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 "공익신고자 요건 부족"… 법조계 "절차 따지면 공익신고자보호법 유명무실"
  • ▲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연합뉴스
    ▲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민간인 사찰과 공기업 사장 인사 개입 등을 폭로한 김태우 검찰 수사관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기재부) 사무관을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른 보호대상으로 볼 수 있느냐를 놓고 정부여당과 야권이 공방을 벌이고 있다. 특히 두 제보자가 검찰에 고발당한 데 이어 신 전 사무관의 자살소동까지 벌어지면서 현 정부의 내부고발자 보호 실태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3일 신재민 전 사무관의 자살소동이 있은 뒤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회의에서 “공익신고자를 보호하는 데 한 치의 틈이 없도록 자유한국당이 공익제보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신재민 전 사무관은 지난달부터 유튜브 등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KT&G 사장 인사 개입 △서울신문 사장 교체 시도 △적자국채 발행 지시 등을 폭로한 뒤 지난 2일 기재부로부터 고발당했다. 그는 다음날인 3일 유서를 쓰고 모텔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다가 병원으로 후송됐다.

    신재민 전 사무관은 지난 3일 고려대학교 커뮤니티 '고파스'에 유서 성격의 글을 올려 “내부고발을 인정해주고 당연시 여기는 문화가 필요하다”며 “이번 정부라면 최소한 내부고발 목소리를 들어주고 재발방지를 이야기할 것으로 알았다”고 지적했다.

    권익위 "신재민 전 사무관 ‘공익신고자’ 적용 어렵다"

    기재부가 신 전 사무관을 고발한 혐의는 공무상 비밀누설이다. 신 전 사무관이 공무원 신분으로 얻은 정보를 불법적으로 유출했다는 것이다. 형법 제127조는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신 전 사무관이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라 공익신고자가 된다면 비밀준수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 신 전 사무관이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잘못을 바로잡고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며 자신을 공익신고자로 자칭한 것도 그래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신 전 사무관은 공익신고자가 아니다"라고 결론냈다. 신 전 사무관의 폭로 내용이나 형식이 공익신고자 요건에 총족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신 전 사무관이 공익신고자로 인정받으려면 공익신고자 보호법 별지에 기재된 284개 공익침해행위에 해당해야 한다는 게 권익위의 설명이다. 신 전 사무관이 관계기관이 아닌 유튜브를 통해 폭로한 점, 증거가 첨부되지 않았다는 점도 절차상 잘못됐다고 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신 전 사무관에 대한 신고는 접수된 상태가 아니다"라면서도 "보호법에서 적시한 284개 공익침해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공익신고자로써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공익신고는 권익위나 본인이 속한 기관에 신고를 해야하며 증거도 첨부해야하는데 김 수사관이나 신 전 사무관의 경우 언론, 유튜브를 통해 폭로했기 때문에 방식이 달랐다"고 덧붙였다.

    내가 하면 ‘공익신고’, 네가 하면 ‘비밀누설’

    자유한국당은 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고 당내에 공익제보자 신고 및 보호센터를 설치하는 한편, 공익제보자 보호법에 따라 신 전 사무관에 대한 국민권익위원회의 보호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야당은 과거 여권이 공익신고자 보호를 주장했던 사례를 제시하면서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고 지적했다. 야당 관계자는 “지난 정부 시절에도 현재 여권에서 공익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요건을 완화시키기 위해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 이제 정권을 쥐니까 엄격하게 해석을 하고 공익신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현 정권을 비판하는 제보는 비밀누설이고 전 정권에 대한 제보만 공익제보로 보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조계에서도 공익신고자 보호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법조계 관계자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공익신고가 되기 위한 신고대상과 방법, 내용 등의 요건이 복잡하게 돼 있다“면서 ”일부 절차적 문제를 가지고 공익신고냐 아니냐를 판단해서는 법률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