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클 브린 전 주한 외신기자 클럽 회장의 한국 민주주의 평가가 화제로 떠오른 바 있다. 그가 관찰한 한국인들의 민주주의란 일종의 초(超) 법치주의의 직접행동이었다. 국민정서법이란 이야기다. 이걸 학자들까지 “민심은 천심이다”란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 툭하면 광화문광장을 수 만 명의 ‘떼법’ 군중으로 메우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국적 군중정치는 실은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의 정치철학자도 경계한 중우정치-폭민정치라는 게 마이클 브린의 날카로운 비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야수’인지 ‘괴수(怪獸)’인지가 한 번 출동했다 하면 그걸 견제할 공권력도, 사법부도, 법치주의도, 간접민주주의도 이젠 멸종동물이 되다시피 했다.

     문제는 이 ’민심‘이라는 게 대단히 비(非)실증적이고 감정적이며 불공정하다는 점이다. 어떤 사안에 있어선 불같이 타오르다가도 다른 사안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최순실 의혹(국정농단)에 대해서는 수사와 재판이 있기도 전에 광화문이 터져나갔는데, 문화제 지정 기밀 누설을 연상시키는 '손혜원 투기의혹'에 대해서는 미디어만 좀 떠들 뿐 군중은 꼼짝도 않으니 말이다.

      사실은 이 ’두고 보는 자세‘가 더 옳을지 모른다. 조사-수사-재판도 하지 않고 의혹만 기진 채 불같이 화를 내며 아스팔트로 우 하고 몰려나오는 게 어쩌면 더 이상하달 수도 있다. 그러나 왜 이렇게 그 때는 난리를 쳤으면서 지금은 가만히 있느냐 하는 그 변덕과 불공정은 아무도 좀 불가사의하다. 왜 이럴까?

     혹시 선전선동과 미디어의 편파성에 민심이 놀아나 이랬다저랬다 불공평하게 변덕을 부리는 건 아닐까? 확언할 순 없지만 지금도 TV들이 최순실 때의 10분의 1 만큼이라도 생중계를 하다시피 발광을 한다면 뉘 알랴, 서울광장-광화문 광장-청계천 광장이 열광한 촛불들로 터져나갈지.

     결국 마이클 브린이 말한 한국적 폭민정치는 선동과 군중의 결합이 낳는 괴물인 셈이다. 혁명을 주장하는 쪽은 선전선동의 재능과 수단에 있어 월등히 더 우세하고, 혁명의 대상인 쪽은 그 점에서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군중과 고학력자들까지도 “내 불만족은 순전히 저 1% 놈들 탓”이라고 믿고 부르짖을 충분한 준비가 완료돼 있다. 그라니 왜 이런 현상이 안 일어나겠나?

     이런 괴물이 세상을 지배하면 그게 그 괴물을 사육하고 조련하고 부려먹는 음모가-선동가(아방가르드)들이 만들어내는 조지 오웰의 작품 ’1984‘ 같은 전체주의 세상이다. 이게 우리 시대의 전반적인 추세 아니냐고 하면 과잉반응일까?

    사람들은 손을 데어봐야 끓는 주전자가 뜨겁다는 걸 비로소 안다. 그러니 군중 폭민정치의 결과의 맛이 어떤지는 그 때 가서 들어보기로 하자.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2019/1/17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