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없다...'점진적인 변화'만이 있을 뿐
  • 머리도 나쁘고 읽은 책도 변변치 않은 필자가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인 의사 선생님들에게 "어떠어떠한 책을 읽기를 권한다" 이야기하는 것이 주제넘은 것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칼럼 연재를 요청하면서 의협신문에서 요구했던 것도 "(귀하의 전공인 역사든 뭐든) 인문학적 내음이 나는 글을 기고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의사 선생님들에게 정말로 하고픈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첫 회는 이 글로 시작한다. 아주 짧게 의협에서 공보와 홍보이사를 하는 동안 느꼈던 아쉬움을 풀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다.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년).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하다가 감옥에서 사망한 공산주의자이다. 그람시에 대한 기본 정보는 각종 포탈 사이트에 상세히 적혀 있으니 필자가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데, 공산주의자의 사상을 알아보라니? 필자 당신, 빨갱이?

    대상이 빨갱이든 뭐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그람시에게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진지전(war of position)' 혹은 '헤게모니 이론'이다.

    그의 주장은 그가 평생 가진 의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의 주장을 아주 단순화시켜서 설명해 보자.

    그의 의문은 '사회주의 혁명이 왜 러시아 같은 후진국에서 발생하고, 서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는 발생하지 않는가'였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먹고 살만한 노동자들이 자본가를 비롯한 지배계급의 논리에 푹 빠져 살기 때문'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교육과 문화, 언론이었다.

    당시까지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이를 '상부구조'라고 규정한 뒤 경제적 부분, 즉 '하부구조'만 바뀌면 상부구조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상부구조 하부구조가 복잡하게 느껴진다면, 의사 선생님들답게 상부구조는 병소-病巢. 국립국어원은 이를 '병터'라는 쉬운 단어로 쓸 것을 권하고 있다-, 하부구조는 병의 근본 원인 정도로 생각하셨으면 한다.)

    한데 상부구조가 하부구조에 지대한, 아니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즉 하부구조를 장악한 지배계급이 상부구조까지도 손에 넣은 뒤 자신들의 지배 논리를 노동자 등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전파시키고 있으며(=헤게모니의 장악), 이로써 하부구조 유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 이를 깨부수기 위해 그람시가 제시한 것이 '진지전'이다.

    서유럽 같은 발달된 나라에서 러시아처럼 하루아침에 혁명이 일어날 리가 없다. 오히려 문화나 교육, 언론 분야에서 '진지'를 구축한 뒤 서서히 나라를 사회주의화시켜야 한다.
    그람시의 주장은 기실 서유럽의 전쟁사, 혹은 혁명사와도 맥이 닿아 있다.

    페니키아의 명장 한니발이 지중해를 건너 로마를 휩쓸고 다닐 때, 로마 장군 파비우스는 전면전을 펼치기보다 지구전을 펼치며 페니키아 군대의 힘을 빼는 것에 주력했다. 전면전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니발을 궁극적으로 패배시킨 것은 파비우스의 후배였던 명장 스키피오였지만, 후대의 역사가들은 파비우스 역시 높게 쳤다. 19세기 말,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이 아닌, 점진적인 발전'을 주장하면서 '파비안 협회'를 창설했을 때, 협회 이름을 파비우스의 이름으로 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람시의 주장은 20세기 중반 이후 프랑스 등의 서유럽 좌파들이 대대적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나라 역시 그람시의 영향이 적지 않다.

    예를 들자.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모든 것을 독식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나라이다. 김영삼 대통령 이후 대통령은 좌-우파가 골고루 나눴다.

    그런데 미래 세대의 우리나라를 책임질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일선의 교사이고 교과서이다. 요즘 한국사 교과서 근현대사 부분을 읽어 보신 적이 있는가? 20세기 중반기 이후 남과 북이 어떻게 묘사돼 있는지 아시는가? 교사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집단이 어디인가? 시도 교육감의 좌-우파 분포를 생각해 보신 일이 있는가?

    영화 분야를 보자. 맥아더를 영웅으로 묘사한 '인천상륙작전'이나 20세기 중반기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를 긍정과 발전으로 묘사한 '국제시장', 혹은 북의 침략에 단호히 맞선 연평해전의 영웅들을 묘사한 '연평해전'에 대해 대부분의 영화 평론가들이 어떤 평을 내렸는지 살피신 적이 있는가? 이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였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이 주인공인 '변호인'이나,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택시운전사'에 대한 영화 평론가들의 평은?

    필자가 보기에, 우리나라 교육이나 문화 분야에서 좌-우파 구도는 '일방적'이다.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 구도가 지속되는 한, 우파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본다.

    설령 우파가 대통령직을 탈환한다고 해도, '자유와 경쟁'을 강조하는 우파적 논리보다는 '평등과 복지'를 강조하는 좌파 논리 속에서 행정을 이끌 확률이 높다. 나라가 '퍼주기'로 심각한 위험에 처하지 않는 한….

    그람시를 이야기하다가 우리나라 교육과 문화의 좌우파 구도를 이야기한 이유를 이제 눈치 채셨을 것이다.

    발전된 사회에서 하루아침에 뭔가가 바뀌는 '혁명'은 없다, 아니 드물다. '점진적인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

    내 자신이나, 내가 속한 집단이 사회적으로 힘을 갖고 점진적인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그람시의 표현처럼 '진지'를 만들고 주변인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설득한 사람이 많아질 때 나는 '헤게모니'를 장악한 사람 혹은 세력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대중 민주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다. 대중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최고 최후의 수단은 선거이다. 대입 시험에서 최고득점군을 형성하는 의사 선생님들도 한 표를 행사하고, 필자처럼 돌머리도 한 표를 행사한다. '똑똑한 사람의 한 표'보다 '필부필부의 99표'가 더 힘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 의사 선생님들에게 눈을 돌려보자. 대부분의 의사 선생님들은 "의사가 힘들다"고 필자에게 이야기했다. '의노'(의사 노예)라는 표현도 썼다. 신용불량자도 많다고 했다. 그 구구절절한 이야기, 여기서 다 옮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장면에서 묻자. 의사 선생님들이 지난 해(2018년) '급격한 수가 인상'(의사 선생님들이 보기에는 '온당한 수가 인상'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급격을 넘어 '과격' 수준이었다.)을 들고 나왔을 때, 보건복지부가 바로 내놓은 반박성 홍보자료는 '의사들, 평균 월급 1304만원, 정규직 노동자의 4.6배'였다. 그 통계에 의사들이 '수치적'으로 반박하는 것을 필자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저 "우리들이 얼마나 공부했고, 고생하는데…"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들인 귀하들이 일반직 노동자들보다 4.6배를 더 버는 것이다. 한데 그것이 모자란다는 이야기인가? 변호사 평균 월급이 700만 원 정도인 사회에서?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1984년, 서울대 의대 학력고사 커트라인은 340점 만점에 305점 정도였다. 이과에서, 그 위로 물리학과 제어계측과 전자공학과 등 숱한 과가 포진하고 있었다. 연세대 의대는 전국에서 6000등대 정도면 어렵지 않게 들어갔다. 다른 의대는 구태여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요즘은 어떤가? 전국에서 6000등 정도면 대입 정시에서 꼴찌로라도 그 어느 의대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속칭 '빵꾸'가 나지 않는 한…. 서울대 이과 커트라인과 꼴찌권 의대의 정시 성적을 놓고 입시 커뮤니티에서는 '어디가 높으니 낮으니…' 이야기한다. 필자 때와는 정말로 달라진 풍경이다.

    왜 이리 됐을까? 대입 커트라인은, 특정 직업의 장래 전망에 대해 사람들이 어찌 생각하는가를 표상한다. 서울대 사학과 입학생 평균점수가 서울대 법대보다 높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이유는 역사가보다는 법률가에 대한 사회적 대접이 항상 좋았기 때문이다.

    의사 역시 마찬가지. 이 사회가 의사의 직업 전망을 좋게 보지 않는다면, 의대가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요즘 부모들은 공부 잘하는 자기 자식들의 의대 입학을 학수고대한다. 그럼에도 의사들만 '의사 직업이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한데 정말로 쓴웃음이 나는 건, 의사들이 자기 자식들 공부 잘해서 '성적만 되면' 대부분 의대에 보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다시 그람시에게로 돌아가자. 발전된 사회에서 혁명과도 같은 급격한 변화는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극히 드물다. 그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나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 내 의견이 '헤게모니'를 장악했을 때, 나의 주장은 힘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내 의견이 주변 사람들에게 잘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나의 진지'를 잘 구축하는 것이 선결 과제이다.

    설사 우파 정부가 들어서도 수가를 급격하게 인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명품 구두와 핸드백 가격은 정부가 '통제'할 필요가 없다. '있는 사람'만 사는 것이니까….. 하지만 쌀값이나 대중교통 요금, 그리고 수가는 정부가 통제할 수밖에 없다. '생필품'에 해당하는 종목 가격이 급하게 오를 때 대중의 비난을 감당할 정치인이나 행정가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의사 선생님들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필자 같은 사람이 볼 때) 급격한' 수가 인상인가? 한데 정부가 "노"라고 한다면? 게다가 정부는 '의사들은 월 평균 1304만원을 번다'는 광고로 대중의 정서까지도 장악할 가능성이 높은데?

    의사 선생님들이 탱크를 몰면서 혁명을 할 수는 없을 것이고…. 파업을 하시겠다고?

    오케이, 해 보시라. 파업 참여 의사 선생님들이 운영하시는 의원에 국세청 조사관 2∼3명이라도 나와서 모든 장부의 먼지까지 탈탈 털고, 의사 선생님들이 검찰 출석요구서를 받게 된다면? 대부분의 '순결한' 의사 선생님들조차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업 전선'이 유지될 수 있을까?

    이런 일, 정부에서 못할 것 같은가? '의사 파업' 기사가 인터넷 포탈 뉴스란에 실리는 순간을 상상해 보자.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의사에 대해 쌍욕을 '다구리'처럼 놓을 것이다. "파업을 방관한다"면서 정부에게도 쌍욕을 할 것이다. '사돈의 팔촌' 안에서 고령자 없고, 아픈 이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 불편하면 불만을 털어 놓게 마련이다. 우파든 좌파든 정부나 집권 여당이 이를 넋 놓고 바라 볼 것 같은가? 지지율 떨어지는 소리가 뚝뚝 들리는데?

    감히 한 말씀 올린다. '단기전'에서 의사 선생님들이 이기는 방법은 필자가 보기에 없다. 단기전에서 이기는 때가 되려면, 의대 커트라인이 바닥을 치는 시점일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와! 의사라는 직업, 정말로 못 해 먹을 직업이다'라는 생각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런 일은 향후 10년 동안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우파 정부가 들어서도 '급격한' 수가 인상은 없을 것이다. 병-의원 간 진료 체계나 급여 항목별 조정은 있을지라도….

    그보다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헤게모니를 구축하기 위해 '진지'부터 쌓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환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의사가 누구일까? 학력고사나 수능 점수가 높은, 실력 좋은 의사일까? 물론 그런 의사를 좋아할 사람도 많다. 그러나 필자는 '환자에게 공감하는 의사'라고 본다. 특히 의원 수준에서는 그렇다.

    그렇다면 의사 선생님들 역시 '급격한' 수가 인상보다는 '대한민국 의사들이 환자에게 정서적으로 얼마나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는가'를 알리는 게 우선이 아닐까? 그렇게 환자들, 그리고 국민들에게 의사들의 '따듯함'을 알려서 공감을 받은 뒤 "우리들의 말을 들어 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2019학년도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김지명 군의 스토리가 최근 화제였다. 김군은 어린 시절 백혈병을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역대급 '불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이다. 어머니가 서울 강북구의 어느 동네 시장에서 추어탕집을 하는 서민이기에, 감동은 배가됐는지도 모른다.
  • 김 군 기사 중 한 대목을 직접 인용해보자.

    강북구 인수동에서 조그만 추어탕집을 하는 김군 어머니(60)는 "세상에 고마운 분이 참 많다"고 했다. "지명이가 아플 때 의사 선생님이 '너는 완치될 수 있다'고 확신을 줬어요. 저희는 그저 의사 선생님 시키는 대로만 했어요."(중략)

    서울대병원에서 김군을 돌보다 지금은 공중보건의로 일하고 있는 의사가 "지명이는 첫 치료 때 합병증이 심해 중환자실까지 갔다"면서 "병상에서 '수학의 정석'을 풀던 모습이 기억난다. 힘든 치료를 이기고 좋은 성적을 거둬 대견하다고 전해 달라"는 메일을 (기자에게) 보내왔다. 김군 어머니가 (공중보건의) 이름을 듣자마자 "아이고, 우리 지명이 골수 검사해주시던 레지던트 선생님이에요"했다. "'키가 안 클 수 있다'는 부작용을 설명하다 함께 울어주셨어요. 참 고마운 분이에요."(조선일보 2018년 12월 6일자 기자수첩)

    사회적으로 힘도 백도 없는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우는 서울대병원 레지던트 의사 선생님…. 김지명 군 어머님은 그랬기에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서 의사 선생님을 절대 신뢰했고, 여전히 의사 선생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김 군이 서울대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 이런 이야기는 의협신문이나 의협 방송에 1면 톱으로, 혹은 메인 뉴스로 실릴 수 없는가? 지금은 공중보건의로 일하시는 그 가슴 따듯한 의사 선생님과 김 군의 만남의 자리를 의협에서 마련한 뒤, 이를 의협신문이나 의협 방송에서 보도한다면? 환자의 아픔에 함께 우는 대한민국 의사의 참 모습을 선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않을까?

    서민의 아들인 김 군이 경험했던 대한민국 의사들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그 분들이 어떤 영향을 끼쳤기에 의사가 되려는 것인지, 변변한 과외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수능 공부를 어떻게 했기에 이런 불수능에서 만점을 받았는지 등을 의협 방송에서 방영하면서, 의협을 국민에게 조금 더 가깝게 하려는 노력은 왜 안 하는가? 해마다 50만 명 이상이 치르는 게 수능인데! 직계 가족이나, 사돈의 팔촌까지 포함하면 대한민국 모든 이들은 '수능 영향권' 안에 있는데….

    이런 훌륭한 홍보수단을 왜 놓치고 있는지….

    주야장천 수가 인상을 이야기하고, 의사들의 주장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보건복지부나 한의학계, 약학계, 그리고 물리치료사협회 등 사방팔방으로 적만을 양산할 법한 전술행동을 취하면, 국민이 의사 선생님들의 편을 들어줄 것 같은가?

    의사 선생님들 주변에 '아군'이 과연 있는지, 만약 없거나 드물다고 생각되면 왜 그런지는 숙고해 보신 적이 있는가? 누가 봐도 강자로 보이는 이가 덕이 아니라 힘으로 주변을 대하면, 그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

    길게 보시라, 제발. 혁명은 없다. 급격한 변화도 없다.

    의사 선생님들이 원하는 만큼 수가가 올라가거나, '의사들이 일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공감대를 얻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의사의 수입과 의사들이 받는 사회적 대우에 대해, 의사 선생님들의 생각과는 달리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높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의대 커트라인이 이렇게도 높아진 것이다. 의사 선생님들조차 성적만 된다면 자녀들을 의대에 보내려고 한다는 점도 일반인들의 시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국민은 의사의 '눈물'을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의사들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알리려고 하기보다는, 의사 선생님들의 가슴 따듯함을, 환자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낫다고 본다.

    백혈병 치료를 받던 소년의 어머니에게, 그 치료 과정의 부작용으로 키가 크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함께 울어주던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는 결코 드문 경우가 아닐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시라. 길게 보면 그것이 '이기는 길'이다.

    머리 나쁘고 읽은 책도 변변치 않은 필자가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들인 의사 선생님들에게 '그람시 읽기'를 권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글은 의협신문에 실린 것으로 필자의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