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에서 인사 좌지우지… 현장 모르는 사람도 '줄' 대면 승진하는 게 공직의 현실
  • 얼마전 경찰 치안감(지방청장) 인사가 끝났다. 치안감으로 승진하지 못한 경무관이 불공정한 인사라고 푸념을 하면서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경찰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지만, 사연을 들어보니 그럴만하다. 그는 서울청 기동본부장, 경비부장 등 전국에서도 가장 집회시위가 많은 경비부서에서 근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거푸 치안감 승진에서 고배를 마셨다. 

    대신 본청 기획부서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승진을 한다. 현장을 뛰면서 징계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획단, 대변인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승진을 한다.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있다)을 외치지만 실제 승진인사는 정반대다. 

    탈락한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제발 외부에서 승진인사에 개입하지 말라고 하소연을 한다. 외부라는 것이 인사권자의 위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곳이다. 승진에 목매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높은 곳에 손대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그런 높은 곳에 손을 대려면 현장 근무를 기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한 승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곳에 가까이 있는데서 근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속칭 젊고 유능하다는 사람들이 청와대 비서실에 파견 나가 근무하려고 한다. 

    인사에서는 출신별·지역별 안배 자체가 차별 

    그리고 실제 그런 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보고만 받아 보고서를 편집·전달만 하는 사람들이다. 현장과 무관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현장에 지시만 하고 업무에는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 현장과 동떨어져 있으니 징계위험 부담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대신 인사권자와 자주 접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니 승진과 포상에서 혜택이 많다. 특진도 빨리하고, 심사도 현장(파출소, 지구대, 경찰서 형사, 수사, 교통)을 뛰는 사람들보다 빨리된다. 과거 그런 부서에 가려면 소위 빽(연줄)이 있거나 학력이 좋거나 배경이 있어야 했다는 건 상식이었다. 

    현장 경험이 풍부하고 경륜이 많은 사람들은 이런 자리에 쉽게 갈 수가 없다. 현장에서 근무하다보니 이른바 연줄도 빽도 없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승진문턱이 좁아서 더 더욱 치열하다. 때로는 근거 없는 투서도 난무한다. 균형인사를 한다면서 출신별(경찰대, 간부후보, 순경출신), 지역별(영남, 호남, 수도권 등 기타권) 안배를 한다고 하지만 인사에서 그런 안배를 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다.

    출신과 지역은 인사 대상자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신과 지역을 잘 타고 나서 승진이 되는 경우도 보았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경무관 승진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출신 안배로 갑자기 승진하는 경우도 있었다. 

    진급에 유리한 부서로만 옮겨다니는 사람들도 많아

    그보다 더 심한 것은 1년에 두 번 승진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필자는 경무관에서 치안총감인 경찰청장까지 가는데 채 3년도 안 되는 경우도 보았다. 지방청장을 하지도 않고 오로지 기획부서만 근무하다가 경찰청장으로 되는 경우도 있다. 

    기획부서와 인사부서, 그리고 청와대 파견 등 이른바 진급하기 유리한 곳으로만 옮겨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파출소, 지구대, 형사팀을 채 1년도 근무해보지도 않고 경찰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기획부서, 교육기관에 근무하다가 승진만 하는 경우도 많다. 

    해외국비유학, 주재관, 본청 외사국, 또다시 주재관 등으로 해외근무만 한 사람도 있다. 파출소, 지구대에서 주취자와 폭력사범, 강절도사건을 처리경험도 없이 경찰총수까지 오른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인사 때만 되면 위에서는 “빽쓰지 마라, 빽쓰면 폐가망신한다”라는 말을 공공연히 외친다. 경찰 조직에서 위에서 하는 그런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잘 쓴 빽은 성공하지만 잘못 쓴 빽은 망신만 당한다. ‘가만있으면 손해다’라는 인식이 인사 때마다 나온다. 연말이면 승진과 성과평가와 관련 직원들 인사고과 평가를 한다. 

  • 만연한 현장기피와 기획, 경비, 정보부서 선호 현상

    인사고가 평가요소도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평정을 하는 사람과 학교, 출신이 같으면 평정을 높게 받게 되는 식이다. 그렇지 않고 평정을 하는 사람과 악연이 있으면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하는 일에 비해 능력을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아니 더 큰 문제는 인사평정권자가 자신이 평정해야하는 부하직원들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모르면서 그들에 대한 평가를 점수로 환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 조직의 경우 승진을 하는 데 특진, 심사, 시험승진 제도가 있다. 그런데 승진을 위해 일은 제대로 안하고 시험공부만 한다고 하여 시험승진은 축소하고 특진, 심사승진 인원을 많이 늘였다. 문제는 시험, 심사를 통해 승진을 하려면 파출소, 지구대, 형사, 수사팀 등 이른바 현장을 기피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이다. 힘든 현장 근무보다는 승진에 필요한 자기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기획부서 등에 있어야 이런 승진에 더 유리하다. 

    그러니 젊고 유능하다는 사람들이 현장을 기피하고 기획, 경비, 정보부서를 선호한다. 오히려 퇴직을 앞두고 근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기획능력이 떨어져서 파출소·지구대로 내몰리는 것이 현실이다. 나이든 경찰이 일선 현장에서 사건을 처리하다가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의 지방근부 제도화 해야  

    경찰 조직만 이럴까? 절대 그렇지 않다. 다른 중앙행정부서도 실상은 별반 다르지 않다. 속칭 고시출신들은 사무관승진 후 기획부서와 국비해외유학을 쉽게 간다. 이들은 지방과 현장 근무를 기피한다. 지방, 현장을 가면 가족과 떨어져있어야 하고, 자기개발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민원부서도 기피한다. 그러니 중앙부처에서 내려오는 각종 지시·기획내용이 실제 민원 현장과 동떨진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필자는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들은 필히 주민센터, 읍면동 등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지방근무를 예외없이 하도록 제도화 하여야 한다. 그래야 현장 민초들의 목소리와 애환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유배형이라는 형벌이 있었다. 많은 고위관리가 왕에게 바른말을 하다가 미움을 사서 귀양을 갔다. 이 가운데는 다산 정약용 선생처럼 유배지에서 민초들의 삶을 보면서 관리들에게 교훈이 되는 책을 저술한 이도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고위공무원들은 재직 중 국가의 혜택으로 유학을 가거나 공부를 해서 석·박사학위는 많이 따지만, 실제 국민들에게 교훈이나 도움이 되는 책을 저술한 사람은 많지 않다. 이들 고위공무원들은 자기 개발을 위해 대학원 진학과 유학, 해외파견 근무에 신경을 쓸 뿐 현장 민초들의 어려운 곳을 찾아가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극히 적다. 

    공무원 선발 방식 확 바꿔야

    대한민국 공무원이 노량진 학원가에서 법학, 행정학, 영어시험과목을 통해 선발되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공무원은 시험 한 문제로 당락이 결정되기 보다는 봉사심과 애민 정신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봉사심과 애민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 공무원이 되어야 나라가 제대로 된다. 그런 사람들이 선발될 수 있도록 공무원 선발제도를 확 바꿔야 한다. 더 이상 4지선다형 객관식문제, 형식적인 자기소개서, 획일적인 면접으로 공무원을 선발해서는 안 된다. 

    승진제도도 확 바꿔야 한다. 위험현장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근무하는 사람이 더 많이 승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승진 단계마다 반드시 일정기간 현장근무를 거치도록 해서 청와대 파견이나 기획부서만 근무하는 사람들이 '벼락승진'을 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신언서판(信言書判)을 갖춘 사람이 등용되고 승진되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바로 선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