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판결해도 비난" 판사들, 김경수 항소심 부담…법조계 "집권당 발언 신중해야"
  • 지난달 30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구치소행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뉴데일리 DB
    ▲ 지난달 30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구치소행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뉴데일리 DB
    여당의 ‘사법부 흔들기’가 계속되면서 법조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당은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법정구속 이후 법관탄핵을 다시 거론하며 사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여당의 행태가 사법개혁의 탈을 쓴 또 다른 사법농단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은 지난 6일 설 민심 관련 간담회에서 “사법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아 사법농단에 관여한 판사가 아직도 재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있다”며 “당 차원의 적폐 법관탄핵 추진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수당인 여당은 지난 12월부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판사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이에 대한 방법으로 법관탄핵을 논의한 바 있다. 헌법 제65조는 법관 등이 직무집행을 하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경우 국회에서 재적 의원 3분의 1이상 발의에 재적 과반수 찬성으로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법관탄핵 배제안해"...여당, 설에도 김경수 판결 비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기자간담회에서 탄핵 소추 명단에 대해 “대여섯명 정도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사법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반발로 미뤄진 바 있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김 지사가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직후 ‘사법농단 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다시 법관탄핵에 대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김 지사에 대한 판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에 대한 사법 적폐세력의 보복성 판결이라는 것이 여당의 입장이다. 여당은 김 지사의 구속 이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사법농단 세력의 사실상 보복성 재판에 매우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좌파성향 변호사 단체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도 김 지사를 법정구속한 성창호 부장판사를 법관 탄핵 명단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히는 등 법관탄핵에 다시 열을 올리고 있다.

    민변은 지난해 10월 탄핵명단에 권순일 대법관과 이민걸·이규진·김민수·박상언·정다주 판사 등을 선정한 바 있다. 이어 지난달 31일에도 2차 탄핵명단을 발표하고 임성근·신광렬·조한창·이진만·시진국·문성호·김종복·최희준·나상훈 판사 등을 포함시켰다. 

    서울고법 판사들 "김경수 항소심 심리 부담"

    여당의 압박이 계속되면서 서울고법에서는 김경수 항소심만큼은 담당하고 싶지않다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다. 어떻게 판결을 해도 비난을 받을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서울고법은 형사합의부 14곳이 돌아가면서 재판을 담당한다. 김 지사의 항소심도 무작위 전자추첨을 거쳐 재판부 14곳 중 한 곳에 배당된다. 

    배당된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같이 김 지사에게 유죄를 선고한다면 여당으로부터 적폐판사로 낙인찍혀 성 부장판사처럼 법관탄핵 명단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해도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을 가능성이 크다. 

    판사들도 ‘부담스럽다’는 눈치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김 지사가) 차기 여권의 대선후보로 꼽히는 거물인데다 어떤 판결을 해도 비난을 들을 것이 뻔한데 어느누가 재판을 맡고 싶겠나”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앞으로 항소심도 있고 대법원 판결도 있는데, 1심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반헌법적이기도 하지만 이후에 판결에 대한 경고가 될 수 있다”며 “이런식으로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며 법치주의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법 독립성 침해" 법조계 우려 목소리 

    법조계에서도 여당의 사법부 흔들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당의 이 같은 압박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을 넘어 또 다른 사법농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의견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달 31일 ‘판결에 대한 불복은 항소를 통하여’라는 제하의 논평을 통해 ”재판에 불만을 가질 수 있고 억울함을 토로할 수 있다“면서도 ”헌법상 독립된 재판권을 가진 법관의 과거 근무경력을 이유로 특정법관을 비난하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고 결국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헌 법무법인 홍익 변호사는 “사법부의 독립성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매우 소중하게 다뤄야한다. 판결에 대해 그것을 보복이라고 하고 탄핵으로 손보겠다고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찾아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집권여당과 정부가 판결에 대해 입장을 얘기할 때는 굉장히 신중해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