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선거 돌풍의 주역 ‘한국유’ 따라다녀 보니

지방선거 마지막 유세 동행…수십만 명의 지지자들 모여 축제 분위기

허동혁 칼럼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12.04 17:25:53
▲ 신베이(新北) 시내에서 차량유세중인 민진당 신베이시장 후보 수젠창(蘇貞昌) 전 행정원장. ⓒ허동혁
중국의 코 앞에 있는 대만령 킨멘(金門)까지 국민당 가오슝 시장 한국유(韓國瑜, 한궈위) 돌풍이 불고 있는 것을 확인한 필자는 다시 한 번 민진당과 한국유의 대형 유세를 비교 관찰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선 이전에 한국유 돌풍을 막으러 자기 지역구 행사를 제치고 급히 가오슝으로 내려간 민진당 신베이(新北) 시장 후보 수젠창(蘇貞昌) 前행정원장(국무총리)의 하루 일정을 자세히 관찰하기로 했다. 운 좋게도 민진당 관계자들의 많은 도움을 받아 가능하게 됐다.

필자가 선택한 날은 수젠창 후보가 가장 바쁜 일정을 보낸 날로 언론에 소개됐다. 차량유세 1건, 동향회 참석 1건, 어린이 행사 2건, 타 도시 지원유세 1건, 시 의원 합동 연설회 2건이었다. 신베이 시는 경기도처럼 수도 타이페이를 원형으로 둘러싼 위성도시로 자연스레 이동거리가 길어졌다.
수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국민당 후보에게 계속 밀리고 있었다. 여론조사 공표 가능 마지막 날 (선거 10일 전)에 국민당 후보에게 0.3%차로 접근하기는 했으나 현장에서 만난 대만 기자들은 대부분 수 후보가 불리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차량 유세가 끝난 뒤 ‘신베이시 타이난(臺南) 동향회’로 향했다. 대형 홀에는 3000여 명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미 몇몇 무소속 시의원들이 테이블을 돌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타이난은 민진당의 텃밭으로, 이 동향회는 사실상 신베이 시 민진당 단합대회 같은 성격의 오찬장이었다.

수 후보가 들어서자 갑자기 장내가 떠들썩해 졌다. 수 후보가 단상에서 간단한 인사말을 마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필자가 동향회장에서 타이난의 민진당세를 실제로 확인 한 건 수 후보가 동향회장을 떠난 직후 국민당 신베이 시장 호우요우이(侯友宜) 후보가 동향회장에 도착하면서였다. 그 역시 단상에서 인사말을 했으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호우 후보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후 필자는 다른 곳을 들렀다가 고속철을 타고 신베이에서 70킬로미터 떨어진 신주(新竹)시 민진당 후보 합동연설회로 갔다. 이미 신주시 민진당 후보들이 6만여 명의 청중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고 있었다.

前국무총리의 지원 유세에 수천여 명 환호

▲ 선거운동 마지막날 한국유 유세에 몰려든 가오슝 시민들. 15만명이 모였다. ⓒ허동혁

민진당 관계자들은 수 후보가 회장에 도착하면 중앙을 걸어 들어오며 청중들과 인사할 수 있게 길을 터놓고 있었다. 이윽고 수 후보가 도착하여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그와 악수하려고 몰려들었다. 인산인해였다. 필자는 이 때 수 후보의 뒤를 바짝 따라 같이 걸어갔지만, 매일 이런 식으로 선거운동을 할 거면 낙선하더라도 해볼만하다고 느낄 정도로 수 후보는 엄청난 환영을 받았다. 이런 환영은 신베이 시에 되돌아가 저녁에 참석한 2건의 연설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연설을 들으려 몰려든 인파만 보자면 수 후보는 열세에 놓인 후보로는 도저히 느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대만의 어떤 후보 연설회에서도 동원된 군중들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대만에는 정치를 생활 이벤트로 여기며 자신의 지지 정당 집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민진당 유세 현장에서는 이전 가오슝의 한국유 후보 연설회장에서 본, 구세주를 만난 듯 열광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날 일정을 마치고 필자는 최소한 한국유는 당선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11월 23일, 필자는 한국유의 마지막 유세를 보기 위해 가오슝으로 향했다. 대만인들 모두 마지막 날 유세는 꼭 가보기를 권유했다. 투표 예정인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선거운동 마지막 날의 지지 후보 유세를 보러 간다는 것이었다.

점심시간 무렵부터 대만 각 TV 방송국은 저녁부터 벌어질 국민당 한국유 후보와 민진당 가오슝 시장 첸치마이(陳其邁) 후보의 마지막 연설회장 모습을 생중계했다. 한국유가 15만 석, 첸치마이가 20만 석의 의자와 생수를 준비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유 후보 측이 SNS 라인(LINE)에 개설한 언론사 대화방에는 90여개 매체가 마지막 날 유세 참가 신청을 했다. 간간히 일본, 홍콩, 미국 및 싱가포르 언론사가 보였지만, 중국은 홍콩에 본부를 둔 관영 매체 ‘봉황TV’ 만 보였으며, 한국 언론사는 보이지 않았다.

필자는 한국유 후보 공보비서의 도움으로 4시간에 걸쳐 진행된 마지막 날 유세 내내 단상 앞뒤에서 행사를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행운의 기회였다.

유세장으로 가는 공보진 차량에 동승한 필자는 공보비서에게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직접 나서서 비난하는 중국의 인터넷 여론 조작 의혹에 관해 질문했다. 그는 “중국이 인터넷으로 국민당을 돕는다는 얘기는 나도 들었지만, 그 수는 미미하다. 오늘 (유세장에) 가보면 알 거다. 다른 도시에서 한국유를 응원하러 온 사람들도 있다”고 대답했다.  

한국유 유세, 4시간 가운데 2시간 이상이 가수 공연

▲ 선거운동 마지막날 무대 주변에 나타난 10여명의 한국유 흉내를 낸 대머리 사나이들. ⓒ허동혁

도착한 연설회장은 3주전 민진당 첸치마이 후보가 방문했던 장소였다. 그러나 풍경은 전혀 달랐다. 2002년 한국의 월드컵 응원을 떠올리게 했다. 참가자들은 국민당기인 청천 백일기로 바디페인팅을 하거나 각종 응원 아이템을 들고 있었다.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4시간에 걸쳐진 연설회는 두 시간 이상이 인기 가수의 공연으로 채워졌다. 콘서트를 보러 왔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프로그램이 잘 짜여졌다. 반면 같은 시간 휴대폰으로 확인한 첸치마이 후보 연설회는 지원 연사들의 연설 위주로 짜여졌다.

무대 뒤에서는 한국유의 페이스북 홍보를 담당한 한국유의 딸 한빙(韓冰)이 나와 관계자들과 인사하고 있었다. 캐나다 밴쿠버의 브리티시 컬럼비아대(UBC)에 유학중인 그는 이번 선거기간 내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시종일관 겸손한 태도를 보여 많은 칭찬을 받았다.

필자는 제한구역 내에서 한국유와 같은 대머리 스타일의 남성 10여 명과 여성 1명을 목격했다. 그들은 ‘가오슝을 변혁시켜 대만을 밝히기 위해 사농공상이 모두 일어서자’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국내 언론은 이들을 두고 ‘가오슝 인구를 상징하는 227명(또는 277명)의 대머리 지지자가 나타났다’고 소개됐지만(가오슝 인구는 현재 277만명), 이는 한국유 캠프의 다른 공보비서의 발언에서 비롯된 오보이다. 필자는 유세 내내 277명의 대머리들을 단상 위나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필자는 단상 뒤에서 김정은 마케팅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가오슝 시의원 무소속 첸칭미(陳淸茂) 후보와 만났다. 그는 한국유 후보 연설 시 무대 위의 다른 국민당 후보들과 같이 오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시의원 선거는 다선거구제인 만큼 국민당은 이렇게 친 국민당 무소속 후보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었다.

한국유는 유세가 끝나갈 무렵인 9시 30분경 유세장에 나타났다. 3주전과 달리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공보비서가 ‘현재 한 후보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고 귀띔했다. 그는 민진당 유세와 같은, 청중들 사이에 난 길을 걸으며 등단하는 것이 아닌, 뒷편에서 걸어와 그의 부인·애완견과 함께 무대에 섰다. 3주 전 연설에서 구사한 대만어가 아닌 중국어로 말하며 “가오슝을 내게 맡겨달라”는 내용의 연설을 한 뒤, 법정 선거운동 기한인 오후 10시에 맞춰 유세장을 떠났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지난 몇 달 간의 일로 체력이 소모된 것으로 보였다.

법정 유세시간 지나서도 지지자들 거리서 축제

▲ 선거운동 마지막날 유세를 하는 국민당 한국유 후보. ⓒ허동혁

오후 10시 이후에도 지지자들은 거리 곳곳에서 청천백일기를 흔들며 ‘한국유 퉁솬’을 외쳤다. ‘얼린 마늘’을 뜻하는 ‘퉁솬’(凍蒜)은 당선(當選)의 대만어 발음과 동일하며, 민진당에서 처음 사용했지만 지금은 정당을 가리지 않고 쓰인다.  

유세장 주변은 월드컵이나 월드 시리즈, 슈퍼볼 우승팀 도시의 광경을 능가했으며, 전혀 의도된 모습이 아닌 순수한 자기의지의 표현으로 보였다. 필자가 차안에서 이들에게 손을 흔들자 ‘퉁솬’을 연호했다. 민진당 거물정치인 수젠창 후보의 지지자들도 자발적이었지만, 한국유 지지자들의 경우 새 세상이 왔다는 듯 열광적인 태도라 달랐다. 필자가 정치이벤트로서 이런 행사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란 것은 당연했다.

또 하나 놀란 것은 대만 정치의 순수성이다. 대만 선거는 여론 왜곡이 있을 수 있는 인터넷 의존을 최소화하고, 현장 유세 중심으로 이뤄졌다. 돈 봉투와 조직폭력배를 제외하면, 비교적 순수했고 좌우 논쟁이 없던 80-90년대 초반 한국의 선거 형태에 사람만 배 이상 많이 몰려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상한 음모나 과거를 들춰내는 중상모략, 유언비어, 정치철새, 경선불복, 배신행위 등도 선거 전후해서 전혀 듣지 못했다. 기껏해야 상대 후보보고 ‘돼지 마더’라고 외모비하를 하는 정도고, 그나마 즉시 사과한다. 그러니 누구나 부담 없이 정치에 관심 가질 수 있는 풍토가 조성 돼 있다.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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