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사찰' 폭로에, 박형철 비서관 기자들 찾아 "원칙대로 업무 수행했다" 울먹여
  •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박형철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 ⓒ뉴시스 DB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박형철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 ⓒ뉴시스 DB
    19일 저녁, 박형철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실 비서관이 브리핑을 자처하고 김태우 수사관 관련 폭로에 대해 해명했다. 같은날 낮,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이 김태우 수사관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사찰 리스트를 공개하자, 청와대가 실시간 해명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의혹'에 대한 해소로 보기엔 미진하다는 평가다. 박 비서관은 반부패비서실의 민간 정보 수집 정당성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민간 정보 수집의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둔 것이다. 해명에도 빈틈이 많아 의혹 해소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다. 민간 사찰과 관련한 본질적 의문들은 그대로다. 

    ◆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의 이례적 브리핑

    청와대는 지난 17일부터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반원이었던 김태우 수사관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해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수사로 전환된 전직 특감반원이 자신의 비위혐의를 덮기 위해 일방적으로 주장한 내용을 언론이 여과없이 보도하는 상황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날 박형철 비서관이 직접 브리핑에 응한 것이다.

    김태우 수사관이 작성한 것으로 추측되는 '사찰 리스트'가 자유한국당 의원총회를 통해 공개된 직후다. 사건이 김태우 수사관 폭로 관련 '진실게임' 양상에서 벗어나 민간인 사찰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상황이 연출되자 청와대가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브리핑에 나섰다는 이야기다.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한국당이 이 내용을 공개할 때 빨간 줄을 그었는데 그 부분을 먼저 설명드리려 한다"며 "10건의 보고서에 대해서는 기억을 더듬어 답변을 해드렸는데, 목록 중에 의문이 나는 것이 있으면 다시 소명토록 하겠다"고 했다.

    ◆ 자유한국당이 '빨간줄' 그은 10건 실시간 해명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이날 해명한 김태우 수사관의 보고서는 총 10건이다. 모두 자유한국당이 의원 총회 과정에서 공개하면서 빨간색으로 표시를 해 둔 문건이다.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특감반이 작성중인 문건은 물론 저에게 보고된 문건도 있지만, 특감반장이나 데스크 차원에서 폐기된 것도 있고 자신이 받은 첩보를 혼자 정리해놓은 수준의 문건도 있다"며 "해당 문건이 모두 보고 됐다는 점을 전제하면 안 된다"고 했다.

    박형철 비서관에 따르면 이중 3건인 ▲2017년 9월 22일 방송통신위원회 고삼석 상임위원과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의 갈등 ▲ 2017년 9월 28일 러시아 대사 내정자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의 금품 수수 관련 동향 보고 ▲2018년 2월 22일 박근혜 전 대통령 친분 있는 사업자가 부정청탁으로 공공기관 예산 수령했다는 의혹 관련 보고는 조국 민정수석에게도 보고됐다.

    2018년 1월 19일 고건 전 총리 장남인 고진씨의 비트코인 사업 활동 관련 보고는 박형철 반부패비서관까지 보고됐으며, ▲2017년 7월 11일 코리아나 호텔사장 배우자 자살 관련 보고 (조선일보 관련 보고) ▲2017년 7월 14일 한국 자산공사 비상임이사 송창달의 홍준표 대선 자금 모금 시도 보고 ▲2018년 7월 24일 홍석현 회장 외환거래법 위반 혐의 여부 관련 조선일보 취재 동향 보고 ▲ 민주당 유동수 의원의 재판거래 혐의 관련 조선일보 취재 동향 보고 등 4건은 특검반장까지 보고 됐다고 했다.

    박형철 비서관은 ▲2018년 8월 27일 작성된 진보성향 학자인 전성인 교수 관련 보고 ▲2018년 8월 28일 MB정부 방통위의 황금주파수 경매 관련 특혜제공 보고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보고된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 "박 비서관 추측 아닌가" 질문에 한발 물러서

    박형철 비서관은 해명 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중요한 기준으로 보았다. 지난 2017년 7월 21일 코리아나호텔 사장 배우자 자살 관련 보고와 같은달 14일에 있었던 홍준표 대선 자금 모금 관련 보고에 대해서는 "김태우 수사관이 2017년 7월 초에 특감반에 들어와 근무했지만 정식 임명은 7월 14일이었다"며 "(보고서 작성일시가 임명되기) 이전에 들어와 일할 때인데 이전 정부에서 민간 영역까지 다양한 첩보를 하던 관행을 못버리고 특감반장에 보고를 해, 당시 특감반장이 '우리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다르니 앞으로 이런 첩보를 수집하지 말라'고 제재를 했다"고 설명했다.

    2018년 7월 24일과 2018년 8월 6일에 작성된 조선일보 관련 문건에 대해서는 "김태우 수사관이 과기정통부에 감사관 자리를 만들고 지원했는데 공모가 7월 26일 경 있었다"며 "그러니까 김태우 직원은 이 시기엔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었다. 일을 열심히 안하던 시기"라고 했다. 박 비서관은 "특검반장 기억으로는 '찌라시' 수준으로 언론 사찰의 소지가 있는 내용을 작성했다"고 술회했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 박형철 비서관은 후에 기자들의 '비서관님의 개인적 추측이 아니냐'는 질문이 잇따르자 한 발 물러섰다. 박 비서관은 "일을 열심히 했을땐 (보고서) 생산이 많이 있다. 특별한 내용 없이 찌라시상 보고를 보면서 딴 생각을 했다고 추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2018년 8월 27일 진보성향 학자 전성인 교수 관련 보고와 2018년 8월 28일 MB정부 방통위의 황금주파수 경매 관련 보고에 대해서는 "2018년 8월 24일 감사원 감사관직 최종 발표가 나는 시기여서 저희가 이틀 전 쯤 김태우 수사관의 비위행위를 발견하고 감사관직 응모를 중단했고 근신 기간을 한 달 둬서 직무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근신기간 본인이 작성한 보고서여서 청와대는 관련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박 비서관은 브리핑 도중 감정에 복받친 듯 잠시 울먹이며 "문재인 정부 초대 반부패 비서관으로 제 명예를 걸고 법과 원칙에 의해 업무 수행해왔다"며 "비위행위자의 일방적 주장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 여권 중진 관련 보고는 '위로' 올라갔다

    청와대는 '시간'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개 인정했다. 박형철 반부패비서실 비서관은 2017년 9월 22일 방통위 고성석 상임위원과 김현미 국토부 장관 갈등설에 대해서는 "대통령 비서실 직제 7조 2항에 적시된 특감반 직무 권한 중 사실확인을 해 조국 수석에 보고됐다"고 했고, 2017년 9월 28일 주 러시아 대사 내정자 우윤근 국회사무총장의 금품수수 관련 동향은 "내정자 신분에 있는 상황에서 보고를 받고 수석에 인사검증에 참고하도록 전달했다"고 해명했다.

    2018년 1월 19일에 작성된 고건 전 총리 장남 고진의 비트코인 관련 사업 활동중 보고서는 정책 정보를 생산하는 '로 데이터' 생성에 활용했다고 했다. 조국 민정수석에는 보고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2018년 2월 22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사업자가 공공기관 예산을 수령하려 했다는 보고서에 대해서는 과기정통부 감사관실 '이첩'으로 처리했다. 김태우 수사관이 옮기려던 자리였다.

    ◆ 특감반 민간인 조사 묻자 "업무범위라 생각"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이 사건의 본질적 부분인 청와대 민정수석실 내 특별감찰반이 민간인의 정보를 조사한 부분에 대해서 "업무범위라 생각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박 비서관은 "(정부 고위 인사간) 갈등이 있다는 내용이 회자될 때 인사권자가 언론을 보고 갈등이 있구나 없구나를 판단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대통령 비서실 직제 7조 2항에 따른 사실확인권한에 따라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정수석실이라면 '비위 사실과 관계된 사실확인에 한정해 민간을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청와대는 "비위 사실과 사실 확인이 별개로 규정돼 있다"며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나중에 문제제기를 하라"고 주장했다.

    비트코인 정책과 관련된 고건 전 총리의 장남 고진 씨 관련 보고서에 대해서도 "누굴 사찰하는게 아니지 않느냐, 그래서 제대로 정책 보고가 되겠느냐"며 "저는 다시 한 번 블록체인 관련 불법행위 근절 정책 보고서를 쓰라고 한다면 똑같이 할 것"이라고 했다.

    정책보고서를 만들라는 지시를 이행하기 위한 기반 데이터를 위해서라면 앞으로도 민간을 조사할 생각이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 문재인 정부는 가상화폐 문제가 직접 다루기 어려울 정도로 큰 화제가 되자 해당 보고서가 생성되기 4일 전인 2018년 1월 15일 이 문제를 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에서 전담토록 결정한 바 있다. 공개적으로 '손을 뗀' 청와대가 실제로는 관련 내용을 조사했고, 해당 보고서까지 만들었음을 시인한 셈이다.

    ◆ 느슨하게 관리돼왔던 특감반원

    이와 별개로 특감반원들에 대한 그간의 느슨한 관리가 노출되기도 했다. 박형철 비서관은 "(나는) 보고서를 누가썼는지 질문하지 않는다. 누가 이 내용을 썼는지 모른다"며 "(과기부, 산업부 등에 관련한 보고서를 주로 작성한다는 것을) 이제보니 알게 됐지 그 때 당시엔 특감반장의 고유영역"이라고 했다.

    이어 "출근해 어떤 일을 하고 다음날 무슨 활동을 할지 보고하는 체계는 있다"면서도 "지난8월 김태우 수사관이 과기정통부 감사관에 공모하는 등 내부적인 문제가 생긴 뒤부터 특감반장으로부터 표로 만들어진 두 페이지 분량의 매일 보고를 받고 있다"고 했다. 박 비서관은 "결과가 이렇게 된 부분에 있어 근태관리 부분에 책임이 없다고 말씀드릴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태우 수사관이 (비위 행위 건으로) 감찰을 받을 때 나머지 직원도 골프를 쳤다고 했다. 그 때 다른 직원들을 문제 삼아 묻어달라고 겁박을 하는구나 느꼈는데, 그 이후 김태우 수사관이 이런걸 가지고 협박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 정치권서는 '내로남불' 목소리

    이처럼 반부패비서실에서 여권 중진 관련 보고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이렇다할 대응책을 내놓지 않자 정치권에서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특별감찰반원이 골프를 친 비위행위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10명 전원을 교체했던 청와대, 최순실 사태에 대해 적폐청산을 강하게 외쳤던 청와대가 정작 같은 잣대를 여권 인사들에게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또 특별감찰반이 향후에도 민간인을 조사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에 대해서도 "문제의 소지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의 설명에 따른다면 사실관계 확인이나 정책보고서를 위해서라는 명분만 제시된다면 관련 민간 분야를 제한 없이 조사할 수 있다는 의미여서다.

    나경원 의원은 같은날 의원총회에서 "이 사건은 잘 아시다시피 민간인 사찰과 그리고 정권 실세의 비리 은폐 의혹이 드러난 사건"이라며 "청와대는 더 이상 언론플레이와 법적 고발로 본질을 흩트리려 하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사태를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