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전 대통령, 돈 한 푼 안 받아…추상적 개념·자의적 해석으로 뇌물죄 덧씌워"
  • ▲ 채명성 저 <탄핵 인사이드 아웃> 표지. ⓒ기파랑
    ▲ 채명성 저 <탄핵 인사이드 아웃> 표지. ⓒ기파랑
    탄핵정국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았던 채명성(42·사법연수원 36기) 변호사가 28일 탄핵정국 이후 1년간의 소회를 담아 <탄핵 인사이드 아웃>이란 제목의 책을 펴냈다. 채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심판, 법원의 형사재판 과정에서 대통령 대리인단·변호인단에 모두 이름을 올린 유일한 변호사다. 채 변호사는 2016년 12월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시작된 일련의 과정과 박 전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지켜보며 느낀 소회를 책에 담아냈다.

    채 변호사는 머리말에서 "이 책의 문장들은 과거시제이지만, 책의 시선은 철두철미 미래를 지향한다"며 "탄핵사태는 거짓이 진실을 덮고, 법치가 정치에 굴복한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책은 △제1장 : 헌재는 심판인가 코치인가 △제2장 : 실체 없는 파면 사유 △제3장 : "법치 이름 빌린 정치보복" △제4장 : 거짓의 산 등으로 구성됐다.

    1978년 부산에서 태어난 채 변호사는 2004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 미국 산타클라라대 로스쿨을 거쳐 2015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제46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법무부·서울고검, 법무법인 화우 등에서 근무했다. 현재 법무법인 선정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이다.

    <탄핵 인사이드 아웃>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각종 이슈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 내용 가운데 탄핵정국 당시 큰 논란이 됐던 '태블릿PC'를 둘러싼 논란과 '묵시적 청탁·뇌물죄'에 관한 논란, 두가지 쟁점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 편집자

    "박근혜 탄핵, 거짓을 산처럼 쌓아올린 과정"

    필자인 채명성 변호사는 이 책의 3장의 소주제 3개를 할애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 불거진 갖가지 뇌물 혐의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면밀히 되짚었다. (제3장 여섯 번째 주제 '삼성 묵시적 청탁의 허구성' 229p~239p, 일곱 번째 주제 '롯데 70억과 SK 89억' 240p~258p, 여덟 번째 주제 '1원도 안 나온 뇌물죄' 259p~268p)

    채 변호사는 "탄핵 사태에 얽힌 모든 의혹은 '부당한 이권'으로 모아지는데, '이권'의 정점에 서 있어야 할 대통령에게는 단 한 푼의 돈도 흘러들어가지 않았다"며 "탄핵과 재판은 이 명백한 '사실' 앞에 무력해진 정치가 어떻게든 대통령에게 허물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거짓을 산처럼 쌓아올려 간 과정으로 요약된다"고 평가했다.

    그는 △묵시적 청탁 △경제공동체 △(기업들의) 포괄적 현안 등 3가지를 박 전 대통령 형사재판에서 '뇌물죄'를 구성하기 위한 장치로 꼽았다.

    '묵시적 청탁'은 추상적 개념…"억지스러웠다"

    '묵시적(默示的)'의 뜻은 '직접적으로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연중에 뜻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채 변호사는 책을 통해 '묵시적 청탁'의 등장 배경과 문제점을 상세히 묘사했다.

    당초 박영수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서원(최순실)과 공모해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삼성 승계 작업'을 도와 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았다"며 "그 대가로 (박 대통령이) 영재센터·미르재단·케이스포츠재단을 통해 뇌물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채 변호사는 책을 통해 특검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엘리엇 등 외국 자본에 대한 경영권 방어 강화 등 '삼성 승계 작업 10가지 현안'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채 변호사는 "특검의 주장이 인정되기 위해선 특검이 주장하는 삼성의 승계 작업이 존재해야 하고, 동시에 이재용 부회장이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어야 한다"면서 "특검은 10가지 개별 현안의 청탁 입증이 어렵게 되자 현안을 통합해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 작업'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만들어 냈고, 명시적으로 청탁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게 되자 '묵시적 청탁'이라는 개념을 끌고 왔다"고 주장했다. 

    특검의 이같은 주장에 당시 대통령 형사재판 1심은 "포괄적 현안으로서 승계 작업이 존재하지 않으며, 명시적·묵시적으로 '부정한 청탁' 역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반면, 이 부회장 형사사건 1심은 포괄적 현안으로서 승계 작업이 존재하며, 명시적인 부정 청탁은 존재하지 않으나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이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정반대의 결론이 나온다. 책은 "대통령 항소심은 포괄적 현안으로서 승계 작업과 묵시적 청탁 모두 인정한 반면, 이 부회장 항소심은 포괄적 현안으로서 승계 작업도,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부정 청탁도 인정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채 변호사는 "이처럼 사건·심급(審級)마다 재판부의 판단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사실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사법부의 판단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특히 '명시적 청탁'이 없었다는 점을 모든 재판부가 인정하면서도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 작업' '묵시적 청탁'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더해 '정황상' 유죄를 인정한 것은 억지스럽다"고 주장했다.

    채 변호사는 "'삼성 승계 작업'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인데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만난 2015년 7월 25일은 이미 두 회사 합병에 대해 주주총회 승인 결의까지 난 뒤였다"며 "면담 당시 종결된 사안이어서 대통령이 도움을 줄 사안이 원천적으로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채 변호사는 특검이 '삼성 승계 작업'이라고 주장한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은 "국민연금의 반대로 무산된 사안",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계획에 대한 금융위 승인' 건도 "금융위 거부로 무산된 사안"이라며 책을 통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결국 특검은 대통령 재직 기간 삼성그룹의 각종 현안 사항을 일단 열거해 놓고, 삼성그룹 각 계열사들이 각자 경영상 필요에 따라 진행했던 사업을 모아서 근거 없이 모두 승계 작업과 관련된 것으로 연결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설령 삼성 승계 작업이 존재한다고 해도 뇌물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부정한 청탁'이 존재해야 한다"면서 "특검의 주장은 '부정한 청탁'이 대통령과 이 부회장 독대 자리에서 있었다는 것인데 둘 다 청탁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데다 청탁 존재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채 변호사는 "정부의 삼성에 대한 우호적 기조는 대기업 투자 촉진을 통한 경제 활성화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어서 독대나 청탁과 무관한 것이었다"며 "삼성의 현안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부정한 청탁이라고 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며, 명확성·무죄 추정의 원칙이 강조되는 형사재판에서 별다른 근거 없이 '묵시적 청탁'이라며 유죄를 선고를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朴 전 대통령, 롯데·SK 뇌물 받았나, 안 받았나?

    책에 따르면,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최서원과 공모해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특허와 관련된 부정 청탁의 대가로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에게 2016년 5월 케이스포츠재단에 70억 원의 '뇌물'을 공여하게 했다는 혐의로 박 대통령을 기소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신동빈 회장이 2016년 3월 14일 단독 면담에서 대통령에게 면세점 재취득과 관련된 '명시적 청탁'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통령이 70억 원을 재단에 지원하도록 요구한 점에 대해 '묵시적 청탁'을 인정했다.

    채 변호사는 "롯데그룹은 앞서 2015년 12월 30일에도 미르재단에 28억원을 출연했고, 대통령과 신 회장의 단독 면담 이후 2016년 4월 5일에도 케이스포츠재단에 17억 원을 출연했다"며 "모두 전경련을 통한 정상적 절차를 통해 출연이 이뤄졌고 이 출연금에 대해 검찰은 따로 뇌물죄로 기소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나중에 출연한 70억원만 뇌물이 된다는 (검찰) 판단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며 "같은 기업의 출연금이,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낸 것은 뇌물이 아니고 대통령을 만난 이후에 낸 것도 어떤 것(17억 원)은 뇌물이고 어떤 것(70억 원)은 청탁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으니 뇌물이라는 판단은 납득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책에 따르면, 채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기존 출연 기업인 롯데그룹에 70억 원 출연을 추가 요구했다는 것과, 재단 출연금 형태로 뇌물을 받으려 했다는 검찰의 주장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은 조사 과정에서 신 회장에게 추가 출연을 요청하지 않았으며, 신 회장도 대통령으로부터 이같은 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진술했다.

    책은 또 케이스포츠재단과 같은 공익재단의 출연금은 재단 이사회 및 주무부처에 엄격히 관리되기 때문에 사적 유용이 불가능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채 변호사는 "최서원이 케이스포츠재단 자금을 빼내려다 사기미수죄로 기소된 사실만 보더라도 재단 출연금 형태로 뇌물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SK그룹도 예외는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최서원과 공모해 워커힐호텔 면세점 특허,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 인수합병 및 최재원 SK 부회장 가석방과 관된 부정 청탁의 대가로 케이스포츠재단·비덱스포츠·더블루케이에 총합 89억 원의 뇌물을 공여하게 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책에 따르면, 1심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이 2016년 2월 16일 대통령 단독 면담에서 워커힐호텔 면세점 특허 등 SK그룹의 현안에 대해 대통령에게 이야기한 사실은 인정되나 대가 관계에 대한 명시적 언급이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했으나 '묵시적 청탁'은 인정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명시적 청탁'을 인정했다.

    채 변호사는 "이미 SK그룹은 전경련 요청에 따라 미르재단에 68억 원, 케이스포츠재단에 43억 원을 출연한 적이 있는데 검찰은 이런 출연금은 뇌물죄로 따로 기소하지 않고 이후에 문제가 된 89억 원만 뇌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동일 기업이 동일 재단에 출연했는데 전자는 뇌물이 아니고 후자는 뇌물이라고 하는 것은 롯데그룹 건과 같은 자의적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뇌물' 혐의와 관련해 기소되지도 않았다. 채 변호사는 "검찰 주장대로 최 회장이 대통령 독대 자리에서 부정 청탁을 했다면, 이후 협상이 결렬돼 자금이 집행되지 않았더라도 뇌물공여죄는 성립된다"며 "뇌물을 약속한 자는 불기소하면서 뇌물을 요구한 자만 기소하는 것은 뇌물죄의 비정상적 처리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89억 원은 집행되지 않았다. 책에 따르면, 당시 SK그룹은 더블루케이 및 비덱스포츠 관련 제안이 대통령 요청에 의한 것인지 의구심을 품고 있었고,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통해 실체 파악 시도를 하게 된다.

    안 전 수석은 2018년 1월 30일 대통령 형사사건 수사 과정에서 "(제안 사업에 대한 출연을) 파악해서 안 되겠다고 하면 안 하는 것이고 추가 출연도 할 필요 없다는 식으로 (SK 측에) 말했고, 대통령께도 말씀드렸다"며 "대통령도 수긍하셨다"고 증언했다. SK그룹은 2016년 5월경 안 전 수석으로부터 "케이스포츠재단 등에 추가 지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통지를 받고 협상 절차를 종료한다.

    채 변호사는 "만약 최 회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케이스포츠재단 등에 대한 지원 요청을 받았다면 SK그룹이 실체 파악에 나서 협상을 지연시키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결국 SK의 경우도 최서원이 사실상 본인이 운영하는 더블루케이와 비덱스포츠를 통해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대통령의 뜻인 것처럼 호가호위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경제공동체?

    채 변호사는 "특검은 최서원의 뇌물 혐의를 대통령에게 전가시키기 위한 논리로 경제공동체설을 들고 나왔다"며 "최서원과 대통령이 경제적으로 이익을 공유하는 경제공동체 관계이므로 최서원이 받은 뇌물은 대통령이 받은 것과 동일하다는 논리였다"고 회고했다.

    특히 '헌법 수호 의지' '묵시적 청탁' 등을 놓고 채 변호사는 "변호사가 보기에도 생소한 용어"며 수사·사법당국이 박 전 대통령을 사실상 파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헌재가 박 대통령을 파면하기 위해 '헌법 수호 의지'라는 모호한 개념을 처음으로 꺼냈던 것처럼, 박 대통령을 뇌물죄로 엮기 위해 검찰은 '경제공동체'를, 법원은 '묵시적 청탁'을 들고 나왔다"며 "변호사에게도 생소한 개념을 들고 나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채 변호사는 "검찰과 특검은 엄청난 인력을 동원해 대통령과 최서원, 안종범 등 관련자 계좌를 추적했지만 대통령이 받은 돈은 1원도 나오지 않았다"며 "대통령이 뇌물을 단돈 1원도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이 이 사태의 진실을 웅변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서원이 대통령을 팔아 위세를 과시했을 수 있고, 대통령이 최서원에게 속아 더블루케이가 기업들과 접촉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했을 수 있다"며 "설령 그렇다 해도 대통령이 뇌물죄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최서원과 뇌물을 공모하거나 뇌물을 직·간접적으로 수수한 사실도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