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협상과 협상학 ⑪ 미북 힘겨루기에 끼인 한국, 슬쩍 책임 흘려내는 것이 '방책'
  • 한때 ‘승진하고 싶다면 한국과의 협상 팀에 들어가라’라는 말이 미국 관리 사이에 있었다고 한다. 그 만큼 한국과 협상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로 만들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낮은 협상력 이유로는 5가지를 들곤 한다. 첫째 협상을 할 때 목적이나 이해를 명확해놓는 기본적인 준비가 부족하고 둘째, 감정에 치우치거나 감정 조절에 서투른 점 셋째 특유의 성급함으로 한 방에 해치우려 서두르며 넷째, 양보는 굴복으로 인식한다거나 다섯째, 논리와 설득보다 인간관계나 친밀함으로 승부하려 한다는 점이다. 요즘 많은 변화가 있었다지만 여전히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최근 북핵 협상이 미북 서로 힘겨루기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두 나라는 지금 서로 협상이 결렬될 경우 어떤 압력을 내놓을지 즉 대안(BATN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으로 무엇을 내놓을지 시기와 방법을 저울질하고 있다. 협상학에서 대안은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다른 판도 있음을 보여주는 카드이다. 손님과 상인이 서로 물건 ‘흥정(Options)’하는 것을 넘어 안사겠다며 자리에 일어서는 것이다. 손님 입장에선 다른 상점에서는 더 나은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거나, 상인 입장에서는 차라리 안팔 수도 있다고 선언해 손님을 움직이게 만드는 방안이다. 그 대안이 강력할수록 협상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미국은 대북제재를 전방위적으로 더 높이거나, 중국을 이용해 완화분위기를 다시 조이거나, 북한 내부를 직접 흔드는 카드도 가능하다. 북한은 시간이 흐를수록 핵군비의 완성도를 높인다는 압력이나 또 다른 핵미사일 실험처럼 벼랑 끝 전술을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다.

    염려스러운 것은 힘겨루기가 강해질수록 두 나라 모두 한국을 이용하려는 경우이다. 한국은 전통의 한미동맹, 지난 9월 평양선언에 각각 매여 있는 만큼 양국으로부터 모순적인 선택을 강요당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언급한 한국 협상의 문제점들이 그대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미 ‘불명확한 목적’과 ‘성급함’은 미국과 북한에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자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 목적 보다 ‘제재 완화’에 더 비중을 둔 것처럼 보여 미국의 우려를 낳기도 했다. 후자 역시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을 서두르며 실질적인 남북정상회담 성과를 만들려다가 여의치 않자 북한의 실망과 불만이 커지고 있다. 미북정상회담의 가교 역할을 염두에 둔 것도 이해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장기전을 언급함에 따라 답방이 이뤄지더라도 성과물은 제한적일 것이다.

    이럴 때 협상전문가들은 대안을 흘리라고 하는데 우리가 미북을 유인할만한 대안은 보이지 않고 있다. 대안이 없고 압력만 받는다면 마치 유도의 힘흘리기처럼 그 힘을 옆으로 슬쩍 흘려내는 방안이 있다. 남북철도 착공식을 굳이 연내에 해야 하거나, 설령 김정은 위원장이 답방하더라도 그것은 상징적이라는 의미를 미국에 알려두어야 한다. 북한에도 김위원장의 공개 답방 약속 영상을 틈틈이 공개하며 약속위반에 대한 문제점과 책임을 흘려두어야 한다.

    끝으로 2011년 한미FTA 협상 시 늑장을 부리던 미국 관리들에게 당시 우리나라의 김현종대표는 한-캐나다 FTA 우선체결설을 노출하며 미국의 농업지역 출신 상원의원들의 조바심을 이용했다고 한다. 결렬 때 누가 제일 조바심을 갖게 될지, 그 사람에게 압력을 줄 수 있는 제3의 인물이나 세력은 누구인지 찾아내는 것도 힘 있는 대안을 만드는 비결이다. 다른 나라 정부가 우리에게 늘 써먹어온 방법 중 하나이다. 앞서 언급한 우리나라 협상팀이 흔히 범한다는 5가지의 실수를 늘 염두에 두는 것도 기본이다. 

    /권신일 前허드슨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