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외에 누구도 재판에 관여 못해… '인사권자 청탁' 들어줬다 해도 직권남용 안돼
  • ▲ 양승태 전 대법원장. 뉴데일리 DB
    ▲ 양승태 전 대법원장. 뉴데일리 DB
    사법부 수장으로서는 최초로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게 될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의 주요 혐의는 직권남용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장 고유의 권한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측은 재판개입이 대법원장의 직무가 아니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서도 직권남용죄 성립이 어렵다는 분석이다. 사건을 담당하는 법관 이외에는 누구도 재판에 관여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상급자인 인사권자의 청탁을 들어줬다 해도 직권남용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2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양 전 대법원장의 사건을 형사35부(박남천 부장판사)에 배당했다. 검찰은 전날 양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을 기소하면서 제출한 공소장은 300페이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적시된 양 전 대법원장의 범죄사실은 △법원의 이익 도모를 위한 재판개입 △법원 내외부의 비판세력에 대한 탄압 △부당한 조직보호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편성 및 집행 등 4개 부분에서 총 47개다. 또 이 중 41개가 직권남용 혐의다.  

    직권이 있어야 남용도 가능...“직권남용 성립 안돼”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은 3월 중순께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재판이 시작되면 양 전 대법원장 측과 검찰 측의 치열한 법리다툼이 예상된다. 피고인이 대법원장을 지낸 국내 최고의 법률전문가인 데다 양 전 원장이 받는 주요 혐의인 직권남용죄의 법리 적용이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제처에 따르면 형법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직권남용죄는 ‘직권’이 있어야 ‘남용’도 가능한 범죄다. 다스의 미국 소송에 공무원을 동원해 직권남용 혐의를 받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통령이 공무원에게 소송에 관여하라고 지시할 직무권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 전 대법원장도 재판개입이 대법원장의 고유직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구속 전 검찰 소환조사 때부터 “실무진이 알아서 한 일이라 잘 모른다”거나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대법원장이 재판에 개입할수 있느냐' 부터 따져야

    법조계에서도 같은 이유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직권남용죄 적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헌 홍익법무법인 변호사는 “직권남용죄는 성립요건이 까다롭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하려면 그가 실제로 재판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느냐부터 따져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또 실제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 있었다면 재판에 영향을 미쳤느냐에 대한 부분도 살펴봐야 한다”면서 “충분히 법리다툼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고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로서도 곤혹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직권남용죄 이전에 재판개입 자체가 성립가능한 것이냐는 의문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현석 수원지법 안산지원 부장판사는 지난달 24일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자 법원 내부 전산망에 글을 올려 “헌법과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해당 사건을 담당하는 법관 이외에는 인사권을 가진 법관을 비롯한 어느누구도 해당 사건의 심판에 관여할 권한 자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서 부장판사는 “법관 인사권자이거나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법원장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청탁을 해도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심판하는 것이므로 이를 따를 의무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담당판사가 상급자인 인사권자의 청탁을 들어줬다 해도 재판개입이 이뤄질 수 없으며 이에 따라 직권남용죄도 성립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