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부 ‘워라밸 정책’ 시행 뒤 기현상 발생… ‘지타하라’ 신조어까지 나와
  • 2016년 12월 25일 日광고회사 '덴츠'에 근무하던 신입사원이 자살했다. 일주일에 10시간도 못자는 혹사를 당했다고 한다. 이 일로 '덴츠'는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기소당했다. 사진은 당시 기자회견을 갖고 사과하는 덴츠 사장.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6년 12월 25일 日광고회사 '덴츠'에 근무하던 신입사원이 자살했다. 일주일에 10시간도 못자는 혹사를 당했다고 한다. 이 일로 '덴츠'는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기소당했다. 사진은 당시 기자회견을 갖고 사과하는 덴츠 사장.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동아일보’는 4일 일본 직장인들 사이에서 최근 유행하는 단어 ‘지타하라’를 소개했다. ‘지타(時短, 시간단축)’와 ‘하러스먼트(Harassment, 학대)’를 합성한 단어로, 업무량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늘었는데 정부와 회사는 근무시간을 단축하라고 종용하면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일본 생활을 주로 다루는 ‘프레스맨’이라는 매체는 지난 11월 12일 “지타하라가 2018년 신조어·유행어 대상 후보로 선정됐다”면서 “일본의 샐러리맨이라면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단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지타하라’가 점점 관심을 끄는 이유는 정부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며 현실감각이나 원인분석 없이 책상머리에서 만든 정책이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 여론을 환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2월 성탄절에 日최대의 광고기업 ‘덴츠’에서 일하던 여자 신입사원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주일에 채 10시간도 못 자면서 하루 20시간 업무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했다. 이후에도 소위 ‘블랙기업(日작가 곤노 하루키의 책에서 따온 단어로 직원을 노예처럼 혹사시키는 회사를 의미)’에서 근무하던 젊은이들의 과로사나 자살이 계속됐다.

    놀란 아베 정부는 지난 6월 ‘일하는 방식 개혁’이라는 정책을 내놨다. 핵심은 “야근 시간을 월 100시간 미만, 연 720시간 미만으로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동일임금 동일노동 원칙도 적용됐다. 아베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순식간에 日국회에서 통과돼 2019년 4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일본 정부-기업들, 신입사원 ‘워라밸’ 챙겼더니 관리직이 과로사·자살

    ‘동아일보’에 따르면, 일본은 ‘일하는 방식 개혁’ 정책으로 젊은이들의 과로사나 자살은 막을 수 있게 됐지만 다른 문제가 두드러졌다고 한다. 일본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관리직으로 분류되는 차장급 이상부터는 ‘재량 근로자’로 분류돼 ‘일하는 방식 개혁’에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허점을 알게 된, 적지 않은 일본 기업이 일을 많이 시킬 수 없는 하위직 사원의 업무를 관리직에게 대신 시킨다고 한다. 때문에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관리직 사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본 직장인들은 정부와 기업이 ‘시간단축’을 앞세워 학대한다며 ‘지타하라’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일본 정부도 ‘아차’ 싶었는지 후생노동성을 통해 ‘무리한 근무시간 단축 등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는 법안을 2019년에 입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땜질식 조치는 예기치 못한 풍선효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또한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커지면서, 신입사원이나 하위직 사원의 일을 관리직 사원들이 대신 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30년 전 일본에서 나온 과로사가 한국에서는 20년 전 등장한 것처럼 ‘지타하라’ 또한 언젠가 한국 사회에 등장하지는 않을까. 20대와 60대 위주의 복지정책과 관련 여론을 조성하는 한국 정치권과 언론, 학계 등의 행태를 보면, 그 사이사이에 있는 세대들이 ‘지타하라’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커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