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김정은 신년사' '문재인'보다 더 부각… "이걸 왜 다 들어야하나" 시민들 격앙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이번 신년사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예전과 달리 이례적으로 소파에 앉아 신년사를 발표했다. ⓒ뉴시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이번 신년사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예전과 달리 이례적으로 소파에 앉아 신년사를 발표했다. ⓒ뉴시스

    기해년(己亥年) 첫날인 1일 국내 지상파를 비롯한 주요 언론들이 문재인 대통령 신년사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해 빈축을 사고 있다. 일부 국민들은 새해 첫날부터 김정은 신년사 전문을 부각시켜 보도하는 것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김정은은 이날 오전 9시부터 조선중앙TV를 통해 녹화 중계로 30분에 걸친 육성 신년사를 발표했다. 올해로 7년째를 맞은 김정은 신년사는 새해 분야별 과업을 제시하면서 통상 대내 정책, 대남 메시지, 대외정책 등의 순으로 구성된다. 신년사에서 제시된 과업은 북한에선 반드시 집행해야 하는 절대적인 지침으로 여겨진다.

    김정은, 남북 평화 말하며 한미군사훈련 중단 요구

    김정은은 신년사를 통해 "미국이 (비핵화에) 상응하는 실천행동을 한다면 비핵화는 빠른 속도로 전진할 것"이라면서도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는 돼 있으나 우리 인내심을 오판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김정은은 그러면서 대한민국을 향해 외세 세력(미국)과 군사훈련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북과 남이 평화와 번영을 확약한 이상 합동군사연습을 더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외부로부터의 전략 자산을 비롯한 전쟁장비 반입도 완전히 중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라며 "북과 남은 이미 합의한 대로 대치 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해소를 지상과 공중, 해상을 비롯한 조선반도 전역으로 이어놓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적극 취해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정은은 남북한 평화 기류에 대해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는 70여년 민족 분열사에서 격동적인 해였다. 조선반도의 비정상적 상황을 끝내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번영 결심 밑에 정초부터 북남관계에서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며 "불신과 대결의 최극단에 있던 북남관계를 신뢰와 화해의 관계로 확고히 돌려세우고, 과거 상상하지 못한 경이적 성과를 짧은 기간에 이뤄진 데 대단히 만족하게 생각한다. 새해 2019년에 북남 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 조국 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더 큰 전진을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용의"

    김 위원장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의사도 밝혔다. 그는 "평화번영 역사를 쓰기 위해 마음을 같이 한 남쪽 겨레에 인사를 보낸다"며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아울러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하에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다자협상도 적극 추진해 항구적 평화보장 토대를 실질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반도 비핵화 의지도 드러냈다. 그는 "핵무기를 만들지도 사용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6·12 조미 공동선언에서 천명한 대로 새 세기 요구에 맞는 두 나라의 요구를 수립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불변한 입장이며 나의 확고한 의지"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경제에 대해 "올해는 나라의 자립적 발전능력을 확대 강화할 것"이라며 "기업체가 경영활동을 원활히 해나갈 수 있게 정비하겠다"고도 했다. 그는 "노동당 시대를 빛내기 위한 방대한 대건설사업들이 입체적으로 통 크게 전개됨으로써 그 어떤 난관 속에서도 끄떡없이 멈춤이 없으며 더욱 노도와 같이 떨쳐 일어나 승승장구해 나가는 사회주의 조선의 억센 기상과 우리의 자립경제의 막강한 잠재력이 현실로 과시됐다"고 말했다.

  • 문재인 대통령.ⓒ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청와대
    文대통령 신년사 "돌이킬 수 없는 평화 만들 것"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SNS를 통해 기해년 새해 인사를 전했다. 문 대통령은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며 "이 겨울, 집집마다 눈길을 걸어 찾아가 손을 꼭 잡고 인사드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어 "국민들이 열어놓은 평화의 길을 아주 벅찬 마음으로 걸었다"며 "평화가 한분 한분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돌이킬 수 없는 평화로 만들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땅 곳곳을 비추는 해처럼 국민들은 함께 잘살기를 열망하신다"며 "미처 살피지 못한 일들을 돌아보며 한분 한분의 삶이 나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러면서 그는 "이 겨울, 더 따뜻하게 세상을 밝히라는 촛불의 마음 결코 잊지 않겠다"며 "새해 모든 가정이 평안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이날 남북 정상의 신년사에 대한 국내 언론들의 보도 행태에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날 김정은 신년사가 발표되자, KBS·MBC·SBS 등 지상파 3사를 비롯해 국내 언론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보다 김정은 신년사를 더욱 부각시켜 보도했다. 김정은 신년사 전문을 소개하면서 뉴스 메인으로 다루는가 하면, 과거와 다른 김정은 신년사 발표 절차를 상세히 보도하기도 했다.

    文대통령보다 김정은 더 부각… "황당하고 어이없다" 반응

    실제 대부분 언론들은 김정은이 신년사를 발표한 장소와 옷차림 등을 언급하며 "연단에 서서 발표를 진행했던 예년과 달리, 이날은 이례적으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 소파에 앉아서 준비한 원고를 읽었다"고 했다. 이어 "올해는 조선중앙TV가 이례적으로 김 위원장이 양복 차림으로 신년사 발표를 위해 노동당 중앙청사에 입장하는 장면부터 공개했고, 김창선 국무위원장 부장이 맞이했으며 김여정 당 제1부부장, 조용원 당 부부장 등 김 위원장의 최측근 인사들이 뒤따라 들어왔다"며 신년사 발표 현장을 자세히 묘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언론보도에 대해 서울 강남에 사는 이모(54)씨는 "새해 벽두부터 이런 것(김정은 신년사)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에 사는 최모(72) 씨는 "새해 첫날 거의 모든 뉴스채널에서 김정은 신년사가 나왔다"며 "여기가 북한인지 대한민국인지 모르겠다"고 비꼬았다.

    시민 송모(65) 씨는 "이 나라 대통령이 김정은인지, 문재인인지 분간이 안 간다"며 "방송들이 일제히 새해 첫날 김정은 신년사를 보도하는 게 황당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