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뇌물로 인정되는지 설명 없어"… "삼성이 소송비 대납" 검찰 주장 모순점 불거져
  •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공판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공판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은 실질적 주체가 누구인지를 밝혀달라.”

    지난 26일 열린 이명박(77) 전 대통령의 항소심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부(김인겸 부장판사)가 검찰 측에 한 말이다.

    이날 재판부는 “삼성이 에이킨검프(다스 소송을 수임한 미국 법무법인)에게 지급한 돈이 ‘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로 인정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1심 기록 어디를 살펴봐도 없다"고 지적하며 이같이 검찰에 요구했다.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15년형의 중형을 선고한 1심 재판부가 삼성이 다스의 미국 소송비를 대납한 것을 ‘뇌물'로 판단한 근거에 2심 재판부가 의문을 제기한 것이었다.

    이 전 대통령 변호인 측은 28일 본지에 “이재오 인터뷰 사건 이후, 핵심 진술자들의 진술을 모두 바꾸느라 검찰의 주장은 자기모순에 빠졌다”며 “항소심 재판부가 검찰의 모순된 주장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재오 인터뷰 사건’ 이후 달라진 진술

    이 전 대통령 변호인 측이 언급한 ‘이재오 인터뷰 사건’은 이재오 전 의원이 한 언론에 인터뷰를 한 시점을 전후해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과 검찰의 공소사실이 모두 뒤바뀌어진 것을 말한다. 이 전 대통령의 1심 재판에서 핵심 쟁점 중 하나였다.

    수사 초기 검찰은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작성한 문건을 근거로, 에이킨검프가 다스 소송을 수임한 2009년 3월께부터 2011년 3월께까지 삼성이 에이킨검프에 지급한 돈을 다스 소송비 대납액이라고 봤다. 검찰은 이학수 전 삼성전략기획실장 등 관계자들의 진술을 확보해 이를 언론에 공표했다.

    그런데 이재오 전 의원이 지난 2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삼성이 에이킨검프에 2007년 11월부터 매월 12만 5000달러씩 지급했는데, 검찰이 그 중 2009년 3월부터 지급한 금액만을 잘라 소송비 대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라고 주장하자, 검찰은 이학수 전 실장 등 관련자들을 다시 소환해 대납시기가 '2009년 3월'이 아닌 '2007년 11월부터'라는 번복된 진술을 받아냈다.

    검찰은 번복된 진술을 근거로 공소사실을 바꿔 이 전 대통령이 2007년 11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에이킨검프를 통해 삼성으로부터 총 585만 달러의 뇌물을 받았다며 이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1심에서 변호인단이 이 문제를 제기하자 검찰은 이 전 의원의 인터뷰를 보고 관련자들을 재소환해 번복된 진술을 받아낸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전 의원의 인터뷰가 있던 날 소환조사를 했던 삼성 직원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해 2009년 3월 이전의 자료를 요구했고, 그렇게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관련자들을 재소환해 새로운 진술을 받아냈다고 했었다.

    ‘소송 수임 이전부터 소송비 대납’ 검찰 모순된 주장

    하지만 이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의 이 같은 주장은 ‘에이킨검프가 다스로부터 소송을 수임하기 이전부터 삼성으로부터 월 12만 5000달러씩 다스 소송비를 대납받았다’는 모순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검찰은 “삼성이 에이킨검프에게 지급한 돈은 다스 소송비 대납비용이 아니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자금지원이며, 에이킨검프는 그 자금을 관리하며 다스 소송비 등으로 사용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부장판사 정계선)는 검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다만 뇌물지급 시기를 2008년 3월 내지 4월께로 조정해 이 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552만5709달러의 뇌물을 받았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 ▲ 이학수 전 삼성전략기획실장. ⓒ연합뉴스
    ▲ 이학수 전 삼성전략기획실장. ⓒ연합뉴스
    그러나 1심 재판에서 삼성이 이 전 대통령에게 어떤 경로를 통해 얼마의 돈을 전달했는지에 대해선 드러나지 않았다는 게 변호인 측의 주장이다.

    이 전 대통령 변호인 측에 따르면 "삼성이 다스 소송비를 대납한 것은 이건희 회장 사면을 대가로 한 뇌물"이라는 검찰 주장이 나오자, 삼성은 거래은행을 통해 에이킨검프로 송금한 내역을 확인했다. 에이킨검프는 삼성의 기존 거래 업체로 수많은 송금내역이 존재했다. 삼성은 검찰이 김 전 기획관의 문건을 근거로 언론에 공표한 내용에 따라 12만 5000달러 또는 12만 5000달러보다 큰 금액 중 끝자리가 000으로 떨어지는 금액을 추렸다. 이 가운데 2009년 3월께부터 송금된 금액을 뽑은 자료를 이학수 전 실장에게 전달하고 이 전 실장은 이를 다스 소송비 대납금액으로 검찰에 제출했다.

    재판부 “왜 뇌물로 인정되는지에 대한 설명 없어”

    검찰은 이학수 전 실장의 자료를 근거로 총 585만 달러 규모의 다스 소송비 대납금액을 뇌물로 결론냈다. 그러나 이 전 실장이나 삼성 관계자들의 진술도 “에이킨검프로부터 인보이스가 오면 잘 처리해 줘라”는 수준이며 금액이나 방법을 특정한 내용은 없었다. 결국 삼성이 에이킨검프에 월 12만5000달러씩 지급한 금액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이라는 유일한 증거는 김 전 기획관이 작성한 문건밖에 없는 셈이다.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이 당초 검찰 주장처럼 2009년 3월께부터 시작된 것이라면 김 전 기획관 문건은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여지가 있지만, '이재오 인터뷰 사건' 이후 검찰이 지급시기를 2007년 11월로 앞당겼고 자금 성격도 다스 소송비 대납이 아닌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자금지원으로 바꿔 기소한 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라는 게 변호인 측의 주장이다. 

    변호인단은 본지에 “검찰 기소와 1심 판결 모두 검찰이 증거로 제시한 김 전 기획관의 문건 내용에 적시된 시기인 2009년 3월보다 1~2년 앞당겨졌으며, 다스 소송비라는 문건의 내용과 다르게 자금지원으로 결론 내린 것”이라며 “따라서 김 전 기획관의 문건은 해당 금액이 뇌물이라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입증 더욱 어려워질 것”

    항소심 재판부가 “삼성이 에이킨검프에게 지급한 돈이 ‘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로 인정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1심 기록 어디를 살펴봐도 없다”고 한 말의 의미는 김 전 기획관의 문건이 이처럼 증거능력이 없으니 검찰이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라는 요구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전 대통령 변호인 측은 “해당거래가 삼성과 에이킨검프 간의 정상적인 거래였다는 여러 정황을 1심 재판부에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항소심 재판에서 검찰이 계속 해당금액을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자금지원으로 주장한다면 ‘뇌물혐의’가 아닌 ‘제3자 뇌물혐의’가 되어 검찰의 입증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