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건 발생 전 '시그널' 있어... 근본 대책 없이 처벌로만 해결하려면 안돼
  • 최근 ‘국가적' 재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KT 통신망이 깔려있는 지하공동구에서 화재가 나는가 하면, 경기 고양에선 난방온수배관이 파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연이어 KTX 탈선사고로 승객 십여 명이 부상 당했고, 강릉 펜션 배관가스 누출로 투숙한 고등학생들이 사망하는 불행한 일도 있었다. 화력발전소에서 설비를 점검하던 비정규직 근로자가 죽고, 강남 한복판의 빌딩은 붕괴위험이 있어 입주자들이 비상 대피하는 사건도 있었다.

    연이은 '국가적' 사고, 과거 답습과 '설익은' 정책 시행 때문

    ‘안전한 대한민국'을 국정과제로 삼고, 각종 정책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이 같은 '국가적'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는 것은 왜 일까. 단언할 순 없지만 각종 정책들이 이름만 바꾼 채 과거를 답습하거나 새로운 정책들도 '설익은' 상태에서 시행되는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 현 정부에서는 세월호 사건 이후 해양경찰청(해경청)을 해체한 뒤 해경과 소방 부문을 국민안전처로 통합했다가, 조직 이원화 문제로 다시 해경청과 소방방재청을 독립시키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었다. 사건이 터지면 관련자 수사와 처벌, ‘생색내기식’ 관련 업체 전수조사, 총리⋅장관 등 부처 관계자의 현장 점검, 정부부처 관계기관회의, 대책발표 등 ‘보여주기식’ 정부의 행태도 과거 정권과 다를바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대형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항상 ‘시그널’을 주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안전에 대해 전문성이 전혀 없는 인물이 안전 관련 공기업에 '낙하산'으로 임명되거나, 예산⋅장비⋅인력⋅제도 같은 시스템의 결함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필자는 과거 경찰서장 재직 시 시청이나 구청의 건축⋅건설과에 관련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 국장⋅과장으로 임명되는 사례를 봤다. 임명된 국장이나 과장은 “전문성도 없는데 왜 그 자리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이들은 “어차피 일은 주사(주무관), 주임 등 말단 공무원들이 알아서 하고, 자신은 결재만 하면 된다”고도 했다. 전문성이 없다보니 도장만 찍겠다는 의미로 읽혔다.

    대형사건 발생 전엔 항상 '시그널' 사건 발생

    시스템 문제는 대형사건 발생 이후 정부의 대처를 보면 알 수 있다. 통상 대형사건이 발생하면 소방⋅전기⋅경찰 등 유관기관 합동으로 현장점검을 실시한다. 점검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과 준비, 전문인력 확보도 해주지 않은 채 한 달 내 실태조사를 마무리하라고 한다. 그러니 점검도 형식적이다. 육안으로 보고, 대충하는 식이다.

    지적사항을 발굴하기 위해 안전과 무관한 교육 미실시 등 형식적 내용만 기재해 주의와 경고조치, 기한내 보완 명령조치만 한다. 산업체 안전사고 관련 안전점검도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 소속 근로감독관이 나오지만 이들이 점검관리해야 할 업체는 너무나 많다. 안전관련 전문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점은 더욱 큰 문제다. 그러니 형식적 점검에 그치게 된다.
  • 각종 안전 사건·사고와 관련 백서도 없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수사와 처벌만 했지 사건·사고 발생경위, 원인, 사고후 조치, 원인 분석 등에 대해 자세히 분석한 안전사고 백서가 없는 것은 '국가적' 재난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니 똑같은 사건·사고가 계속 연례적으로 발생한다.

    고양 난방온수배관 파열 사고 이후 해당 정부 부처의 대응방식만 봐도 적절하고 효율적 대처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지하에 매설된 각종 전기·송유관·온수배관 등의 노후상태, 안전 위해성 점검 모니터링을 위한 CCTV 설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안전백서'도 없고, 안전 관련 예산은 '뒷전'

    매년 국가 예산이 증액되는 와중에도 안전 관련 시설, 장비 보강 관련 예산은 증액되기는커녕 감액되기도 한다고 한다.

    매년 국회에서 통과된 예산안을 살펴보면 체육관·운동장·문화시설 준공, 기념관 설치, 지방축제행사 등 지자체장·국회의원의 생색내기식 예산은 새로 신설되거나 대폭 증액됐다는 언론 보도는 봤어도, 지하매설구 실태 파악, 노후 배관 교체 같은 국민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안전 관련 예산이 크게 올랐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거의 없다.

    그러면서 안전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진상위원회나 담당 부서를 새로 만든다고 부산을 떤다. 전형적 생색내기 보여주기식 행정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 이렇다.

    정부와 국회는 "안전한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말로만 안전사회, 안전국가를 외쳤지 안전을 위해 예산과 장비, 전문인력, 감독체계 정비를 제대로 갖췄을까. 건물·교량 등 붕괴 사건과 관련해 공사를 감독하는 지자체·정부기관에 관리감독할 경험과 경륜을 갖춘 공무원이 제대로 있을까.
  • 정부는 ‘시그널’을 주는 사건⋅사고에 대해 꼼꼼히 분석하고 점검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몇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는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안전점검을 하자는 것이다. 공사 현장에 맞는 매뉴얼을 만들어 교육과 훈련을 하고, 생명과 직결되는 위험 작업장에는 전문가를 파견해 위험 사고 대비 조치를 갖추고 작업을 하는지 항상 확인해야 한다.

    둘째, 안전을 습관화하도록 하는 교육을 하자. 안전사고는 안이함이나 부주의 등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육기관에선 '안전'을 몸에 숙지하도록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안전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총리·장관·자치단체장 등 국가 리더들도 솔선수범해 안전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셋째, '전문성'을 강화하자. 안전 관련 업무에 종사할 공무원을 선발할 때는 행정학·행정법 등 법적 소양 평가보다는 안전과 관련된 지식, 실무경험 여부를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 공무원들의 전문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면 민간 전문인력과 기관에 협조를 얻도록 하면 된다. 공무원들은 민간 전문기관에서 제대로 점검을 하는지 관리감독만 하면 된다.

    넷째, 안전 관련 예산을 확충하자. 지방축제 행사나 도서관 신설 같은 '선심성' 예산을 대폭 축소하고, 안전과 관련된 예산을 늘려 장비·인력 확대, 제도 정비 등 체계적 안전 시스템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시그널' 주는 사건·사고 분석·점검…'국가적' 재난 막아야

    무고한 생명들이 국가·지방자치단체의 소홀함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다치는 '후진적' 사례는 사라져야 한다. 관련자 수사와 처벌 등을 통해 일시적으로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려고 하면 안된다. 왜 이런 사건과 사고가 발생했는지, 원인은 무엇이고 대책은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을 해야 한다.

    언론도 사고 초창기의 '반짝' 보도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원인과 분석,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해야 한다. 점검과 보완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현장의 실태는 어떠한 지에 대한 심층취재를 해 그 내용을 국민들에게 소상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은 정부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매년 같은 유형의 안전 사건·사고가 되풀이는 점을 직시해, 국민 생명과 안전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펼쳐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