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순 前한국원자력연구원장 "안전 고려하지 않는 과학은 없어"… '탈원전' 비판
  •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 3일 관악구 서울대학교 가온홀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원자력'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기륭
    ▲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 3일 관악구 서울대학교 가온홀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원자력'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기륭
    "저는 '탈(脫)원전'을 불가사의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핵물질을 만지고 살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저보다 방사능을 많이 맞고 산 사람이 없을 텐데, 그래서 (탈원전) 토론회 때 제가 그랬어요. '여러분 주장대로라면 저는 이 자리에 있어선 안 되는 사람'이라고. 방사능을 수십년 동안 맞고 살았으니까요."  

    강단에 선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귀에 또렷하게 들어왔다. 1940년생으로 올해 만 78세인 그는 지난 1979년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전신 원자력연구소에 입사, 2005년 퇴직할 때까지 27년간 근무하며 불모지였던 대한민국 원자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장 전 원장은 3일 관악구 서울대학교 가온홀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원자력'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원자력을 시작할 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앞이 깜깜했다"면서도 "30년 만에 세계 톱 수준이 된 원자력을 보면서 '우리 국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꼈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이날 강연은 서울대학교 트루스포럼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기술식민지 벗어나기 위해 원자력 외길 걷다

    대한민국은 1945년 해방의 기쁨을 맛봤지만, 여전히 경제·문화·과학기술 등 사회 모든 방면에서 식민지나 다름없었다.

    그는 "우리가 한국표준형원자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선진국에 자료 요구를 하면 쓰레기 같은 자료만 주고 진짜 자료는 거의 안 줬다"며 "자료가 있어도 주지 않고, '너희 주제에 무슨 원자력을 하느냐'고 보는 것, 이것이 후진국 과학자의 비애"라고 말했다. 이어 "거지가 부잣집에 밥을 얻어먹으러 가는 심정으로, 그런 심정으로 정말 수없이 밤을 새가며 일했다"고 부연했다.

    도시락도 없이 등교할 정도로 가난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장 전 원장은 학창시절 '피타고라스 정리'의 신비로움에 이끌려 수학자의 꿈을 가졌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은 그의 고등학교 담임교사였다. 그는 "선생님께 '수학자가 되겠다'고 말하니, '가난하면 수학을 하지 말고, 먹고 살 수 있는 화학을 하라'고 해서 화학을 했다"며 "그 뒤 원자력계에 와 40년을 살았고, 원자력을 했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우리 세대는 허리띠가 양식이었던 시기에 살았습니다. 배가 고프면 허리띠를 조르고 책을 읽었고, 먹을 것이 없어서 꿈을 먹고 산 세대가 우리 세대입니다."

    2009년 한국표준형원자로 UAE 수출 소식에 눈물

    장 전 원장의 젊음과 열정을 바친 한국표준형원자로는 지난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UAE)에 미국과 프랑스 등 경쟁국을 제치고 무려 400억달러(당시 47조원) 규모로 수출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그는 "대한민국이 아랍에미리트에 원자력 수출하는 것을 보고 잠을 못잤다"며 "밤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역사와 신화를 창조한 한국의 원자력 기술 자립'이라는 글을 썼다"고 회고했다.

    "30년 전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무모하게 '원자력 기술 자립'이란 사명감과 열정 하나만으로 연구 개발을 시작했을 때, 선진국 자료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서 체면도 자존심도 모두 버리고 기술식민지의 과학인으로 기술 구걸을 했던 것이 엊그제 같다. 이제는 떳떳이 원자력 기술 독립국으로 세계 원자력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새로운 역사와 신화를 창조한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역사와 신화를 창조한 한국의 원자력 기술 자립' 中)

    이같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한 선배 세대의 빛나는 성과에도, 자신 있게 '탈원전'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자랑하던 한국 원자력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장 전 원장은 "공포와 허구로 짜깁기한 '판도라'라는 영화로 원자력이 무너졌다"며 "국가 원수가 그걸 보고 눈물을 흘리며 탈핵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화가 나 잠을 잘 수 없었다"고 말했다.
  • 이날 장 전 원장의 강연은 서울대학교 트루스포럼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뉴데일리 이기륭
    ▲ 이날 장 전 원장의 강연은 서울대학교 트루스포럼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뉴데일리 이기륭
    원전 직원들도 목숨은 하나… 안전 고려하지 않은 과학은 없다

    애꿎은 원자력을 둘러싼 국민의 불안감에는 방사능에 대한 과도한 괴담과 무분별한 오해도 큰 몫을 차지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북태평양에서 잡힌 고등어, 명태 등을 300년간 먹으면 안 된다는 괴담은 유명하다.

    장 전 원장은 "모 대학 교수가 이 말을 꺼냈는데, 어떻게 교수가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누구나 원자력을 반대할 권리는 있지만 거짓말할 권리는 없으며, 반대를 해도 과학적 근거를 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날 부산대 법대 교수 한 분이 고리 원전 공청회 나와서 '해운대 사는데 고리 발전소 사고 날까봐 잠을 못잔다'고 말하는데 피가 머리까지 올라왔어요. '고리 원전에서 2천명이 일하고 있는데, 당신 말대로라면 지옥같은 곳에서 전기를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원전 사고난다는 말을 대학교수 양심으로 할 수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장 전 원장은 "탈핵단체 주장대로 원전이 그렇게 위험하다면, 발전소 직원들이 바보가 아닌데 거기서 일을 하겠느냐"며 "물론 일을 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들도 생명은 하나 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안전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학은 세상에 없습니다. 대체 얼마나 안전해야 안전한 것입니까? 교통사고가 위험하니 인도와 차로 사이에 벽을 세울 겁니까. 광부, 택시기사, 승무원 모두 위험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고, 인간이 만든 기계도 완전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안전을 위해 보수하는 것입니다." 

    부끄럽지 않은 선조 되려면… 원자력 외 선택지 없다

    원자력은 인간의 두뇌를 이용해 저렴하고 깨끗하며 많은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술이다. 이미 직면한 4차산업의 흐름 속에서 소요될 막대한 전기를 해결하기 위해선 원자력이 필수적이다. 장 전 원장은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세대가 후대에 부끄럽지 않은 선조가 되려면 원자력 외의 선택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100% '원자력 기술 자립'을 하면 원료값은 3% 수준으로, 우리 머리로 97%를 해낼 수 있지만 석유는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10%에 불과해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지금 세대가 원자력 기술을 후대에 제대로 물려주면 우리 후손이 고통 받지 않고 사람답게 살 수 있고, 우리도 부끄럽지 않은 선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선 '탈원전 정책 취소 국민투표 제안' 청원이 찬성 2만3천명을 기록하고 있다. 장 전 원장은 "한창 원자력 할 때 산자부 과기부가 막대한 지원과 격려를 해줬는데 하루아침에 원자력이 적폐로 몰렸다"며 "신고리 공론화 이후 여론이 많이 좋아져, 만약 다시 국민투표를 한다면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다고 본다"며 국민들이 청원에 적극 나서주길 간곡히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