식으로 엄포를 놓는 정도에 그치지 않을까 싶다”는 설명이다.

    "남북 특사 교환 없다면 文정부에 기대 접었다는 뜻" 

    태 전 공사는 또 “김정은이 4월11일 한미 정상회담에 별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언론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 대비해 새로운 ‘중재안’을 마련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것이라는 보도를 내놓았다. 그러나 태 전 공사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에 기초한 ‘스몰 딜’ 또는 한국의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을 바탕으로 한 ‘굿 이너프 딜’, 미국이 요구하는 ‘빅딜(포괄적 합의와 비핵화 즉각 이행)’ 간에는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이 요지부동이면 비핵화 협상의 불씨를 살리는 유일한 방도가 김정은의 ‘단계적 비핵화’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데, 미국은 트럼프부터 실무진까지 ‘단계적’이라는 표현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출발 전까지 남북 간 특사 방문 같은 접촉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굿 이너프 딜’에 아무런 기대를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태 전 공사는 “만일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선 한미협의 후 남북대화’ 구도가 펼쳐진다면, 북한으로서는 김정은이 한국을 통해 미국의 압력을 받는 구도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남북대화에 더욱 흥미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