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9조원 투자해 제노바 트리에스테 팔레르모 라벤나 관리… '일대일로' 유럽거점 확보
  • ▲ 이탈리아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면서 개발을 맡긴 4개 항구.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탈리아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면서 개발을 맡긴 4개 항구.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중국공산당이 이탈리아의 제노바·트리에스테·팔레르모·라벤나를 사실상 손에 넣었다. 이들 항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꿈인 ‘일대일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이 이탈리아를 방문하기 전인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탈리아 정부가 중국의 투자를 허용한 4개 항구에 대해 보도했다.

    중국, 이탈리아 항만 개발... ‘지중해 접수' 시작 단계

    중화권 반공 매체 <에포크타임스>에 따르면, 시진핑은 지난 22일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과 만났고, 23일에는 주세페 콘테 총리와 만나 중국의 ‘일대일로’ 참여에 대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중국은 사회간접자본·기계·금융 등 30개 부문에서 이탈리아와 최대 70억 유로(약 8조9700억 원)의 거래를 하기로 합의했다.

    <에포크타임스>에 따르면, 시진핑은 지난 21일 밀라노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탈리아와 이번 합의안은 항만 건설 프로젝트 협력뿐 아니라 항만물류, 해상운송, 해군, 항공기술, 항공우주산업, 통신, 의약품, 문화 부문에서 협조 가능성을 키우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며 이탈리아와 중국 간 문화적·역사적 유대관계를 강조했다.

    중국이 ‘항만 개발’을 명분으로 이탈리아로부터 손에 넣은 항구 가운데 팔레르모를 제외한 3곳은 모두 북부지방에 있다. 이탈리아 북부는 남부와 달리 산업이 발달했다. 특히 제노바는 중부 섬유산업단지에서 생산한 상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이탈리아 최대 항구다. 그런데 이탈리아 중부의 섬유산업은 이미 중국자본에 먹힌 상태다. 대표적인 곳이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에 있는, 섬유산업 중심지 ‘프라토’다.

    공식적으로는 ‘프라토’에 있는 법인 3만 개 가운데 이탈리아 섬유업체는 3000개 남짓. 반면 중국 섬유업체는 6000개가 넘는다. 불법 사업체를 포함하면 더 많다. ‘프라토’의 인구 18만 명 가운데 중국인 비율은 30%를 넘는다. 이 때문인지 ‘프라토’에는 이탈리아 최대 차이나타운이 있다. 이탈리아 토종기업이 문을 닫고, 그 자리를 중국자본이 차지하는 현상이 점점 가속화한다는 현지 언론보도가 이어진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은 “우리가 프라토를 살려 놨다”고 되레 큰소리친다. 

    포퓰리즘 정책으로 재정 파탄

    ‘프라토’와 같은 ‘중국화’ 현상이 벌어진 지 이미 10년 가까이 됐음에도 이탈리아 정부가 ‘일대일로’ 참여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심각한 경제난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현재 ‘마이너스 성장’을 겪는다. 지난 1월 말 이탈리아 통계청은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2% 하락했다”고 밝혔다. 2018년 3분기도 2분기에 비해 0.1% 하락한 상황이다. 2018년 전체로 보면 전년대비 1.0% 하락했다. 경기침체가 온 것이다. 유럽연합(EU)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맡은 G7(주요 7개국)의 일원인 이탈리아의 마이너스 성장은 집권여당이 조바심을 내게 만들었다.
  • ▲ 지난해 10월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구제금융 신청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파키스탄은 중국 차관을 빌려 일대일로 사업을 벌이다 파산 위기에 처한 바 있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해 10월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구제금융 신청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파키스탄은 중국 차관을 빌려 일대일로 사업을 벌이다 파산 위기에 처한 바 있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럽 언론은 그 원인을 포퓰리즘에서 찾았다. ‘오성운동’을 중심으로 한 포퓰리즘 정권은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130%를 넘어선 상황임에도 저소득층에 1인당 최대 100만원의 기본소득 제공, 국민연금 수령 연령 하향, 자영업자 세금 감면 등 재정적자 확대정책을 폈다. 그 결과 급격한 경기침체를 맞은 것이었다.

    포퓰리즘 정책을 선택한 이탈리아가 중국자본의 투자로 다시 되살아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EU를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지적이다. 중국자본이 대거 투입된 나라들의 전례 때문이다.

    ‘일대일로' 동참 국가들 잇달아 낭패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낭패를 겪은 나라는 한두 곳이 아니다. 친중 국가인 파키스탄은 중국으로부터 받은 ‘일대일로용 차관’ 때문에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 상황에 몰렸다. 파키스탄은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사업 가운데 국내 기반시설 건설에 필요한 자금의 80%, 620억 달러를 중국오로부터 빌렸다. 그러나 높은 이자에 사업이 실질적으로 국내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로 유동성이 악화했다.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한 친중 국가인 라오스도 ‘일대일로 사업’을 위해 67억 달러의 중국차관을 받았다. 차관 규모가 GDP의 절반 수준에 달해 파산할 뻔했다.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도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한다며 중국에서 차관을 도입했는데 국가부채가 종전의 GDP 대비 60% 수준에서 80%로 크게 상승했다. ‘일대일로 사업’의 서쪽 끝자락인 아프리카 지부티도 중국에서 차관을 도입한 뒤 국가부채가 GDP의 90% 수준에 달해 위기를 겪고 있다.

    결국 파키스탄은 2017년 11월 일대일로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달 네팔도 중국업체에 맡기려던 25억 달러 상당의 수력발전소 건설공사를 중단했다. 2018년 1월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일대일로 참여’를 철회한 뒤부터는 중국으로부터 멀어지는 나라들이 늘기 시작했다.

    인도는 파키스탄과 중국·인도 등을 잇는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사업 참가를 거부했다. 미얀마는 90억 달러 규모의 차우크퓨 항만공사를 취소했다. 말레이시아 또한 ‘일대일로 사업’ 가운데 하나인 동부해안철도(ECRL)와 고속철 사업을 전격취소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중국이 주겠다는 거액의 차관만 보고 ‘일대일로 사업’에 달려들었던 나라들은 이자와 원금을 제대로 못 갚다 영토를 빼앗기는 사례를 보면서 몸을 사린다. 대표적인 곳이 스리랑카의 함반토타항이다.
  • ▲ 스리랑카 함반토다 신항에 차량을 하역 중인 현대 글로비스 화물선. ⓒ연합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스리랑카 함반토다 신항에 차량을 하역 중인 현대 글로비스 화물선. ⓒ연합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거액 차관 빌렸다 항구와 영해 빼앗긴 스리랑카

    지난해 5월 하버드대 연구팀은 ‘일대일로 사업’을 비롯해 중국으로부터 차관을 빌렸다 낭패를 겪은 16개 개발도상국 사례를 연구한 보고서를 내놨다. 여기에는 파키스탄·지부티·스리랑카· 바누아투·파푸아뉴기니·통가·라오스·캄보디아 등이 포함됐다. 대부분이 ‘일대일로 사업’으로 연관된 나라들이었다. 스리랑카 함반토다 항구는 그중에서도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스리랑카 정부는 2010년 항만 건설을 위해 중국으로부터 차관을 빌렸다. 스리랑카는 물류산업을 키우기 위하 함반토다 신항을 건설했다. 그러나 거액의 차관을 들여 건설한 함반토다항에는 하루 한 척 정도의 선박만 정박했다. 적자는 계속 쌓였다. 스리랑카 정부는 중국으로부터 빌린 돈의 원금과 이자도 제대로 내지 못할 지경에 처하게 됐다. 결국 스리랑카 정부는 2017년 7월 항구 지분의 80%를 중국 측에 매각하고, 99년 동안 항구 운영권을 넘겼다. 항구뿐 아니라 1억5000만㎡의 배후부지도 함께 임대했다.

    스리랑카 정부는 주변국의 우려를 의식해 “중국은 함반토다항을 군사용으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중국이 스리랑카를 무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리랑카 정부도 이를 안다.

    스리랑카 정부는 이후 함반토다항이 중국군 전진기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 결과 지난 3월20일 싱가포르의 '실버파크 인터내셔널 프라이빗 리미티드'와 오만 천연가스부로부터 4조4000억원 상당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이들은 함반토다항에 대규모 정유시설을 건설할 예정이다. 스리랑카 정부가 이 투자를 유치하지 못했다면 함반토다항은 중국군 전진기지가 됐을 것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이탈리아 잡은 중국, 프랑스·모나코 노리는 이유

    이런 사례들 때문에 중국은 중국부터 인도양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식이 아니라 중국과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라는 양 끝에서부터 먼저 거점을 확보하는 식으로 ‘일대일로 사업’ 추진방식을 변경했다. 중국부터 순서대로 사업을 진행하다가는 미국과 EU가 강력히 견제할 것이므로, 바둑에서 포석을 두듯 징검다리 형태와 동시에 양 끝에서부터 거점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 ▲ 중국의 일대일로 육상-해상 연결로.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국의 일대일로 육상-해상 연결로.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런 점에서 이탈리아의 4개 항구는 매우 중요하다. 지중해에 접한 이탈리아 항구는 유럽의 끝자락인 동시에 북아프리카와 유럽 간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이탈리아만 거치면 중부·서부유럽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다. 유럽을 공략하기만 하면 ‘일대일로’를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게 된다.

    하지만 미국과 EU는 이런 중국의 전략을 이미 안다. 미켈레 제라치 이탈리아 경제개발부차관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이탈리아와 중국의 일대일로 합작은 다른 EU 회원국에도 경제개발의 청사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5G 통신망에서 ‘화웨이’를 배제하지 않은 독일조차 이를 반박했다.

    <서울경제>에 따르면,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를 지켜본 뒤 “중국과 러시아, 동맹국인 미국 같은 거대한 나라가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단결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며 “어떤 나라는 자기네가 중국과 영리하게 거래할 수 있다고 믿을지 몰라도 나중에 깨어나 보면 중국에 의존적으로 변했다는 것에 놀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스 장관은 “중국은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라며 “단기적 수익성만 쫓다가는 씁쓸한 결과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U 예산담당 집행위원인 귄터 외팅거 위원 또한 “EU는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사업 동참에 대해) 거부권 행사나 EU 집행위원회의 동의절차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탈리아 내부와 다른 EU 회원국은 철도와 항만, 전력망 같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사회기반시설이 유럽이 아닌 중국 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나서서 이탈리아 정부에 “중국의 허영뿐인 사회기반시설 구축계획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미국과 나토가 연관된 ‘국가안보문제’로 간주한 것이다.

    이런 견제에도 중국은 아랑곳 않고 다음 목적지를 찾아 손길을 내뻗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이탈리아에 이어 모나코를 방문했다. 모나코 방문 때는 현지 통신업체 ‘모나코텔레콤’과 ‘화웨이’가 5G 기술력 향상을 위한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서비스 등에서 협력한다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외신들은 시진핑이 25일(현지시간) 프랑스를 찾아서도 ‘일대일로 사업’ 협력 또는 프랑스와 중국기업 간 기술협력 MOU를 맺을 것으로 내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