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극히 유감… 국회의장이 개입해 새로운 조건 내세우나" 한일 외교갈등 심화 우려
  • ▲ 문희상 국회의장. 이종현 기자
    ▲ 문희상 국회의장. 이종현 기자

    "주체를 특정한 게 아니라 책임 있는 지도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중요하다는 취지다."
    "일본 측은 수십 번 사과했다고 말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그런 적이 없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11일(현지시간) 방미 중 워싱턴 D.C의 한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근 논란이 불거진 '일왕 사죄' 발언과 관련해 이 같은 입장을 재차 밝혀 파장이 일고 있다.

    올해 초 한일 관계가 한국 법원의 강제동원 판결,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초계기-레이더' 갈등 등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문 의장의 '일왕 사죄 요구'와 '일본 측 사과 사실 부인'이 새로운 외교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문 의장은 지난 8일 방미 중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키히토 일왕을 '전쟁범죄의 주범 아들'이라고 칭하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나 곧 퇴위하는 일왕의 한마디면 된다. 고령 위안부의 손을 잡고 진정 미안했다고 말하면 그것으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발언 조심하기 바란다" 일본도 '초강수'

    지난 10일 일본 언론들은 문 의장의 이 같은 발언을 일제히 주요 기사로 보도했고,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발언에 조심하길 바란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급기야 12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까지 나서서 "정말로 놀랐다. 즉시 외교 경로를 통해 대단히 부적절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극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의사 표시를 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문 의장의 발언에 대해 "대단히 부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어 한국 정부에 극히 유감이라는 취지로 엄중하게 의사 표시를 하고 있으며 사죄와 (발언)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의 사죄 요구에 대해 한국 정부로부터 아직 별다른 반응이 없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가중되자, 문 의장의 일왕 사과 요구를 놓고 "국회의장이 외교 문제에 개입해 위안부 갈등 관련 새로운 조건을 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아베 총리와 만나 "양국이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친구가 되길 진정으로 바란다. 역사를 직시하면서 지혜와 힘을 합쳐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말한 취지에 '역행'한다는 분석이다.

  • ▲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가 2015년 8월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방문, 추모비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뉴시스
    ▲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가 2015년 8월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방문, 추모비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일본은 그동안 종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 등 수차례 사과를 한 사실이 있다. 무라야마 담화에서는 일본의 전쟁범죄 및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인정과 사죄를 밝혔다.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는 지난 2015년 한국 서대문형무소를 방문, 유관순 열사가 수감되었던 감방에 헌화했으며 광장에 있는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일본 우익 세력에서는 부정론도 나오지만 아베 정부는 공식적으로 고노·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고 있다. 고노 담화에는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 하의 참혹한 것이었다. 종군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럼에도 문 의장은 '진정성 결여'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일왕이 직접 위안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사죄하는 모습' 만이 해법이라고 제시한 것이다.

    "일왕에 대한 日 국민감정,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어"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날 오전 TBS 라디오 <뉴스공장>에 출연해 "일본 정부로서는 식민통치·비인도적 행위에 대해 몇 차례 걸쳐서 사죄했다"며 "전후에는 평화헌법도 만들었고 그 다음 새로운 세대의 일왕이 들어온 거니까 그걸 너무 (일왕 사죄 요구)언급을 하게 되면 (외교)정책의 논란이 있을 수가 있다. 일왕에 대한 남다른 일본 국민들의 감정은 우리 국민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지난달 30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를 보도하면서 '한국에 대한 배상 촉구해 온 전시 성노예 김복동, 92세에 숨을 거두다'고 표현한 것에 대해 외무성 보도관 명의의 반론문을 보냈다.

    일본 정부는 반론문에서 "여러 번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성실한 사죄를 했다"면서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보상 문제가 합법적으로 해결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심리적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