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력 강화 얘기하면 무조건 '전쟁광'인가… ‘남북 평화만이 善' 프레임의 폐해
  • '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자신이 천하게 난 것을 스스로 가슴 깊이 한탄하였다‘ - 허균, <홍길동전> 중에서

    인간은 말로써 생각과 느낌을 전달한다. 그러나 ‘아버지, 형’이라는 기본적인 말조차 할 수 없던 인생이 있다. 뛰어난 능력을 소유했으나, 어머니가 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은 홍길동. 조선 중기 허균이 지은 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이다.

    <홍길동전>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했다. 조선 광해군 때 서얼 출신 7명이 반역을 꾀했다 옥에 갇힌 ‘칠서지옥’ 사건이다. 조선은 신분제 사회였다. 수많은 인생들이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입을 다문 채 살아야만 했다. 그들에게 도술로 악한 부자와 부패한 수령을 벌하고, 이들의 재물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 준 홍길동 이야기는 큰 위안이었다.
  • 우리는 여전히 부자를 벌하는 이야기에 공감한다. 사회 구조가 다른 조선과 대한민국, 그 사이에서 ‘홍길동’이라는 인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먼저 ‘신분제 사회 조선’과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면면을 살펴보자. 

    조선 사대부는 순수 양반이 나라를 지배해야 한다며 신분에 따른 차등을 법으로 제한했다. 때문에 서얼은 주경야독해도 관직에 등용될 수 없었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 대한민국에 있다는 ‘수저론’ 신분은 법으로 제정된 게 아니다. 또 대한민국 국민은 부당한 현실 앞에 입을 다물지 않아도 된다. 온갖 매체들이 부자와 권력자의 악행을 폭로하면, 그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대한민국에서 권력을 믿고 행패 부리다 법의 심판을 받은 자들이 수없이 많다. 폭행과 엽기행각으로 구속된 한국미래기술 양진호 회장, 논란이 된 조선일보 손녀 사건 등이 그 사례다.

    조선의 백성은 악한 권력자의 부당한 행위 앞에 고개를 숙였으나,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는 누구나 홍길동이 되도록 보장한다. 하지만 이 구조는 외마디 한탄 속에 파묻히는 또 다른 홍길동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부자와 권력자는 악한 사람이다’' 등의 프레임이 형성되면, 홍길동에게 억압받는 홍길동이 생기는 이상한 사회구조가 된다. 

    부자와 권력자는 모두 악하고, 흙수저는 전부 선한 인간인가?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은 탄탄대로의 인생을 거부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다 반역죄로 처형당했다. 부자에 권력자 출신이었지만, 악하지 않았다.

    고소득층은 악하고 저소득층은 선한가?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이게 흑백논리가 되면 고소득층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받는 사람이 생긴다. 재벌가의 세습이 비판받아왔으나, 일부 대기업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자녀에게 일자리를 물려주는 ‘고용세습제'를 행하고 있다. 동일조건에서 노동조합원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혜택을 받는다.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그럼에도 대기업은 갑질 횡포자, 노조는 약자라는 프레임이 있다. 노조를 건드리면 갑질 횡포자가 되기에 입을 다물어야만 하는, 이상한 사회 구조이다. 선과 악의 프레임을 놓고 구체적인 사실을 파고들 줄 알아야 한다. 노조라도 범죄를 저지르고, 저소득층이라도 잘못 할 가능성이 있다. 세상에 완전히 선한 인간은 없기에 늘 경계하며 깨어있어야 한다. 프레임은 위험하다.

    마지막으로 ‘평화'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최근 우리의 입을 막는 가장 강력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평화 무드 앞에 북한을 부정적으로 말하면 통일을 원치 않는 냉혈한이 된다.

    현재 남북통일의 행로를 부정적으로 보는 게, 왜 통일을 부정한 게 되는가? 대한민국 정부가 부당한 조건으로 북한 정권과 협상하는 건 아닌지, 북한 정권에게 고통받는 북한 주민의 인권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으로 살펴야하는 조건이 많다.

    북한의 말을 100% 신뢰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북한이 평화와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다, 돌연 공격 태세로 전환한 사례는 역사에 이미 수차례 존재한다. 북한은 6⋅25 남침을 18일 남겨 놓고 ‘평화적 조국 통일에 관한 호소문’을 발표했다. 온 국민이 기뻐하고 환영했던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그러나 8개월이 지난 1973년 3월 제주도 우도와 전라남도 완도에 무장공비가 침투했다.

    ‘평화가 곧 선(善)'이라는 프레임을 앞에 두고 군사력을 강화하자고 주장하면, ‘전쟁광’으로 낙인찍힌다. 전쟁을 수단으로 평화를 수호하는, ‘평화는 목적이고 전쟁은 수단'이라는 국제정치의 기본 이론이 ‘남북 평화'앞에 무력하다.

    부자를 옹호하면 악한 사람이 되는 현실, 북한의 포로수용소와 인권 문제 등의 남북 평화 무드를 깨는 사실을 말하면 전쟁광이 되는 현실, 이 현실 앞에 누가 홍길동인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선한 가면 뒤에 국민을 농락하는 자의 실상을 묵인해야 되는 현실이라면, 기꺼이 진실을 외치는 홍길동이 되고 싶다. 

    허균은 ‘율도국'의 왕이 된 홍길동이, 노년의 나이에 산 속에서 사라지는 결말로 <홍길동전>을 마무리한다. 다소 비현실적인 결말이 아쉽다는 사람도 있다. 악한 세력을 완전히 처리하는 게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 허균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일까?

    악이 없는 인간은 없다. 고로 완전히 선한 인간도 없다. 다만 ‘선(善)’이라는 프레임이 진실을 가리지 않도록 끝까지 사실을 파고들어야 한다. 율도국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정의와 진실이 공존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바란다.

    부자이든 흙수저이든, 남북통일을 어떻게 말하든지 간에, 부당한 현실 앞에 가슴 깊이 한탄하는 사람이 없도록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는 홍길동이 절실하다. 

    프레임이 아닌 진실이다.  

    <필자 소개>
    성채린 (1995년생)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회원
    (사) 대한민국 통일건국회 청년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