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손용우씨, 1947년 입북 이듬해 남파 공작"…보훈처 "아니라는 주장 있다"
  • ▲ 무소속 손혜원 의원. ⓒ이종현 기자
    ▲ 무소속 손혜원 의원. ⓒ이종현 기자
    손혜원 무소속 의원의 부친(고 손용우 씨)의 독립유공자 선정을 둘러싼 야권의 공세가 정점으로 치달았다.

    조선공산당 활동 이력 등으로 보훈심사에서 여섯 차례 탈락했다 보훈처의 심사기준 변경으로 지난해 국가유공자로 선정돼 논란을 빚은 손씨가 '남파(南派)간첩'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에게 "경찰 자료를 보면 1947년 입북한 손 의원의 부친은 1948년 남파돼 지하공작을 했고 6·25전쟁 때는 북한과 접선해서 활동했다고 나와 있다"며 "대한민국을 파괴하러 온 간첩 혐의자를 독립유공자로 선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1986년 치안본부, 1989년 가평경찰서장, 1990년 성북경찰서장 명의 자료에 손용우 씨의 간첩 혐의가 적혀 있다"며 피 처장을 압박했다. 

    김진태 의원이 언급한 경찰 자료에 따르면, 손씨는 1945년 조선공산당 공산청년동맹 서울지부 가입을 시작으로 1947년 입북, 1948년 남파돼 지하공작을 벌였다. 6·25 당시에는 북한 중앙정치국과 접선해 활동했다고 전한다.

    피 처장은 그러나 "자료의 신빙성을 믿기 어렵다"며 "(손씨가) 그런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있다"고 반박했다.

    피 차장이 언급한 증언은, 손씨가 전향해 경찰 사찰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좌익 소탕에 협력했다는 내용으로, 1985년 작성된 전직 경찰 2명의 소명서에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광복 후 행적으로 6차례 탈락… 보훈처 기준 변경 후 선정

    손씨는 1982년 이후 여섯 차례 국가유공자 심사에서 탈락했다. 손씨가 그간 유공자 선정에서 번번이 탈락한 것은 광복 이후 행적 때문이다.

    보훈처는 그러나 지난해 4월 사회주의 활동 이력이 있어도 유공자 서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심사기준을 변경했고, 손씨는 일곱 차례 도전 끝에 지난해 8월 유공자로 선정됐다. 손씨의 부인이 건국훈장 애족장을 대신 수령했다. 손씨가 유공자로 선정되기 전 손 의원이 피우진 처장에게 면담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보훈처, 손씨 심사자료 제출 거부

    한편, 자유한국당 정무위 소속 의원들은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보훈처에 손씨와 관련한 보훈심사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이에 보훈처는 심사자 개인정보보호 및 고인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사실상 거부했다. 한국당은 향후 보훈처를 상대로 형사고발 및 국회 청문회를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갖은 의혹의 중심에 휩싸인 손씨가 결국 국가유공자가 된 반면, 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지정을 신청한 천안함 폭침 생존장병 22명 중 13명이 국가유공자 선정 과정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유공자 선정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었다. 보훈처에 따르면 천안함 생존자 22명 중 6명만 국가유공자로 인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