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포스, 헬기로 LA 착륙해 작전… 트럼프, 비밀조직 '카발' 거론하자 음모론 확산
  • 지난 2월 4일 LA 중심 윌셔가 일대에서 일어났던 미군 특수부대 활동. ⓒCBS LA 관련보도 유튜브 채널 캡쳐.
    ▲ 지난 2월 4일 LA 중심 윌셔가 일대에서 일어났던 미군 특수부대 활동. ⓒCBS LA 관련보도 유튜브 채널 캡쳐.
    한국에서는 이제 거의 회자되지 않지만 미국 사회를 몇 년 째 뜨겁게 달구는 주제가 ‘딥 스테이트’다. 정권 교체조차 마음대로 하면서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비밀 기득권 세력을 ‘딥 스테이트’라 부른다. 이 ‘딥 스테이트’가 최근 로스앤젤레스(이하 LA) 도심에서 일어난 사건과 겹쳐지면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한밤 LA 도심에 착륙한 헬기 6대와 특수부대

    2월 4일 오후 11시 15분(현지시간) LA 도심 윌셔 가 일대가 갑자기 통제됐다. 얼마 뒤 검은색 군용 헬기 6대가 건물 사이를 날면서 도로에 착륙했다. 헬기에서는 군인들이 내렸다. 복면에 야간투시경, 방탄복을 입은 군인들은 섬광탄(테러 진압, 인질 구출 등에 사용하는 특수폭탄)을 터뜨리며 어떤 건물로 진입했다. 군인들은 몇 분 뒤 건물에서 나왔다. 총 인원은 27명. 이 가운데 16명은 소형 헬기 4대에, 11명은 중형 헬기에 탑승하고 사라졌다. 중형 헬기에 타던 군인 가운데 두 사람은 손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나왔다.

    LA지역 방송국은 무슨 일인가 놀라 헬기까지 띄워 생중계했다. 윌셔 가 주민들은 스마트폰으로 이 장면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영상은 순식간에 퍼졌다. 곧이어 온갖 추측이 나왔다. 음모론자들은 “트럼프가 계엄령을 선포하려는 조짐이니 미리 준비하라”고 떠들었고, 다른 한 편에서는 “왜 야밤에 시끄럽게 도심에서 군사훈련을 하느냐”며 정부와 군 당국을 비난했다. 헬기와 군인들이 화제가 되자 경찰과 미군은 “육군의 단순한 항공 시뮬레이션 훈련”이라며 “오는 9일까지 LA 일대에서 이와 비슷한 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논란과 관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군사 전문가와 무기 애호가들이 몰려들면서 LA 도심에 나타난 군인과 장비의 정체도 드러났다. 공개된 영상으로 볼 때 소형 헬기는 MH-6 리틀버드, 중형 헬기는 MH-60S 나이트 호크 아니면 MH-60M 블랙호크였다. 이런 헬기를 쓰는 부대는 미 육군 제160특수작전항공연대(160th SOAR)가 대표적이다. 군인들의 방탄 헬멧, 야간투시경, 자동소총 등 장비와 이들의 몸놀림을 보면 특수부대로 보였다.

    이들의 정확한 정체를 놓고 온라인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일주일이 지난 뒤부터는 대충 윤곽이 그려졌다. 군인들은 합동특수전사령부(JSOC) 예하 육군 제75레인저 연대 정찰중대 또는 제1특전단 델타 분견대(1st SFOD-D, 일명 델타 포스), 해군특수전연구개발단(DEVGRU, 일명 네이비실 6팀) 소속이고, 헬기는 JSOC에 배속된 합동항공부대(JAV)일 것이라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 2016년 5월 플로리다 템파에서 열린 '특수전 주간' 기념 행사 때 모습. 미국에서는 특수부대가 이처럼 도심에 나타나는 일이 극히 드물다. ⓒ폭스 플로리다 유튜브 채널 캡쳐.
    ▲ 2016년 5월 플로리다 템파에서 열린 '특수전 주간' 기념 행사 때 모습. 미국에서는 특수부대가 이처럼 도심에 나타나는 일이 극히 드물다. ⓒ폭스 플로리다 유튜브 채널 캡쳐.
    미국 최강 특수부대가 왜 LA에, 한밤중에? 

    군인과 헬기의 정체가 대충 드러나자 사람들은 “대체 왜 미국 최강의 특수부대가 별다른 예고없이 한밤중에 LA 도심에 내렸냐”는 것으로 쏠렸다. 군대에 대한 문민통제가 강력한 미국에서는 도심에서 군사훈련을 벌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대도시 중심가에서, 그것도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헬기까지 동원한 훈련을 벌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여론이 많았다.

    이와 관련해 전직 레인저 출신 군사전문기자와 항공전문매체 ‘더 애비에이셔니스트’ 설립자까지 나섰다. 이들은 “미국 도심에서 특수부대가 헬기를 이용하는 훈련을 보는 것은 쉽지 않지만 2012년 4월 시카고, LA, 뉴욕, 워싱턴에서 동시다발로 훈련을 실시한 적이 있었고, 가장 최근에는 2018년 4월 뉴욕 맨하탄에서 야간 훈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미국인들은 이런 전문가들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음모론에 빠져 들고 있다. 바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 종종 올리는 ‘딥 스테이트’ 관련 음모론이다.

    ‘딥 스테이트’란 대통령이나 장관, 의원들처럼 겉으로 드러난 지도자는 진짜가 아니고, 배후에서 조종하는, 거대한 어둠의 세력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 어둠의 세력은 군산복합체나 삼변위원회,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록펠러 재단, 로스차일드 가문 등이고 CIA나 FBI는 그 하수인이라는 음모론이다.

    과거 미국에서는 무정부주의자나 좌익 진영 또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주로 ‘신세계 질서(NWO)’를 바탕으로 한 음모론을 주장했는데 2017년 말부터 유행하는 음모론은 좀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딥 스테이트’와 전쟁 중이라는 내용이다.

    2017년 10월 미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4chan’과 ‘8chan’에 ‘익명의 Q(Q anonymous, 줄여서 Q anon)’라는 사람이 음모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Qanon은 자신이 정부의 최고급 기밀을 다룰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미국을 지배하는 ‘딥 스테이트’ 세력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 조직의 이름은 ‘카발(Cabal)’로 아동 성매매, 인신매매, 장기밀매, 인체실험, 마약밀매, 정보기관 사유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는 게 Qanon의 주장이었다.

  • 트럼프에 반대하는 언론들은 'Qanon'을 믿는 사람들을 '극우 음모론 집단'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MSNBC 관련보도 유튜브 채널 캡쳐.
    ▲ 트럼프에 반대하는 언론들은 'Qanon'을 믿는 사람들을 '극우 음모론 집단'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MSNBC 관련보도 유튜브 채널 캡쳐.
    Qanon과 카발, 그리고 트럼프

    그는 ‘카발’의 일원으로 미국을 수렁에 빠뜨리고 있는 세력으로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조지 소로스 등 소위 ‘리버럴 인사들’과 CNN,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주류 언론을 지목했다. Qanon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에야 정보기관과 군 수뇌부 설득에 성공해 ‘카발’ 소탕작전에 나서기로 했다”면서 “앞으로 태풍이 불어 닥쳐도 선량한 미국인들은 너무 놀라지 말라, 트럼프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 미국의 주권을 미국인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너무 허무맹랑해서 세계 주류 언론들의 비웃음을 샀다. 지난해 8월에는 한국 주요 언론들도 워싱턴 포스트의 관련 기사를 인용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트럼프 지지자들은 다르게 생각했다. 이후 Qanon의 ‘딥 스테이트 카발’ 음모론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한글로 번역된 동영상도 있다.

    여기에는 외계인 연구가, 그 가운데서도 정부가 외계인과 UFO를 숨기고 있다는 사람들이 큰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코리 굿’과 ‘데이비드 윌콕’이다. 이들의 주장은 현재 아랍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한글, 일본어 등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돼 유튜브와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코리 굿’과 ‘데이비드 윌콕’은 미국 전역을 돌며 강연을 하기도 했다. 이들이 대중 강연을 하거나 동영상 속에서 “여러분에게 트럼프를 지지하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가 지금 우리 대신 ‘카발’과 싸우고 있고, ‘카발’이 숨기려는 비밀을 세상에 밝히려 노력 중”이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웃기는 이야기로 보이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아들이 트위터에 ‘딥 스테이트’와 ‘카발’을 여러 차례 언급했던 사실을 확인하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앞서 말한 LA 도심에서의 특수부대 훈련 모습이 유튜브에 퍼진 뒤 나오는 이야기도 이와 관련이 있다. 지금 적지 않은 미국인들이 “LA 도심에 야간 훈련을 한다며 내렸던 헬기와 군인들은 대통령 직속으로 움직이는 JSOC 소속 특수부대원들이며, 이들이 ‘카발’ 조직원을 체포 또는 사살해서 실어 갔다”는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 영상 속에서 중형 헬기에 타는 특수부대원 두 사람이 들고 있는 것이 ‘플라스틱 백(시체를 담아 운반하는 비닐 백)’이 아니냐는 주장과 특수부대원이 훈련으로 위장하고 급습한 건물의 주인이 CIA의 불법공작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받는 재벌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Qanon의 주장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카발’이 실존하는지는 알 수 없다. UFO 또한 마찬가지다. 어쨌든 지금 미국에서 유행하는 음모론과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반대 진영 간의 논쟁이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