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돌이킬수 없는 단계 진입"…사실상 대북제재 완화 촉구
  •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이 21일 청와대에서 만난 모습. ⓒ청와대 제공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이 21일 청와대에서 만난 모습. ⓒ청와대 제공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1일 "제가 볼 땐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며 "이제는 북한도 되돌릴 수 없다고 보고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그간 북한에 대해 "북한 핵무기뿐 아니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영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포기하는 그날까지 최대한의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언급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미국을 향해 대북제재 완화를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북한간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져들자 '중재안' 격으로 꺼내든 카드로 보이지만, 본질적인 문제인 북한 핵문제는 제쳐둔 채 북한측의 입장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비판이 정치권으로부터 제기된다.

    ◆ 정의용 "너무 자화자찬 하는 것 같아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21일 2018년을 마무리하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총평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새로운 원년이 됐다"며 "지난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여러분들에게, 국민들에게 한 약속을 일단 거의 이룬 게 아닌가 한다"고 평가했다.

    정의용 실장은 "너무 자화자찬 하는 것 같다"면서도 ▲한반도의 전쟁 위협을 없앴다 ▲비핵화 협상이 본격적으로 재개됐다 ▲균형있고 당당한 외교를 펼쳤다 ▲강한 안보와 책임국방을 실현했다 취지의 4가지 포인트를 소개했다.

    정 실장은 "과거는 평화를 지키는 수세적 차원에서 안보였다면 금년부터는 평화를 만들어가는 적극적 자세의 안보정책 추구했다고 본다"며 "작년에는 핵실험을 포함해서 16회 전략적 도발 감행했지만 금년에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했다.

    이어 "지난 2017년도에는 남북관계에서 아무런 접촉이 없었지만 금년에는 정상회담 3차례를 포함해 16회의 남북 회담이 다양하게 열렸다"며 "65년간 적대적 분단관계 이제는 거의 사실상 종식되는 단계에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정의용 실장은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이외에도 ▲지난 5월 4일 대한민국이 군사분계선 근처에 설치했던 확성기를 철거한 날을 비롯해 ▲9월 19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 ▲11월 1일 남북간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적대행위 모두 금지 ▲11월 7일 비무장 지대 지뢰작업 완료 및 폭 12미터 통로 개설 ▲12월 12일 GP철수하고 이를 상호 검증하기 위해 11개팀이 동시에 남북군사분계선을 서로 넘나든 사건 ▲2월 9일 김영철·리선권·김여정·김영남 등이 동계올림픽 관련 특사로 내려온 날 등을 중요한 날로 꼽았다.

    나아가 "평창 동계 올림픽이 이러한 모든 프로세스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폭제가 됐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실 것"이라며 "지난해 12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동계 올림픽을 시찰하러 강릉으로 향하는 도중 기차 안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전격적으로 한미연합훈련 유예를 제안했다. 그것이 바로 금년 1월 1일 신년사로 답이 돌아왔고, 즉각 대응해 1월 9일 남북고위급회담을 열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한미연합훈련 중단 및 유예가 북한을 대화로 나오게한 직접적 원인이 됐음을 인정한 발언이다.

    한·미 관계에 대해서는 "사실만 여러분들에게 말하겠다 판단은 여러분에 맡긴다"며 "과거 우리 역사상 청와대 안보실장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간에 만나고 통화하고 한 적이 없을 것이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통화하고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미국 철강 관세 면제 ▲FTA개정협상 마무리 ▲이란 제재 개도국 중 유일하게 예외 인정 등을 근거로 들었다. 다만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서는 "협상이 난항인 건 사실이다"고 했고, 미국 자동차 관세 문제도 "예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 美에 대북제재 완화 촉구한 靑

    정의용 실장은 또한 "사실 제가 볼땐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보고있다"며 "이제는 북한도 되돌릴 수 없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그 근거로 지난 19일자 〈조선신보〉를 들었다. 정 실장은 "일본에서 발간되고 있지만 북한의 공식 정책을 사전에 발표하는 도구로 종종 인용되는 〈조선신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4월 비핵화 결단을 강조했다"면서 "(조선신보가)'4월 27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새로운 역사 흐름 역전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정의용 실장의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한반도 프로세스에 대한 낙관론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을 향해 대북제재 완화를 촉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앞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2월 8일 문재인 대통령과 접견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북한이 영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북한 핵무기뿐 아니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그날까지 미국은 미국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압박을 앞으로 계속해 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펜스 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확실히 말씀드리겠다", "이러한 결의(의지)는 결코(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을 각각 두차례나 썼다. 명확하게 조건을 못박은 셈이다.

    이는 뒤집어 이야기하면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포기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르면 대북제재 완화를 논의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정의용 실장의 발언이 대북제재 완화를 촉구한 것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 기존 약속 이행하면 대북제재 완화+종전선언?

    우리 정부 또한 미국이 주장하는 대북제재 완화 조건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지난 1일 남미 순방 중 전용기 기내인터뷰에서 '제재 유지를 그만하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협상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그 부분에 대해서 무슨 고정적으로 더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지금 북한이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그 다음에 미사일 실험장을 폐기하고, 다음 단계로 영변 핵단지가 폐기되는 식으로 해 나가면 정확히 어느 시점인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가 됐다고 볼 수 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12일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는 같은 조건을 언급하면서도 "북한이 그럴(UN제재 해제를 받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들을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었다. 두 달 사이 북한이 이렇다할 조치가 없었음에도 청와대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해석을 달리 한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같은날 비핵화 초기 조치에 대해서는 "분명한 것이 아니냐"며 "(풍계리, 동창리 및 미국 상응조치 취할경우 영변 핵시설 공개 폐기) 조치들이 단계적으로 취해지면 어느 시점에서 종전선언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더 성숙되지 않겠나"라고 짚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종전선언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을 의식한 듯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너무 비핵화하고만 연계해 생각하지 마시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도 필요한것이라 보고 있다"며 "우리 국민들이 65년 간 전쟁 재발 위험 속에서 살아오지 않았나, 우리 국민을 위해서도 종전선언이 필요하다. 그런면에서 검토해봐야 한다"고 했다.

    ◆ 교착상태인 美·北, 일종의 '중재안'으로 보이지만…

    이같은 정의용 실장의 발언은 교착상태인 미국과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중재안으로 보인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만나 비핵화 문제 및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대북협력사업 추진 방안에 대해 폭넓게 협의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한미 간 공조를 더욱 긴밀히 지속해 가기로 했지만, 대화 테이블은 열리지 않고 있다. 대화분위기도 급격히 식어가는 모양새다. 북한이 한국과 미국에 날을 세우고 있어서다.

    북한은 같은날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싱가포르 북미정상 공동성명에서 언급한 '조선반도 비핵화'의 정의를 미국이 '북한 비핵화'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그릇된 인식"이라며 "우리(북한)의 핵 억제력을 없애는 것이기 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의"라고 주장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내부적으로 주장하던 바를 단순히 되풀이한 셈이지만 현재 한국과 미국이 인식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와는 분명한 거리가 있는 발언이다.

    이때문인지 청와대는 지난 1년 간 성과를 자랑하고도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다만 김정은의 답방 가능성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청와대는 김정은의 연내 답방이 무산된 이유에 대해서는 "두고보시죠"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겠냐"며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그렇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해보자"고 했다.

    반면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저희는 북미정상회담도 가급적 조기에 열렸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다 잘 됐으면 좋겠다"고만 했다.

    ◆ 野 "어느것 하나 결실 맺은 것 없다"

    이에 대해 야당은 청와대가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를 성과 이상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본질적인 문제인 '북한 비핵화'에 접근하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입장과 흡사한 주장으로 단순히 대화분위기 진전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문재인 정부는 당장이라도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질 듯 강조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결실을 맺은 것은 없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과정은 오히려 요원해지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는데, 지금 국민들은 지금의 현실이 과연 나라다운 나라가 맞는지 되묻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