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기간 '5년→1년' 제안… 거액 분담금 요구해 한국이 거절하면 '미군 감축' 가능성
  • ▲ 지난 6월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상 당시 악수하는 한국과 미국 대표.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6월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상 당시 악수하는 한국과 미국 대표.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 측이 돌연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매년 하자는 제안을 내놨다고 ‘서울신문’이 28일 보도했다. ‘서울신문’을 비롯한 국내 언론들은 “매년 협상을 벌여 한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라고 풀이했지만, 미국 내에서 나날이 커져 가는 ‘주한미군 철수’ 여론의 명분을 노린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신문’은 이날 “미국이 지난 11일부터 서울에서 열린 제10차 한미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협상에서 협정 유효기간을 5년에서 1년으로 줄이자는 제안을 했으나 한국 대표단이 이를 거부했다”는 정부 관계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한국 대표단이 방위비분담금 협정 유효기간 단축을 거절했다고는 하나 미국 측이 한 번의 거절에 물러설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제10차 한미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 협상에서 미국은 2018년 기준 9602억 원의 한국 측 분담금을, 2019년부터는 1조 3000억 원 이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협정 유효기간 단축도 협상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한국과 미국 간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시작된 것은 1991년부터지만 특별협정 유효기간을 5년으로 정한 것은 2008년이었다. 그 이전에는 3년마다 협상을 했다. 한국이 2018년 방위비 분담금 9602억 원을 낸 것은 2014년 협상에 따른 것이다. 당시 한미 양국은 매년 4%를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방위비 분담금에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부자 나라는 스스로 안보 지켜라”

    ‘서울신문’을 비롯한 국내 언론 대부분은 “방위비 분담금을 매년 협상하면 한국에 불리할 수밖에 없으며, 미국 측의 이번 제안은 분담금을 대폭 인상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의 최근 발언이나 美정치권에서 나오기 시작한 주장 등은 한국 언론의 추정과는 다른 목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트럼프 美대통령은 최근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발표한 데 이어 크리스마스에는 이라크 주둔 미군 기지를 찾아가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의 재건은 해당 지역의 부자나라에게 맡기겠다”며 “미국은 더 이상 세계경찰을 운운하며 ‘글로벌 호구’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美대통령은 또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부자 나라들은 안보 문제에 있어 미국에게 무임승차 하지 말고 자기 돈으로 자기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거듭 지적해 왔다. 이런 주장과 함께 美정부의 협상정책 등을 살펴보면, 미국이 한국에게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한 뒤 이를 거절하면, 주한미군을 감축할 수도 있다.

  • ▲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주기 중인 AH-64D 롱보우 아파치 헬기. 美육군 제2사단 예하에 배속된 전투헬기대대 소속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주기 중인 AH-64D 롱보우 아파치 헬기. 美육군 제2사단 예하에 배속된 전투헬기대대 소속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받아들이면, 이를 내세워 다른 나라들에게도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거절해 협상이 결렬되면, 미군 병력과 장비를 철수시키는 동시에 한국인 근로자를 대량으로 정리해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야당과 국민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로부터 비난과 동시에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정부는 독일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EU국가와 일본에 “방위비를 인상하지 않으면 한국처럼 될 것”이라고 경고할 구실이 생긴다. 여러모로 트럼프 美대통령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전략이다.

    주한미군 절대 철수 안 한다? 한국 사회의 착각

    한국 사회가 가장 크게 착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미군은 절대 한국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해외 파병부대 가운데 두 번째로 병력 규모가 크고, 이들을 수용할 장소나 비용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붙는다. 평택의 험프리 기지를 짓는데 10조 원이나 들였는데 이를 두고 해외로 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7월 美의회에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면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국방수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을 예로 들며 "트럼프 마음대로 미군 철수를 명령할 수 없다고"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이렇다.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에서 전략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적과 내통하는 인질’은 없는 게 좋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라는 표현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힘을 얻던 19세기와 20세기 초의 군사전략에나 통용된다. 미국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나라가 동아시아에 한두 곳이 아니고, 미군 전력 또한 장거리 투사능력이 있기 때문에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한다”는 ‘한반도의 중요성’은 옛날이야기다.

    美의회가 통과시킨 법은 "주한미군 병력을 2만 2000명 미만으로 줄이려면 의회 승인을 받으라"는 내용이다. 현재 주한미군은 2만 8500여 명, 즉 주한 미공군 전체나 美육군 제2사단의 2개 여단 정도를 언제든지 철수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경기 평택의 캠프 험프리 문제 또한 착각이다. 10조 원이 넘는 비용의 대부분은 한국이 부담했다. 미국은 한반도 20여 곳에 흩어져 있던 부대들을 모으고 장비를 옮기는데, 캠프 험프리 내에서 직접 사용할 시설 등을 짓는데 돈을 들였을 뿐이다.

    육군 1개 사단이 매년 최소 1조 5000억 원, 최대 5조 원을 쓴다는 미군 경상운영비와 비교하면 캠프 험프리 건설비용은 엄청난 거액이 아니다. 게다가 초고가의 주한미군 병력과 장비 일부를 본토로 가져가면, 최소 수십 억 달러 이상의 운영비를 절감하는 것은 물론 다른 곳에 전력을 증강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실제로 美랜드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주둔 미군의 재배치만으로 연간 30억 달러(한화 약 3조 3500억 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고, 한국과 일본에 배치돼 있는 공군 부대와 해병부대를 재배치(철군)할 경우 연간 4억 5000만 달러(한화 약 5030억 원)의 예산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