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정상화委 '징계요구권' 박탈 결정… "출석 요구 등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규칙 변경"
  •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전 정권 시절 직원들을 사실상 '사찰'해 징계 등을 요구해온 'MBC판' 적폐청산기구인 'MBC 정상화위원회(이하 정상화위·위원장 정형일 보도본부장)'의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법원이 정상화위의 출석조사나 징계요구권을 박탈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최승호 MBC 사장 취임 이후 출범한 정상화위는 ▲특정 사원을 출석시켜 ▲답변이나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이에 불응할 경우 징계를 요청하는 권한을 행사해왔으나 이번 법원 결정으로 남은 활동기간(6개월) 상당한 제약이 따를 전망이다.

    法 "정상화위 효력정지가처분신청 인용"

    29일 방송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방법원은 28일 오모 MBC 전 보도본부장과 허모 MBC 전 보도본부 부국장이 지난해 10월 MBC와 정상화위를 상대로 낸 (출석·자료제출·징계요구권)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인용했다.

    법원은 "정상화위가 특정 사안에 해당하는 직원과 부서를 상대로 출석·답변·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인사위원회에 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명시한 '정상화위 운영규정'은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취업규칙에 해당하므로 근로기준법상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따른 동의가 있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이어 "기록상 근로자 과반수가 가입한 제1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조합장이 운영규정 제정에 동의하는 입장인 것으로 보이나, 정상화위가 운영규정을 제정하면서 제1노조와 사전에 협의하거나 제1노조 내부에서 공식적인 의견수렴 절차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취업규칙 변경이 실질적으로는 과반수 노조(제1노조) 소속 근로자들에게만 불이익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면 소수 노조(MBC공정방송노동조합·MBC노동조합, 이하 제2·3노조) 소속 근로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대두된다"며 "과반수 노조가 취업규칙 변경에 동의권을 갖는다 하더라도 동의권을 행사함에 있어 소수노조를 차별해서는 안되고, 소수노조에도 절차에 참여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전협의 없이 소수노조에 불리한 운영규정 제정"

    법원은 "정상화위는 정상화위를 대표하는 2인과 제1노조가 추천한 2인으로 구성돼 제2·3노조 소속 근로자의 참여가 완전히 배제돼 있고, 정상화위원회의 조사 및 징계 요청이 제2·3노조 소속 근로자들을 상대로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운영규정을 제정함에 있어 제2·3노조와 아무런 협의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이어 "제2·3노조의 절차참여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았음에도 불구, 오로지 제1노조의 동의만으로 이 사건 규정이 제2·3노조 소속 근로자에게 효력이 미친다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며 "본안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직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출석조사, 자료제출 요구, 징계 요청 등에 대한 정상화위 운영규정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앞서 정상화위와 동일한 취지로 출범한 'KBS 진실과미래위원회'가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설치 및 운영규정 효력을 정지당하는 법원 결정을 받은 데 이어 MBC 정상화위도 "2.3노조와 협의 없이 취업규칙을 변견해선 안된다"며 운영규정 효력이 원천봉쇄되는 결정을 받음에 따라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마녀사냥식'으로 자행돼온 '공영방송 적폐청산작업'에 적지 않은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해고무효확인소송에도 영향 끼칠 듯"

    정상화위의 기능을 사실상 정지하는 법원의 결정이 내려지자 소수노조인 MBC노동조합(제3노조·위원장 임정환)은 28일 성명을 내고 "그동안 소수노동조합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탄압해온 공영방송 MBC 경영진들에게 법원이 준엄한 잣대로 경종을 울린 것이라 본다"며 "회사는 정상화위원회 조사를 근거로 내린 해고와 각종 징계를 무효화하라"고 요구했다.

    한 MBC 관계자는 "정상화위 활동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당사자들은 2·3노조원들인데, 운영규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이들의 참여가 봉쇄된 점을 법원이 날카롭게 지적했다"며 "앞으로는 정상화위의 출석요구를 거부하거나 답변자료 제출을 안해도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2·3노조원 모두 환영의 의사를 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이제부터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고 본다"며 "법원에 해고무효확인소송을 낸 박상후 전 MBC 전국부장 등의 소송에도 이번 결정이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또 "이번 결정을 기점으로 정상화위가 과거만 들여다보지 말고 제도 개선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고, 불공정보도 사례가 있다면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언론계 보복의 광기 잠재우는 계기 되길"


    앞서 '진실과미래위원회'의 불법성을 지적하며 법원에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냈던 'KBS공영노동조합(이하 공영노조·위원장 성창경)'도 같은 날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공영노조는 "이번 결정으로 29일로 예정된 일부 MBC 직원들에 대한 징계도 사실상 불가능해질 전망"이라며 "정의의 승리요, 상식의 회복이며, 법치의 복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KBS에 이어 MBC 정상화위원회에 대한 법원의 불법성 판단이 언론계에 난무하는 보복의 광기를 잠재우고, 불공정·왜곡·선동 보도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고 밝혔다.

    공영노조 관계자는 "KBS의 적폐청산위원회인 '진실과미래위원회'가 법원에 의해 지난해 9월 활동정지가처분이 부분인용되면서 사실상 활동이 중단된 데 이어 두 번째 쾌거"라며 "과거 정권, 혹은 과거 사장 시절 일해온 직원들에 대해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보복성 징계를 해오던 것이 비로소 법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직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내 전산망의 직원 이메일을 몰래 들여다본 의혹까지 제기돼 당국의 수사까지 받고 있는 '진실과미래위원회'가 당초 1차 활동기한인 10개월을 넘겨 추가로 6개월을 더 활동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고 있다"며 "징계시효 2년을 넘긴 사안을 조사하는 등 보복을 목적으로 과거를 털고 엮어 반대파 직원들에 대한 징계를 추진하려 한다면,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MBC "법원 결정에 유감…이의신청할 것"


    한편 MBC는 29일 "법원이 정상화위 운영규정 효력 정지 등 가처분 결정을 인용한 데 대해 이의신청 등 법적 절차를 밟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MBC는 "MBC정상화위원회는 지난해 1월19일 노사 양측이 합의해 출범한 공식기구로, 위원회는 그 합의를 바탕으로 사용자측과 소속 노동자 과반수 노동조합이 2인씩 추천한 4인으로 구성됐다"며 '과반노조의 유효한 동의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고 판단한 법원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MBC는 "위원회는 '공영방송 MBC 장악'의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고 불행한 역사의 재발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본사는 노사 합의로 설치된 공식기구가 활동 만료시한까지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이므로 이의신청 등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