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 5개국… 佛·獨 가세한 '에이트 아이즈' 얘기 나와
  • ▲ '파이브 아이즈' 동맹국과 참여 정보기관 목록. ⓒ레딧 닷컴 공개사진 캡쳐.
    ▲ '파이브 아이즈' 동맹국과 참여 정보기관 목록. ⓒ레딧 닷컴 공개사진 캡쳐.
    올해 초 국내 언론들은 “일본이 ‘파이브 아이즈(5 eyes)’에 가입하게 됐다”는 보도를 내놓았다. 최근에는 일본과 프랑스, 독일까지 더해 ‘에이트 아이즈(8 eyes)’ 체제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는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파이브 아이즈’ 구성 국가에서 나온 소식이 아니라 일본 언론의 보도다.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은 필요에 따라 '나인 아이즈', '포틴 아이즈', 심지어 한시적 체제인 '포티원 아이즈'까지 만든 적이 있다. 즉 '파이브 아이즈'를 제외한 다른 나라와의 연대체 구성은 태스크포스에 가까울 뿐 그 내부로 들어간 나라는 없다는 뜻이다.

    2차 세계대전과 ‘파이브 아이즈’

    ‘파이브 아이즈(5 eyes)’란 당초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2차 세계대전 말에 결성한 신호첩보(SIGINT) 담당기관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냉전을 거치면서 '파이브 아이즈'는 미국과 그 최측근 동맹국을 의미하는 말이 됐다.

    '파이브 아이즈'의 시원은 1941년 8월 미국과 영국 간에 2차 대전 이후 세계질서 재편을 논의한 ‘대서양 헌장’으로 알려져 있다. 1943년 5월 미국과 영국은 통신첩보협정(BRUSA)을 맺는다. 당시 협정 체결 당사자는 미국 전쟁성과 영국 정보암호학교(GC&CS)였다. 이 협정은 1946년 3월 미국과 영국 간에 광범위한 첩보 공유를 약속하는 UKUSA로 확대된다. UKUSA는 이후 미국 국가안보국(NSA)과 영국 정부통신본부(GCHQ) 간 공조의 근간이 된다. 이 체제는 이후 확장된다. 1948년 캐나다, 1952년 노르웨이, 1954년 덴마크, 1955년 서독, 1956년 호주가 여기에 가입한다. 그런데 1955년 미국은 UKUSA를 “미국과 영국, 그리고 UKUSA에 협력하는 영연방 국가만 첩보를 공유한다”는 내용으로 바꾼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이렇게 냉전 때부터 9.11테러 이전까지 감청조직 ‘에셜런’을, 테러와의 전쟁 때에는 ‘프리즘’, ‘X키 스코어’, ‘템포라’, ‘머스큘라’, ‘스테이트룸’ 같은 각종 감시 체계를 함께 운영하게 된다. 이 가운데서도 ‘에셜런’과 ‘프리즘’은 악명이 높다. ‘에셜런’은 냉전 때에는 주로 공산권 국가의 모든 통신을 감청하는 것이었지만 냉전이 끝난 뒤에는 전 세계의 모든 통신과 인터넷을 감시하는 체계가 됐다. ‘에셜런’의 뒤를 이은 ‘프리즘’은 단순한 감시체계를 넘어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계나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모든 기기를 감시할 수 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파이브 아이즈’에 참여하는 정보기관이 미국 CIA와 영국 MIS(SIS) 등이 주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주축은 미국 NSA, 영국 GCHQ, 캐나다 CSE, 호주 ASD, 뉴질랜드 GCSB다. 시간이 흐르면서 통신감청뿐만 아니라 인간첩보, 위성첩보, 지형정보 등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미국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 국방정보국(DIA), 국가지리정보국(NGA), 영국 해외정보국(MI6, SIS), 국내정보국(MI5, SS), 군사정보국(DI), 캐나다 정보방첩국(CSIS), 군정보사령부(CFINTCOM), 호주 비밀정보국(ASIS), 안보국(ASIO), 국방정보처(DIO), 뉴질랜드 안보정보국(NZSIS), 국방정보보안감독국(DDIS)이 동참했다.

    ‘파이브 아이즈’는 사실 미국과 얼마나 가까운 동맹국인가를 구별할 때 기준으로 쓰이기도 한다. 영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제1동맹,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대부분인 EU, 그 가운데서도 독일,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한국은 제2동맹, 이스라엘, 멕시코, 인도, 콜롬비아, 칠레, 브라질은 ‘단순 우방국’, 중국, 쿠바, 이란, 북한, 파키스탄, 러시아, 시리아는 ‘잠재적 적성국’이라고 분류한다. 그러나 이는 15년 전의 분류 기준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기준도 변했다는 게 정보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과 일본, 파키스탄이 대표적이다.
  • ▲ 이라크 사마와에 주둔했던 일본 자위대. ⓒ연합뉴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라크 사마와에 주둔했던 일본 자위대. ⓒ연합뉴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보는 시선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과 일본, 파키스탄을 달리 보게 된 결정적 계기는 테러와의 전쟁이다. 파키스탄은 테러와의 전쟁 초기만 해도 미국에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핵개발 문제로 인한 인도와의 대립,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으로 인한 국내치안질서 붕괴, 미국이 제시한 경제지원 등을 통해 미국과 급속히 가까워지면서 ‘지역 파트너’ 수준으로 인정받게 됐다.

    한국과 일본은 2003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과의 동맹 수준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미국은 2003년 3월 이라크 침공에 앞서 세계 각국의 동맹국들에게 병력 및 장비, 물자 지원을 요청했다. 미국에게 병력이나 장비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누가 우리의 친구인가”를 알아보는 과정이었다.

    한국은 2003년 4월 국회에서 파병 동의안을 의결했음에도 2004년 2월에야 3600여 명으로 구성된 자이툰 부대를 파병했다. 당초 미국은 사단급 부대를 요청했는데 한국은 그 구색을 맞추기 위해 사단장급인 육군 소장을 지휘관으로 해서 여단급 부대를 보냈다. 주둔지는 쿠르드족 자치지역인 아르빌 일대였다.

    일본은 2004년 1월 ‘이라크 복구지원 특별조치법’에 따라 자위대 병력 1000여 명을 보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위헌 논란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반대 여론이 심해졌다. 당초 일본은 미국의 요청을 받자마자 적극적으로 파병을 추진했다. 당시 고이즈미 정부는 1991년 2월 걸프전쟁 당시 130억 달러라는 거액의 전쟁비용을 부담하고도 쿠웨이트 정부로부터 감사 인사조차 받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실제 병력 파병에 열을 올렸다. 미국에게도 그렇게 약속했다.

    부시 정부는 고이즈미 정부가 자신한 대로 적지 않은 병력을 보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일본은 병력조차 제대로 보내지 못해 쩔쩔 매고 있었다. 파병 기간 또한 2004년부터 2006년까지로 짧았다.

    한국의 경우 부시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코드’가 너무도 맞지 않았다. “이라크 파병은 불가피한 결정”이라며 마지못해 부대를 보내는 듯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말은 미국 관계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마지못해 파견했다는 한국군은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용맹을 자랑하던, 그 한국군이 아니었다. 미군과 함께 이라크는 물론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를 누비며 특수작전까지 벌인 폴란드와 비교가 됐다.
  • ▲ 남중국해에서 대잠수함 훈련 중인 영국 해군 프리깃함 '아길'과 '서덜랜드', 일본 해상자위대 헬기모함 '카가'. ⓒ일본자위대 공개사진.
    ▲ 남중국해에서 대잠수함 훈련 중인 영국 해군 프리깃함 '아길'과 '서덜랜드', 일본 해상자위대 헬기모함 '카가'. ⓒ일본자위대 공개사진.
    이후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략이 바뀌고, 미군 전력도 축소하는 등 군사전략 전체가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는 한국과 일본을 저울질 할 일이 없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동맹을 저울질하게 된 것은 2017년 1월 트럼프 정부 출범 때부터다.

    트럼프의 ‘친구 평가’는 현재 진행형

    미국 사회는 오바마 정부 2기부터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긴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런 미국인들의 불안감을 겨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사회에서 하는 말은 침묵하는 다수의 중산층이 공감하면서도 감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내용이다. “미국에 물건을 팔아 그렇게 많은 돈을 벌면서 미국이 싸울 때는 꽁무니를 빼는 게 무슨 친구냐” “자기들 필요할 때만 친구라는 동맹을 우리가 왜 지켜줘야 하느냐” 등이 그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과 일본, 독일, 프랑스,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친구인가 아닌가를 구별해야 할 대상이다. 그 기준점은 중국과 북한이다. ‘파이브 아이즈’에는 포함되지 않는 독일, 프랑스, 일본이 ‘공동작업’을 벌이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시리아와 이라크, 예멘 등에서 평화유지를 하는 것도 이런 미국의 움직임 때문이다. 즉 일본은 눈치 빠르게 움직이는 셈이다.

    한국 언론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본이 파이브 아이즈에 포함될 것 같다”고 보도했지만, 그 시작은 지난해 봄부터다. 대북제재 결의 2397호를 통해 북한에 대한 석유수출이 금지되면서 미국 입장에서는 동아시아의 동맹이 누구인지 알아볼 기회가 생겼다. 일본은 이에 자기네가 운영하는 게 아닌 주일미군 기지를 국제사회에 제공하며 생색을 냈다. 해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 등이 미국 등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의 활동을 도왔다.

    일본 자위대는 또한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해군을 지원하면서 동지나해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과 제3국 선박의 불법 환적을 줄기차게 잡아내 공개했다. 미국은 정찰위성부터 신형 초계기까지 동원한 반면 일본 자위대는 위험하게도 초계기의 근접 비행을 통해 잡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친구 평가’는 2018년 8월부터 중국으로 옮겨갔다. 시작은 화웨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미국 연방정부기관에서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지시켰다. 그러자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가 서로 짠 것처럼 줄줄이 화웨이 장비를 퇴출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파이브 아이즈’ 국가에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들까지도 화웨이 장비 퇴출 의사를 밝혔다. 냉전 이후 미국을 가장 열렬히 지지한 폴란드는 2019년 1월 화웨이 관계자를 간첩 혐의로 체포했다. 독일과 프랑스, 대만도 화웨이 퇴출에 동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2월부터 ‘친구 평가’ 3단계를 벌이고 있다.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업체가 만든 통신장비를 전면 금지하는 행정명령 발표다. 이는 사실 웬만한 나라들이 따라 하기 어렵다. 앞으로 도입할 5G 통신이 아니라 기존의 LTE와 3G 통신망 장비 가운데 화웨이 제품이 적잖게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NTT도코모, KDDI, 소프트뱅크 등 일본 통신업체들은 5G 장비로 중국제를 쓰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 선언을 했다. 그러나 소프트뱅크를 포함해 일부 업체는 LTE 장비까지는 화웨이 제품 등을 사용했다.
  • ▲ 이미 존재하는 '포틴 아이즈' 가입국. '파이브 아이즈'는 필요에 따라 한시적 연대체를 구성한다. '나인 아이즈'나 '포틴 아이즈', '포티원 아이즈'가 그렇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 이미 존재하는 '포틴 아이즈' 가입국. '파이브 아이즈'는 필요에 따라 한시적 연대체를 구성한다. '나인 아이즈'나 '포틴 아이즈', '포티원 아이즈'가 그렇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 정부는 화웨이와 ZTE 제품 퇴출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일부 통신업체는 “신경 안 쓴다”며 화웨이와 함께 5G 통신망을 구축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파이브 아이즈’에 일본 가입? ‘5 eyes + 3’ 한시적 체제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파이브 아이즈’와 독일, 프랑스, 일본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본 한국과 일본 언론들은 지난해 말부터 지레 짐작으로 “이제 곧 일본도 ‘파이브 아이즈’ 동맹에 가입하게 된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2월 초순에는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에이트 아이즈'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파이브 아이즈가 독일, 프랑스, 일본을 집어 넣어 에이트 아이즈가 된다"는 주장은 유독 일본 언론에서만 나오고 있다.

    2018년 10월 12일 영국 로이터 통신은 단독보도라며 “파이브 아이즈 첩보동맹 대중국 연합 건설 추진”이라는 기사를 내놨다. 기사에는 “일본, 독일 이외에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나라들과도 연대할 생각”이라는 대목이 있다. 같은 해 12월 14일 영국 익스프레스는 중국 공산당이 ‘파이브 아이즈’ 국가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여론공작을 펼치고 있다는 정보기관 관계자들의 주장을 전하며 “파이브 아이즈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일본, 독일, 프랑스와 연대해 중국에 대응할 계획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본이 ‘파이브 아이즈’와 공조를 한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파이브 아이즈’ 체제에 공식 가입하는 것은 별개다. 지금까지 미국은 프랑스, 독일 등에 '파이브 아이즈' 가입을 권유, '식스 아이즈'를 만들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스라엘은 옵저버, 싱가포르는 파트너 관계다. 일본과는 "가치를 공유한다"는 정도까지만 진척된 상태다.

    정부 정보기관의 감청에 반대하는 진영의 웹진 ‘프라이버시 앤드 닷컴’은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이 필요에 따라 ‘나인 아이즈’, ‘포틴 아이즈’, ‘포티 원 아이즈’ 등의 정보기관 연대체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나인 아이즈’에는 덴마크, 프랑스, 네델란드, 노르웨이가, ‘포틴 아이즈’에는 여기에 더해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스웨덴, 스페인이 포함된다. ‘포티 원 아이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함께 싸웠던 41개 동맹국들의 정보기관 연대라고 한다. 즉 ‘파이브 아이즈’가 독일, 프랑스와 함께 일본에 모여 중국·북한에 대응하는 것만 보고 “파이브 아이즈가 에이트 아이즈로 바뀌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류다.

    일본이 정말 ‘파이브 아이즈’에 가입했다면 "2차 미북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이 납북자 문제를 언급하지 않으면 어쩌냐? 또 재팬 패싱이냐"는 언론 보도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