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교수 협의회' 국회 토론회… "전문가 패싱 그만" 13일 '탈원전 반대' 서명운동
  • ▲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적 에너지 정책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적 에너지 정책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지난달 24일 대만의 탈원전 정책이 국민투표로 폐지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사회 전반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6월 문 대통령의 '탈핵 선언'과 함께 진행된 급진적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대한 국민 의견수렴 및 공론화 과정의 필요성을 모색하는 자리가 국회에 마련됐다.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적 에너지 정책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에교협은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은 정치권 공약에서 최초 출발한 탓에 이제껏 정쟁(政爭) 측면에서 다뤄졌을 뿐, 공론화를 거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웃나라 대만을 반면교사로 삼아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했다. 에교협은 13일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및 탈원전 반대 범국민 서명 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신고리'아닌 '탈핵' 자체를 공론화 했어야"

    발제를 맡은 정범진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핵 시대를 선언했다"며 "문제는 대선 공약을 바로 정책으로 만들었다는 것과, 신고리 5·6호기만 공론화에 부치고 정작 더 중요한 탈핵은 기정사실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탈핵을 선언하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1,368명이 사망했다" "설계 수명이 다한 원전 가동을 연장하는 것은 선박운항 선령을 연장한 세월호와 같다"등의 '어록'을 남겼다.

    정 교수는 "후쿠시마 사망자는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고, 계속운전하는 원전을 세월호와 비교한다면 미국에는 세월호가 84기 있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사고는 선령이 아닌 과적 및 균형수 부족이 원인으로 드러났고, 계속운전을 허가받은 80여개의 미국 원전 절반은 3년 평균 92% 수준의 이용률로 가동되고 있다.

    어떻게 국가 에너지기본계획이 5년마다 바뀌나

    지난해 약 3개월간 진행된 신고리 공론화 과정도 도마에 올랐다. 당초 2만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선 '건설재개'가 36.6%로, '건설중단' 27.6%보다 9% 앞섰다. 이 차이가 최종 설문조사에서는 19%(찬성 59.5%·반대 40.5%)로 벌어졌다. 

    정 교수는 그러나 "숙의과정은 잘 이뤄졌는지 몰라도, 마지막 '권고 보고서'를 만드는 과정은 밀실에서 위원 몇 사람이 만든 것으로 민주사회에서 과연 정당한 소통을 거쳤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와 원전 축소를 권고하는 내용을 담은 공론화 보고서, 즉 에너지전환로드맵은 지난해 10월 20일 발표된 데 이어 22일 대통령 입장 표명을 거쳐 24일 국무회의를 통과한다. 정 교수는 "이 보고서는 국무회의 보고 안건으로 단 5분 논의됐다"며 "짐작컨대 보고서를 국무회의 안건으로 만드는 데 공문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의 모호성과 편향성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정 교수는 "수요예측이나 구체적인 데이터가 없어 검증이 어렵고, 세부 내용은 없고 목표만 있는 계획도 확인이 불가하다"며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난해함을 꼬집었다. 그는 에너지기본계획에 대해서도 "원전 비중을 1차에선 41%, 2차는 29%라더니 3차에선 언급도 없다"며 "어떻게 국가 기본계획이 5년마다 바뀔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에너지기본계획의 목적은 에너지 관련 모든 분야를 대상으로 다른 에너지 관련 계획과 체계적으로 연계, 거시적 관점에서 조정하며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정 교수는 "그러나 현 계획에선 원자력은 언급도 없고 재생에너지 일변도로 구성돼 있으며, 전력망 계획도 없는 데다 재생을 40%로 늘린다는 등 실행력에도 의문이 든다"며 "선언적 수준의 공약과 차별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 ▲ 왼쪽부터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성풍현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박재영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정책과장. ⓒ뉴데일리 이종현
    ▲ 왼쪽부터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성풍현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박재영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정책과장. ⓒ뉴데일리 이종현
    정부, 에너지 전문가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 있다

    토론자로 참여한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은 원자력의 안전성과 비용에 대한 오해, 재생에너지만이 최고라는 독선, 환경단체의 일방적 주장만 수용하고 원자력 전문가 의견은 배제한 불통 속에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에너지정책 수립 과정에서 에너지 전문가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며 전문가에 대한 일종의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가 존재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주 교수는 "지난해 정부 탈원전에 반발하며 성명을 낸 417명의 교수 명단이 (정부에) 있어 위원회 등에서 배제되고 있다"며 "정부가 예외적으로 1, 2명 넣어 면피하려고 하는데 블랙리스트는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반대로 환경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인물들은 관련 단체 이사, 감사, 이사장 등으로 포진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소통하는 정책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실제 탈원전을 주장하는 인사들은 원자력 관련 기관에 지속적으로 스며들고 있다. 작년 신고리 공론화 과정에서 탈핵 대표였던 강정민 씨는 원자력안전위원장으로 임명됐으나 '연구비 논란'에 휘말리자 지난 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전격 자진사퇴했다. 녹색연합 출신 석광훈 위원과 윤기돈 처장은 각각 한국안전기술원 감사와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상임이사로 선임됐다. 이들 외에도 에너지 관련 단체에 자리를 얻은 것으로 알려진 탈핵 인사 및 환경단체 인물만 20여명에 육박한다.

    "위험하지 않은 과학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은 작년 6월 예고도 없는 탈핵 선언으로 시작됐는데, 왜 하필 '탈핵폭탄'을 뜻하는 무시무시한 용어를 선택했는지 모르겠다"며 "탈핵이 탈원전으로 바뀌고, 신고리 건설 중지 반대 여론에 부딪치니 60년에 걸친 에너지 전환이라는 그럴듯한 말을 뒤늦게 들고 온 것이 문제의 시작"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에너지산업을 4차 산업과 연계해 성장동력을 만들겠다'고 정부가 공언하고 있는 점에 대해 "정부가 4차 에너지산업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에너지자원 빈국(貧國)이다. 당연히 석탄, 석유, 가스, 우라늄도 없다. 그는 "지금 만들고자 하는 것은 '전력'이고, 우리는 전기에 관한 한 '에너지 섬'에 살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며 "우리가 만든 전기를 배에 실어서 외국에 팔 수 없는데 무슨 성장동력인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에너지산업'은 기간산업(基幹産業), 즉 산업의 토대가 되는 산업이다. 이 교수는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력으로 TV도 보고, 영화도 보고, 산업체도 돌리며 다양한 생활을 향유하기 위해 쓰는 것이지, 전력생산을 위해 에너지산업에 인력투입이 많아지면 더이상 에너지산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모든 과학기술에는 위험과 환경 부담이 없을 수 없다. 태양광과 같은 신재생에너지는 물론, 원자력도 마찬가지다. 이 교수는 "인간이 만든 모든 기술 중 위험하지 않고 환경에 부담주지 않는 기술은 어디에도 없다"며 "안전과 환경을 보전할 수 있는 기술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위험이 수반되지만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하는 기술을 위한 제도와 법규를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재생에너지도 원자력처럼 民官 노력으로 경쟁력 갖출 것

    정부 측 인사로 토론회에 참석한 박재영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정책과장은 "정부는 미래 세대에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제공하기 위해 에너지전환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원자력의 단계적 감축은 에너지전환이라는 틀 안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에너지전환정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박 과장은 "대한민국 원전이 우수한 과학자들의 노력과 정부의 지원으로 세계최고의 안전성을 가지고 성장한 세계최고의 기술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한수원 부품비리와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 사용후 핵연료 대책 등과 관련해 국민 인식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비록 원자력이 60년간 감축되겠지만 원전 해체산업, 안전운영 등 새로운 분야에 대해서도 논의할 자세가 있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이어 그는 "원자력이 척박한 환경에서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듯이, 보급 초기단계인 재생에너지도 어려운 점이 있지만 민관(民官)이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주한규 교수는 "한수원 비리 사건은 불행한 일이지만,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과거 사건에만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 같다"며 "과거에는 환경단체가 원전에 대해 사실을 왜곡하고 공포를 과장해 오도했지만, 이제 국민들 인식이 바뀌어 7:3 비율로 원자력을 지지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반박했다.

    박 과장은 "(국민 10명 중 7명이 원자력 유지·확대에 동의한다는) 원자력학회 여론조사 결과는, 에너지전환 관련 기관의 다양한 조사결과 중 하나로써 정책에 참고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