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연구원 5주년 축사…“분단국가의 통일은 주변 강대국 지원에 달려”
  • ▲ 19일 자유민주연구원 창립 5주년 기념만찬에서 축사를 하는 태영호 전 공사. ⓒ정상윤 기자.
    ▲ 19일 자유민주연구원 창립 5주년 기념만찬에서 축사를 하는 태영호 전 공사. ⓒ정상윤 기자.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지난해 미국정부로부터 입국을 거절당했던 경험을 밝혔다. 지난 19일 서울 강남 아세아타워에서 열린 ‘자유민주연구원 창립 5주년 기념 만찬’에 참석한 태 전 공사는 축사를 통해 “지난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많은 걱정을 했지만, 최근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보면서 안도했다”며 관련 이야기를 풀어놨다.

    태 전 공사는 지난해 5월23일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을 그만둔 뒤 북한의 실상과 김정은의 핵전략 등을 폭로하는 강연·기고활동에 나섰다.

    그러다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과 합의문에 서명하고 북한의 비핵화 주장을 그대로 믿는 모습을 보고 “야, 큰일 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미국에서 활동을 추진했다고 한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합의문이 나온 것을 보고, 우리는 ‘이러다 제2의 미북 정상 간 합의가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느냐’고 걱정했다”는 것이다.  

    이에 태 전 공사는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과 의기투합해 인권문제 등 북한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했다. 이를 위해 유엔 제3총회(인권문제를 다루는 유엔 총회 내부 분과회의) 행사에 참석하고자 방미 일정을 확정하고 비행기표까지 예약했으나 미국정부로부터 “태 전 공사는 빼고 오라”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회담 보고 놀라 미국 가려 했더니 오지 말라 연락 와”

    미국정부로부터 “오지 말라”는 연락을 받은 태 전 공사는 ‘아, 날 보고 미국에 오지 말라는 것을 보니 조만간 제2의 싱가포르 합의가 나오겠구나’라며 걱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김정은에게 속아 넘어갔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지난 2월 말 하노이에서의 2차 미북 정상회담을 보니,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을 잘한 것 같다”고 태 전 공사는 말을 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아 안도했다는 뜻이었다. 

    태 전 공사는 이날 축사에서 이 같은 경험담과 함께 북핵 관련 자신의 견해도 풀어놨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을 매우 낮게 평가했다. 그러면서 남북통일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한미동맹이라고 강조했다. 

    태 전 공사는 “3년째 강연을 하러 다니지만 저는 아직도 대한민국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북한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잘 안다”면서 “그런데 그동안 저와 만난 사람들은 ‘북한이 어떤 생각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한국사람들은 자신을 만나면 “우리나라는 6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룬 유일한 국가” “우리 국군은 대단히 강하다. 비행기 한 대 훈련도 제대로 못하는 북한군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북한이 우리를 건드리는 순간 초전박살날 것”이라며 “저렇게 군인들이 굶고, 국가경제가 무너져 가고, 자전거나 만년필조차 제대로 못 만드는 나라가 아직도 대남 적화통일의 꿈을 버리지 않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의아해한다는 것이다. 
  • ▲ 이날 행사에는 내외빈 100여 명이 참석했다. ⓒ정상윤 기자.
    ▲ 이날 행사에는 내외빈 100여 명이 참석했다. ⓒ정상윤 기자.
    태 전 공사는 “북한을 그런 면에서만 보지 말고 현실적으로 보자”며 남북한이 분단국가라는 특성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분단국가들의 통일 사례를 보면 베트남이든 독일이든 분단된 곳에서의 승패는 주변 강대국이 누구를 더 많이 지원했느냐에 달렸다”면서 한반도 통일은 한국과 손잡은 미국 대 북한 뒤에 서 있는 중국·러시아 사이에서 결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즉, 독일 통일은 소련이 동독에서 철수하면서 가능했고, 베트남 통일 역시 미국이 남베트남에서 철수했기 때문에 진행될 수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태 전 공사는 이어 “한국이 미국에 기대는 것과, 북한이 중국·러시아에 기대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바다 너머에 있는 나라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큰 차이가 있으며 “북한이 지금 힘이 없어 보여도 한국을 공격하는 순간 중국과 러시아는 당연히 모든 지원을 퍼붓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만약 한국정부가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고, 그 결과 미국에서 한국에서 빠져나가려는 기미가 보이면 금방이라도 숨넘어갈 것 같던 북한이 “야, 기회가 왔구나” 하고 금방 되살아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미동맹은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 좌우할 문제”

    그는 “우리가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지 않는다면, 허술하고 저렇게 거지처럼 보이는 북한에게 공격받았을 때 간단히 해결할 수 없게 된다”며 “저는 최근 가는 곳마다 한미동맹 강화와 ‘애치슨 라인’을 이야기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애치슨 라인’을 긋고 발표하는 순간 김일성과 스탈린, 마오쩌둥은 미국이 한반도에 더 이상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미국이 ‘애치슨 라인’을 긋지 않았더라면 6·25와 같은 비극을 우리 민족이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불행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이 중국·러시아를 안고 있는 것만큼 우리도 미국과 딱 붙어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느냐”면서 “한미동맹은 우리 대한민국의 영원한 번영과 민족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중요한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이날 ‘자유민주연구원 창립 5주년 기념 만찬’에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심재철 국회부의장, 이용우 전 대법관, 이동복 전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성호 전 법무부장관, 최광 전 보건복지부장관,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 김석우 전 통일부차관, 고영주 변호사, 김태훈 한변 회장, 이정린 전 국방부차관, 한광덕 전 국방대학원장, 박정이 예비역 육군대장, 남주홍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전옥현 전 국가정보원 1차장, 김규석 전 국가정보원 3차장, 전웅 국가정보학회장,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 박선영 동국대 교수, 류석춘 연세대 교수 등 내외빈 100여 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