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신년사 사실상 핵보유국 선언…한미북 정상회담 '위장된 평화쇼' 진실 맞게 될 것
  •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 북한 김정은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뉴데일리 DB
    ▲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 북한 김정은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뉴데일리 DB
    북한 김정은 노동당위원장 겸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사실상 핵보유국임을 선언하고 앞으로 핵동결과 함께 미국과 동등한 핵보유국 지위에서 1대1 군축회담을 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가운데 제2차 미북정상회담이 2월 말 열릴 예정이어서 회담 결과가 주목된다.

    앞서 김정일은 신년사에서 기존 보유핵은 그대로 둔 채 향후 핵무기 제조‧시험‧전파‧사용은 하지않겠다는 소위 ‘4불(不)’ 입장을 천명함으써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임을 대내외에 알렸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 들어 노동당 규약과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하고 있다. 현재 국제적으로 공인된 핵보유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 5개국이지만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처럼 사실상 핵보유국 인정을 받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2월 말 2차 미북정상회담…北, 핵현황 신고‧로드맵 제시 난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약속한 대로 김정은과 2차 회담을 갖겠다고 나섰다. 미국과 북한은 지난 1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간의 고위급 회담, 김영철 부위원장의 트럼프 대통령 면담, 스웨덴 스톡홀름 인근 휴양시설 ‘하크홀름순트 콘퍼런스’에서 열린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간 실무협상을 통해 2차 미북정상회담의 의제와 장소를 논의했다.

    특히 스웨덴 회담에는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도 합류했다. 이들은 뒤늦게는 일본 측 북핵 협상 대표인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만찬을 함께하며 협상 결과를 공유했다. 스웨덴 회담에이어 후속 실무협상이 곧바로 열릴 전망이다.

    하지만 미북 2차정상회담이 열린다해도 미국 등 국제사회가 바라는 북핵폐기를 위한 구체적 방안 합의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즉 북한이 핵시설‧핵물질‧보유 핵무기를 포함한 핵 리스트를 신고하거나 핵폐기 로드맵을 제시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란 얘기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북한이 일방적으로 비핵화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핵우산 철거를 의미하는 한반도 비핵화 이야기만 했다. 가나스기 국장은 스웨덴 현지에서 비건 대표 등과 만찬이 끝난 후 한국 기자와 만나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 지난해 2월 8일 '건군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이 열린 가운데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가 등장한 모습을 조선중앙TV가 녹화 중계하고 있다.(사진=조선중앙TV 캡쳐)ⓒ뉴시스
    ▲ 지난해 2월 8일 '건군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이 열린 가운데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가 등장한 모습을 조선중앙TV가 녹화 중계하고 있다.(사진=조선중앙TV 캡쳐)ⓒ뉴시스
    역사상 자국의 힘으로 핵 개발에 성공한 나라의 지도자 치고 핵을 포기한 사례는 결코 없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기존의 북핵폐기 방침에서 미본토를 겨냥한 핵탄장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거로 방향을 틀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북한이 미 본토에 대한 핵무기 운반수단인 ICBM의 폐기를 제시하면 미국은 상응조치로 대북제재 일부 완화 또는 부분 해제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양보의 폭이 커질 경우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전면 폐지, 종전선언 및 평화체제의 실질적 검토, 미북 연락사무소 설치 등도 예상된다.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언급했던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조치 역시 미국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다.

    '탄핵 위기' 트럼프, 2차회담 국내외 악재 탈출 기회로 활용할 듯

    지난해 6월 12일의 트럼프-김정은 싱가포르 미북선언은 6.25 참전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을 위해 미북 양국이 협력한다는 대목을 제외하면 과거 수많은 북핵폐기 합의문 보다 크게 후퇴한 ‘맹탕 문서’였다는 것이 국제사회와 세계 언론의 전반적 평가이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선언과 6.12 싱가포르 미북정상선언, 9.19 평양 남북정상선언은 북핵문제 해결과 관련한 역대 합의들, 즉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2.1.20 서명)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문(1994.10.21. 서명) △9.19 베이징 6자회담 공동성명(2005.9.19. 서명) △2.13 베이징 6자합의(2007. 2.13. 서명) △10.3 베이징 6자합의(2007.10.3. 서명) △10.4평양남북공동선언(2007년 10.4 서명) △2.29 미북합의(2012.2.29. 발표)보다 비핵화를 후퇴시켰다는 것이 거의 모든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따라서 트럼프로서는 이런 굴욕적 평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2차회담에서는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ICBM제거, 영변 핵단지 폐기 등 가시적 성과 한 두 개 정도는 반드시 도출해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내년 11월 3일로 예정된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로서는 △러시아 정보기관과 공모, 2016년 미 대선에서 자신의 당선을 유리하게 이끌려했던 의혹 및 이에 대한 특검수사를 막으려했던 이른바 ‘사법 방해(obstruction of justice)’ △언론자유 위협 △정적에 대한 괴롭힘(harassment) 및 기소 촉구 △온갖 섹스 스캔들과 금품 비리를 포함한 대통령직의 명예 실추 등 다양한 위법 행위로 야당인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하원에서 탄핵소추 위기까지 맞고 있는 실정이어서 2차 미북정상회담을 안팎의 악재로부터 자신을 ‘구출’하는 기회로 활용해야할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여 있다.

    그럴려면 국제사회가 바라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는커녕 이보다 개념이 약화된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는 ‘장기 과제’(?)로 남겨 두면서 당장 영변 핵단지 폐기나 ICBM 제거를 이끌어내 자신의 업적을 과시해야할 입장이다.

    이와 관련,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1월 11일 미국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북한과 대화(conversations)하는 궁극적 목표가 ‘미국인들의 안전(the security of American people)’이라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미국, 북핵폐기 대신 ICBM 제거 초점…상응조치로 제재 일부 완화

    이 같은 언급은 미 본토에 대한 위협방지에 미북회담의 우선 순위를 두겠다는 것으로 북한의 ICBM 제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지난 9일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수 미 테리 선임연구원은 “폼페이오 장관이 최근 들어 북한의 비핵화라는 표현 대신 ‘미국에 대한 위협 제거’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면서 달성하기 어려운 북핵폐기 대신 미 본토의 위협과 관련된 ICBM 제거로 방향을 튼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 '트럼프 탄핵'을 외치는 미국 시위대.ⓒ뉴시스
    ▲ '트럼프 탄핵'을 외치는 미국 시위대.ⓒ뉴시스
    2차 미북정상회담이 ‘빅딜’이 아닌 ‘스몰딜’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바로 폼페이오의 이 같은 발언 때문일 것이다. 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지난 1월 19일 <로이터통신>으로 보도된 기사에서 제2차 미북정상회담이 사전에 충분한 준비없이 시간에 쫓기듯 열리는 것과 관련, “북측에 유리한 쪽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정부 셧다운(shutdown; 일시적 업무정지) 사태와 러시아 미 대선개입 스캔들 특검수사 등에 따른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승리(win)’에 집착한 나머지 북한과 자칫 완전한 핵폐기 없는 ‘나쁜 거래(bad deal)’를 할 가능성을 경계했다.

    미국은 지금 로버트 뮬러 특검의 수사 결과 발표가 임박하면서 트럼프 탄핵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현재까지 특검은 측근 5명의 유죄를 이끌어냈다. 미 외교안보전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은 지난 20일 ‘2019년 10대 리스크(Top 10 Risks of 2019)’를 발표하고 트럼프 탄핵 가능성을 제1위로 언급했다.

    애틀랜틱 카운슬은 “뮬러 특검의 조사결과 러시아와 결탁이 확인되면 실제 탄핵될 가능성이 있다(Trump’s impeachment is a real possibility if Special Counsel Robert Mueller’s charges are convincing.)”며 “광범위한 공모결탁이란 명백한 증거가 나오면 공화당을 분열시킬 수 있고, 지지자 상당수는 조작이라고 맞서 싸우며 국가적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Clear-cut proof of widespread collusion could split the Republicans. Trump’s impeachment could trigger a national crisis with many of his supporters battling what they perceive to be a rigged system.)”고 말했다.

    "최악 거래, 미국이 ICBM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를 맞바꾸는 것"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 수호재단(FDD·The Foundation for Defense of Democracies) 선임연구원은 지난 1월 20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2차 미북정상회담에서) 걱정되는 점은 ICBM 폐기라는 김정은 제의를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면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흔들어버릴 미군 철수를 바란다는 말을 해왔고,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과의 협상은 미 본토 안전이 긍극적 목표라고 한 것이 우려의 이유”라며 “이런 식의 결론은 북한이 오랜 기간 추구해왔던 북한에 의한 한반도 무력 통일을 부추길 수 있어 한국과 미국에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지금 문재인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둘러싸고 미국과 이견을 보이고 있는 주요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전직 외무장관인 한승주·공로명·윤영관·송민순씨를 비롯한 외교안보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감축 및 철수를 포함한 주한미군 주둔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해리 카자니스 미 국가이익센터(Center for the National Interest) 방위연구국장도 “미국과 북한이 최소한 구체적 비핵화 합의를 이뤄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리얼리티 쇼’에 불과해질 수 있다”면서 “(최소한) 북한 영변 핵시설 폐기와 부분적 제재 완화나 종전선언과 같은 중간단계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차 미북정상회담, ‘리얼리티 쇼’ 가능성"

    애틀랜틱 카운슬의 로버트 매닝 선임연구원 역시 “북한의 핵무기 폐기라는 로드맵이 없는 상황에서 열리는 2차 정상회담은 커다란 리얼리티 쇼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에 쏠린 국내 시선을 돌리기 위해 김정은에게 끌려서 핵동결과 평화협정 체결, 한미동맹해체, 핵우산 폐기 등의 합의를 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할 조치를 할 준비가 돼있다면 2차 정상회담은 1차 정상회담과 크게 다르겠지만, 그가 지연작전을 쓰려고 하면 1차 정상회담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에게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이 지난해 12월 21일 청와대에서 만났다.ⓒ청와대 제공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이 지난해 12월 21일 청와대에서 만났다.ⓒ청와대 제공
    비핵화 협상이 이처럼 진전이 없는 것은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크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한반도의 비핵화’, 더 정확히 말하면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는 유사시 미국 핵전략 자산의 한반도 배치 금지등 한국에 대한 미국 핵우산 제거는 물론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와 연결되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북한 측에 확인하지 않고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며 트럼프에게 그대로 전달해 트럼프를 회담으로 끌어들였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해 3월 5~6일 서훈 국정원장 등 일행 4명과 함께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그해 3월 9일 문재인 특사자격으로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한 후 기자들에게 영문발표문을 통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I told President Trump that, in our meeting,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said he is to committed to denuclearization. ...President Trump appreciated the briefing and said he would meet Kim Jong Un by May to achieve permanent denuclearization.”(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이 비핵화를 결심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설명에 감사하면서 영구적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5월까지 만나고 싶다고 했다.)

    비핵화 실체, 韓·美·北 합작한 속임수로 드러날 것

    정의용 특사는 김정은을 만나고 서울로 돌아와 3월 6일 읽은 언론발표문에선 북측이 ‘한반도의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했는데 백악관 발표문에선 ‘한반도’를 빼고 '김정은이 비핵화를 결심했다'고 전한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비핵화’는 전혀 다른 개념인데 트럼프가 이 둘의 차이를 모르고 “비핵화를 결심했다”라는 말만 믿고 김정은과 만나겠다고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의용 특사는 이어 발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The Republic of Korea, along with the United States, Japan, and our many partners around the world remain fully and resolutely committed to the 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한국과 미국, 일본, 그리고 세계의 여러 협력국들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완벽하게 그리고 강력히 지지한다.)

    그러나 위 문장에서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일치된 개념인 ‘북한의 비핵화’를 뜻한다. 즉 정의용 특사가 그날 트럼프에게 전달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북한의 비핵화’였다. 이 같은 사실은 이날 트럼프가 올린 아래의 트위터 글에서 잘 나타나 있다.

    “Kim Jong Un talked about denuclearization with the South Korean Representatives, not just a freeze. Also, no missile testing by North Korea during this period of time. Great progress being made but sanctions will remain until an agreement is reached. Meeting being planned!” (김정은은 남한 대표단과 만나 핵동결뿐 아니라 비핵화를 이야기했다. 이 시기엔 미사일 시험도 없을 것이라 한다. 큰 진전이 있었지만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제재는 계속될 것이다. 회담이 계획되고 있다!)”

    트위터 원문을 보면 트럼프는 ‘비핵화’를 ‘북한의 비핵화’로 생각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만약 트럼프가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의 비핵화’ 의미에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과연 김정은과 만나겠다고 나올 수 있었을까?. 결론적으로 정의용 특사가 그런 설명 없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얘기만 전했으며, 이를 믿은 트럼프가 김정일과의 회담에 응했다면 정의용 특사는 결과적으로 한국 국민과 트럼프, 전 세계인을 속인 것이 된다.

    북한은 지난 20~31일 사이 조선중앙통신, 노동신문, 대남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와 ‘메아리’ 등 관영 매체를 총동원해 판문점선언·싱가포르선언·평양선언 등 어느 구절에 눈을 씻고 봐도 ‘한반도의 비핵화’란 말만 있지 ‘북한의 비핵화’란 말은 없다며 보유핵의 폐기 의사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고 한국과 미국을 조롱까지 했다.

    특히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0일 “미국은 조선반도 비핵화를 ‘북 비핵화’로 어물쩍 간판을 바꿔 놓음으로써 세인의 시각에 착각을 일으켰다”며 “(조선반도 비핵화는) 우리의 핵 억제력을 없애는 것이기 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이 같은 언급에 대해 공식 논평을 하지 않았다. 미국 조야에선 “비핵화 협상의 중재자 역할을자처하던 한국 정부의 해명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지난해 19일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입장하며 환호하는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뉴데일리DB
    ▲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지난해 19일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입장하며 환호하는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뉴데일리DB
    北 주장 ‘비핵화 의미’제대로 보도 안한 언론 책임도 막중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데는 우리 언론의 책임 또한 막중하다. 예컨대 지난 1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의 사이먼 데니어(Simon Denyer) 서울지국장이 문 대통령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When you met Kim Jong Un last year, did you have the chance to ask him how he would defin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지난해 대통령께서 김정은을 만났을 때 김정은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질의하실 그럴 기회가 있었습니까?)”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말하는 비핵화는 국제사회가 말하는 CVID와 다르지 않다고 분명히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답변은 거짓이었다. 김정은은 지금까지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언급했지 ‘북한의 비핵화’를 언급한 적이 없다. CVID를 하겠다고 말한 적이 결코 없다.

    그런데도 우리 언론은 문 대통령의 이 답변에 주목하지 않았다. 후속 질문도 없었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의 이 질문은 '북한의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the North Korea)'와 ‘한반도의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의 차이를 알면서, 그동안 ‘북한 비핵화’협상에 전혀 진전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며 던진 것이었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답변은 하루 전인 1월 9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국회답변과도 180도 다른 것이다. 조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남북경협특위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와 우리가 목표로 하는 ‘북한의 비핵화’는 차이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하루 뒤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의 말하는 비핵화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CVID)와 전혀 차이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다른 말을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앞서 2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2018년 5월 26일)후 가진 청와대 기자회견(27일)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피력했다”고 했다. 1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2018년 4월 27일)에서 합의된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미 핵전력의 폐기를 노린 김정은의 속임수라는 것을 천하가 다 아는 데도 그렇게 말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김정은의 그런 말이 CVID를 의미하느냐는 기자의 후속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평양 남북정상회담(2018년 9월 18~20일) 일정을 마치고 20일 서울에 도착한 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대국민보고를 통해서도 “김정은 위원장은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거듭거듭 확약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진행된 핵문제는 하나의 핵문제가 아니라 두개의 핵문제다.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조선반도)의 비핵화’가 그것이다.

    먼저, 한국과 미국, 국제사회가 바라보는 핵문제는 ‘북한의 비핵화’다. 북한이 기존 보유핵 폐기와 함께 앞으로도 핵개발을 그만 두는 것을 처방으로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조선반도(한반도)의 비핵화’ 이다. 여기에는 북한이 핵개발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핵심 개념으로 담겨 있다. 즉 미 핵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포함한 대한민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 이런 핵우산 제공의 주체인 주한미군, 한미동맹의 존재가 적대정책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핵우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제공된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정책으로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전쟁을 막기 위해 우리는 생존의 문제로써 핵개발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핵억지력’(nuclear deterrence)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한번도 ‘북한의 핵문제’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있다. 어디까지나 ‘조선반도의 핵문제’일 뿐이다. 북한은 “미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적대정책을 철회하면 우리가 핵무기를 개발할 이유가 소멸된다”며 미국이 먼저 핵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지원이 北 비핵화 추동한다’ 논리, 근거없는 주장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은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원조를 획득하고 체제 안전보장을 확보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경제 원조를 제공하고 체제 안전을 보장해 주면 핵개발을 중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재인 정부의 ‘비핵화’ 정책도 DJ-노무현 정부와 다르지 않다. 남북경협 확대를 통해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비핵화는 저절로 이뤄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대북제재 예외를 이끌어 내려고 안달하며 세계 가는 곳마다 대북제재 완화를 역설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대북 경제지원이 북한 비핵화를 추동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북한이 미북간 최초 핵폐기 합의인 제네바합의를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파기한 것은 대북 퍼주기 논란이 격심했던 김대중정권 때였고 핵무기를 만들어 최초의 핵실험을 한 것은 노무현정권 때였다.

    북한은 내년으로 예정된 미 대선을 앞두고 미국 측에 ‘배 째라’하고 나올 것이다. 과거의 예가 증거한다. 1994년 제네바 미북핵합의는 미국 중간선거 한 달 전이었고, 김정일의 특사 조명록 차수의 방미 때 나온 2000년 백악관 미북 코뮈니케는 미 대선 한 달 전이었다. 2005년 9월 19일 핵합의 성명은 미국 중간선거 1년 전, 2007년 2월 13일 핵합의는 미 대선 1년여 전, 2012년 2월 29일 합의도 미 대선 8개월 전이었다.

    1차 미북 싱가포르정상회담은 미 중간선거 약 5개월을 앞두고 열렸고 2월말 열릴 2차 정상회담은 대선 1년 10개월을 앞두고 있다. 예측이 어렵고 돌발적인 트럼프는 자신의 재선에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북한과 어떤 합의문에라도 서명할 것이다. 그는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때는 한국정부나 측근에게 사전 예고도 없이 기자회견에서 일방적, 돌발적으로 한미합동 군사훈련의 중지를 발표하고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거론했다.

    북한 고위인사들의 평창올림픽 참가 이후 북핵폐기를 한다며 지난 1월까지 세차례의 남북정상회담, 한 차례의 미북정상회담, 세차례의 북중정상회담이 열렸지만 모두 허사였다. 곧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은 북한 핵폐기를 한다며 그동안 남북간·미북간에 열려온 일련의 정상회담이 처음부터 ‘위장된 평화 쇼’라는 진실의 순간을 맞게 될지 모른다.

    서옥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政博,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