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균열 불가피… 유엔사 근거 약해져 대북제제 위축… 분담금 부담도 커질듯
  • 지난해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에서 악수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뉴시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해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에서 악수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뉴시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베트남 하노이에서 오는 27~28일 열릴 2차 미북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제시할 북한 비핵화의 상응조치 중 하나로 '종전선언'이 주목받는다. 

    지난 6~8일 북한 측과 실무회담을 가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최근 방미한 국회 대표단을 만나 북한이 원하는 미국의 상응조치 중 하나가 종전선언임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선언 주체는 누구?

    1953년 7월27일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공인민지원군 사령원 펑더화이는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이후 현재까지 한반도는 전쟁을 잠시 멈춘 정전체제 아래 있다.

    종전선언은 이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에 앞서 적대관계를 해소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종전선언이 의미가 있으려면 반드시 평화협정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 평화협정은 문재인 대통령이 밝혔듯 다자적 구도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견해다. 김정은도 지난 1월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다자 평화협정'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이달 중 정상회담이 불발됐다. '연합뉴스'는 14일 문 대통령이 2차 미북정상회담이 열리는 27일 국내에서 일정을 소화하는 것으로 돼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2차 미북정상회담에서 남북한과 미국·중국 등 4자가 참여하는 종전선언 가능성은 사라진 상태다. 

    중국이 배제된 남·북·미 3자의 종전선언은 다자 평화협정 구도와 동떨어진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퇴색된다. 더구나 현재 중국은 북한의  방패막이자 모국처럼 행동하는 등 두 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 끈끈한 유대감을 과시한다.

    그렇다면 미북 양자 간에 종전선언을 할 가능성은 어떨까? 이와 관련해 일본 '교도 통신'은 미국과 일본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미국이 지난 평양 실무협의에서 북측에 '평화선언' 채택을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종전선언의 경우 한국이나 중국과 조율이 필요한데, 이 과정이 단기간에 이뤄지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해 북한과 '평화선언'을 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안했다고 한다.

    평화선언은 국제법적 구속력이 있는 평화협정은 물론, 정치적 선언이라는 종전선언보다도 느슨한 형태를 갖춘 일종의 ‘합의 틀’ 개념이라고 14일 <세계일보>는 풀이했다. 

    남·북·미·중, 남·북·미 또는 미·북 종전선언도 아닌 새로운 시나리오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스티븐 비건 대표는 다음주 카운터파트인 김혁철 전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와 다시 실무협의를 가질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종전선언 혹은 또 다른 형태의 선언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 경기도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에 위치한 주한미군사령부ⓒ뉴시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경기도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에 위치한 주한미군사령부ⓒ뉴시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주한미군은 어떻게 되나?

    종전선언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완전히 끝났음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선언이다. 이에 따라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전쟁의 한 축을 감당했던 주한미군의 지위에도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종전을 구실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나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정부는 종전선언이 이뤄져도 주한미군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한다. 주한미군이 종전선언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따로 있다. 주한미군의 주둔은 정전협정이 아니라 1953년 10월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하며, 한미연합사령부는 한국군과 미군의 연합지휘기구이기 때문에 종전선언과 상관없이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14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한국정부에 주한미군 문제는 미국과 북한 간에 이뤄지는 비핵화 협상과는 상관없다는 견해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국방부도 지난 13일 “주한미군은 한미동맹 차원의 문제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고 이 방송은 보도했다.

    그럼에도 종전선언이 주한미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AP 통신은 “일각에서는 종전선언이 북한에 2만8500명 규모의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더 강한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옥스퍼드대 국제관계경제사회연구소의 동아시아 및 한반도문제 전문가 에드워드 하웰은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종전선언으로 북한에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근거가 강화되면서 한미동맹에 또 다른 균열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이자 한미연합사령관인 로버트 에이브럼스 대장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모든 당사국 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강조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은 어떻게 되나?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방위비 분담금을 문제 삼았고,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분담금 인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방위비 분담금협정 협상 과정에서 난항을 겪다 지난 10일에야 가까스로 가서명했다. 이에 따라 올해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비용으로 지난해의 9602억원에서 인상된 1조389억원을 부담하게 됐다. 그러나 이 협정의 유효기간이 1년이기 때문에 불과 몇 달 후, 이르면 상반기 안에 다시 협상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우려를 낳고 있다.

    유엔사는 어떻게 되나?

    종전선언은 특히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논의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뿐만 아니라 유엔군사령부(UNC) 해체를 요구하는 근거로도 활용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미 외교안보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는 종전이 이뤄지면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만들어진 유엔사가 한국에 있어야 하는 명분이 사라지므로 유엔사를 해체하거나 다른 역할을 부여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셔널 인터레스트>는 유엔사 창설에는 유엔 안보리의 승인이 필요한 만큼 또 다시 유엔사가 필요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해 한반도 내 유엔사 창설이 불가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도 종전선언이 곧 유엔사의 해체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존립의 법적 근거가 상당히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북제재는 어떻게 되나?

    더욱이 유엔사가 평시에는 대북제재 이행을 포함해 유엔 결의 이행을 지원하는 역할도 하는 만큼 유엔사의 존립 여부는 대북제재 체제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디플로맷>은 주장했다.

    유엔사가 해체되면 현재 대북제재 이행 감시를 위해 캐나다·호주·뉴질랜드군의 자산 전개에 이용되는 일본 내 7개 기지를 사용할 수 없게 되고, 결과적으로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도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유엔사는 6·25전쟁 당시 일본 내 7개 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일본과 협정을 맺은 바 있다.

    또 줄곧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해온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사의 존재에 문제를 제기하며 대북제재 해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상황도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북한이 종전선언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의 완전한 중단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대북제재 체제도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원칙이다.

    그러나 종전선언 이후 국면에선 군사력을 사용할 옵션과 함께 북한이 비핵화 조치 이행을 강제하는 동력이 약해지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디플로맷>은 경고했다.

  • ⓒ[사진 = 연합뉴스]
    ▲ ⓒ[사진 = 연합뉴스]
    북한과 우리는 종전선언으로 무엇을 기대하나? 

    종전선언의 의미를 ‘정치적 선언’으로 국한할 경우 북한의 처지에서 실질적 이익을 생각하기는 힘들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이미 지난해 10월 조선중앙통신 논평에서 밝힌 것처럼 더 이상 종전선언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평화협정의 경우 북한과 미국이 서로 적이 아님을 공식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 정권의 생존에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종전선언이 평화체제로 가기 위한 교두보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북한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익이 될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종전선언의 의미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10일 신년연설에서 “평화가 곧 경제”라고 주장했던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이 남북 모두에 이익이 되었다고 지적하며 남북경제협력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우리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 위에서 남과 북이 잘살 수 있도록 하는 목표 달성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관점에서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출발점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반면, 종전선언으로 방위비 분담금이 더 상승하는 경우도 예상된다. 종전선언으로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게 되면 미군이 주둔해야 하는 명분이 약해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주둔에 필요한 비용을 미국 측이 더 많이 요구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예상도 가능하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종전선언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러나 현재 종전선언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로 거론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내셔널 인터레스트>는 종전선언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미국과 한국이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며, 종전선언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