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10km 떨어진 금문도 “독립보다 경제”

중국에 우호적인 국민당…한국 서북도서와 비슷한 입지, 다른 정서 눈길

허동혁 칼럼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12.03 17:44:21
▲ 킨멘(금문도) 위치. 중국 본토와 불과 10km 떨어져 있다. ⓒ허동혁

필자는 중국 샤먼(廈門)에 인접한 대만 최전방 도서인 킨멘(金門)섬으로 향했다. 중국의 코앞에서 벌어지는 자유 선거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에게는 금문도라고 알려진 이 섬은 중국어로는 ‘진먼’이지만, 공식영문 명칭은 현지어인 복건어 발음을 따서 킨멘(Kinmen)이라 부른다.

킨멘은 대만에서 270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인근 샤먼까지는 직선거리 10킬로미터, 배로는 30분 걸리는 인구 약 13만 명의 섬이다. 대만 정부가 국공내전 이후 1979년까지 계속된 중공군의 포격으로부터 지켜낸 섬이다. 당시 국민당군은 미군의 무기 제공과 ‘백단(白團)’이라 불리던 구 일본군 장성 및 장교들로 구성된 비밀 군사고문단까지 동원해 킨멘을 방어했다. 킨멘을 통해 대만해협의 제공권과 제해권을 장악한 덕분에 현재 대만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한다.

킨멘은 한국 언론인에게도 잊을 수 없는 섬이다. 한국인 종군기자가 킨멘에서 순직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최병우 논설위원은 당시 한국일보 장기영 사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킨멘 사상 최대의 포격전으로 불리는 1958년 ‘823포격전’을 취재하다가 탑승하던 상륙정이 전복돼 실종됐다. 관훈클럽은 이를 기려 ‘최병우 국제보도상’을 제정했고, 지금은 관훈언론상 국제보도 부문으로 계속 시상되고 있다.

필자는 킨멘에 오전에 도착하자마자 부속도서인 리위(烈嶼) 섬으로 향했다. 현지에서는 킨멘을 ‘大金門’, 리위를 ‘小金門’이라 부른다. 필자가 킨멘에 도착하자마자 리위 섬으로 향한 이유는 이날 킨멘현장(縣長) 선거에 출마한 무소속 후보 첸푸하이(陳福海) 현직 현장의 연설회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리위로 가는 배 안에서 첸푸하이 현장과 만났다. 거물답게 말끔한 모습이었다. 그는 입법위원(국회의원)과 현장 선거에 각각 한 번 씩 당선됐으며, 현장 재선에 도전 중이었다. 그런데 리위 섬으로 가는 배 안에서도 승객들은 국민당의 가오슝 시장 후보 한국유(韓國瑜, 한궈위)를 화제로 삼고 있었다.

킨멘의 국민당 지지율 평소 90% 넘어

▲ 국민당 킨멘현장 양전우(楊鎭浯)후보 유세 모습. 왼쪽에서 두번째가 장개석 총통 증손인 쟝완안(蔣萬安) 입법위원, 중앙이 양전우 후보, 맨 오른쪽이 국민당 인기 시의원 셰롱졔(謝龍介) ⓒ허동혁

킨멘은 국민당 지지율이 평소 90%를 넘는 지역으로, 집권 민진당이 현장 후보를 내지 못했다. 중공군과 맞서 싸운 국민당군과 그 가족·후손들이 킨멘 주민의 대다수인 때문에 국민당에 대한 주민 충성도가 강하다. 또한 대만 분리(독립) 정책을 시행하는 집권 민진당이 장차 킨멘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이들이 국민당을 지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첸 현장 역시 과거 국민당원이었던 親국민당 후보였다.

리위섬에 도착하니 ‘중화민국만세’ ‘무쇠 같은 군기’ 등 빨간 글자의 군사구호와 요새가 곳곳에 즐비하고, ‘823포전승리기념’ 이라고 적힌 거대한 포탄 조형물을 볼 수 있었다. 군대를 다녀온 필자로서도 금방 적응이 안 될 정도로 섬뜩했다.

첸 현장의 유세는 지역거물다웠다. 1천여 명 이상의 자원봉사자와 지지자들이 깃발과 플래카드를 들고 응원하며 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또한 무투표 당선이 확정된 국민당 현의원과 향장(鄕長) 후보들이 지원 차 와 있었다. 유세 참가자들에게는 지역 명물인 굴튀김 쌀국수와 생수가 제공되고 있었으며, NHK 기자도 와 있었다. 이렇게 이번 선거에서 서너 번에 한 번은 꼭 일본 기자들과 만났지만 한국기자들은 전혀 보지 못했다.

첸 현장은 유세 내내 복건어로 연설했다. 가오슝의 대만어 연설에서 자주 들리던 일본어는 들리지 않았다. 킨멘은 대만 영토 중 마쭈(馬祖)열도와 함께 일제의 지배를 받지 않은 지역으로, 킨멘에서 쓰는 복건어는 같은 언어인 대만어와 달리 일본어 차용단어가 없다.

재임 중 통수(通水)로 불리는 중국 대륙과의 수도관을 개통시키는 등 첸 현장은 대중교류론자이다. 첸 현장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구상 중인 킨멘대교(킨멘-중국 샤먼 간 대교)를 통해 중국의 정치개방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공산주의 침략대교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킨멘의 여러 후보들에게 청취한 결과 킨멘대교는 지역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다. 대륙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필자는 다시 킨멘 섬으로 건너가 무소속 현의원 후보 첸즈롱(陳志龍)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첸즈롱 후보는 작고한 부친이 현 의회 의장을 지냈고, 누나가 현역 3선 현의원인 지역 정치가 집안 출신이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스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 小金門 리위(烈嶼) 섬에 있는 '823전승기념포탄'. 1958년 8월 23일 중공군과 포격전에서의 승리를 기념한 포탄 조형물이다.ⓒ허동혁

그는 킨멘대교 구상에 대해 “킨멘대교에 대해 신중한 대만정부와 달리 이곳 주민들은 다리를 통해 대륙과 교류하고 싶어 한다. 이미 킨멘 주민의 절반 정도가 샤먼에 주택을 구입해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 관광객 대량유입에 따른 본토화(mainlandization)같은 걱정은 없다. 킨멘은 이미 대륙에 적응돼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킨멘 주민들은 대만에서 주로 쓰는 메신저 ‘라인’과 중국 메신저 ‘위챗’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었으며, 대만에서는 쓰이지 않는 중국의 휴대폰 결제 시스템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도 사용하고 있었다.

中본토와 연결하는 킨멘대교, 주민들 숙원 사업

그는 한국유 돌풍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 질문을 한다. 도민의 90%가 이미 국민당 지지여서 별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킨멘 선거는 (도서)지역 특성상 조직력 같은 인간관계가 당선에 절대적으로 작용하므로, 조직력 결속에 주력하고 있다. 당선되면 현재 매출이 감소중인 지역 특산품 킨멘 고량주의 판매촉진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최연소 후보인 그는 7명을 뽑는 킨멘 제2선거구에서 1등으로 당선되며 지역정치 가문의 실력을 발휘했다. 그의 누나는 내년 초 실시되는 입법위원 보궐선거 출마를 저울질 중이다.

이날 저녁에는 국민당 양전우(楊鎮浯) 킨멘 현장 후보 유세장인 야외극장으로 향했다. 1960년대 포격전이 한창일 때 지어진, 고즈넉한 운치를 가진 이 야외극장에서는 중국대륙이 공산화가 되지 않았으면 펼쳐졌을 법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날 유세에는 공교롭게도 바로 전에 방문한, 타이페이의 국민당 시의원 후보 연설회에서 악수만 하고 헤어진 장제스 총통의 증손자 쟝완안(蔣萬安) 입법위원이 와 있었다. 그 때문인지 라이벌 첸푸하이 유세 때보다 많은 3천여 명이 야외극장에 몰려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쟝 위원은 또다시 인사말만 하고 자리를 떠 그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는 표준 중국어를 사용하는 외성인(外省人, 국공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건너온 중국계 주민, 대만 인구의 약 17%)의 대표가문 출신이지만, 킨멘 유세에서는 유창한 복건어를 구사했다. 상당히 바쁜 듯 했다.

또한 국민당의 유명 시의원인 셰롱졔(謝龍介)가 지원유세차 와 있었는데, 그와는 긴 시간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연설을 가수 콘서트 하듯이 진행하는 것으로 이름난 인기 정치인으로, 민진당의 텃밭인 타이난(臺南)에서 이번에 1등으로 당선됐다.

▲ 킨멘 현직현장인 무소속 첸푸하이 (陳福海) 후보의 유세모습. ⓒ허동혁

듣던 대로 그는 유세장 중앙통로를 오가며 특유의 언변으로 청중들을 휘어잡았다. 마치 10킬로미터 떨어진, 자유 선거가 없는 중국에다 대고 ‘우리 부럽지’라고 떠들어 대는 듯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현재 대만 경제가 침체돼 있고,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어가는 와중에서 한국유가 나타나며 그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킨멘 경제도 별로 안 좋지만, 양안관계가 불안한데 킨멘 홀로 좋아질 리가 없다. 한국유가 킨멘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던져줄 것으로 믿고 있다” 고 주장했다.

공산당에 쫓겨났던 국민당, 오히려 중국과의 공존의식 강해

국민당 킨멘 현장 후보 양전우(楊鎭浯)는 현직 입법위원을 사퇴하고 현장에 도전하고 있었으며, 첸푸하이 현직 현장과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었다. 이날 셰롱졔 시의원의 달변과 한궈유 돌풍에 힘입어서인지 유세장은 들떠보였고, 양전우 후보는 신이 난 듯 했다. 그 역시 인터뷰에서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직장을 찾으러 떠나는 킨멘의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오게끔 섬을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 親국민당 후보들의 공통점은 경제를 강조하고, 킨멘대교 건설의지를 밝히는 등 대만에 비해서 중국과의 공존의식이 강했으며, 민진당의 대만완전분리 정책이 킨멘을 포기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거나 그런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필자는 이에 대한 킨멘의 민진당의 주장을 듣고 싶었다. 마침 다음날 아침 민진당 시의원 후보 출정식이 있어 달려갔다. 민진당 당세는 듣던 대로 약했다. 50여 명의 지지자들과 행정원 (정부) 킨멘 출장소 역할을 하는 ‘중화민국 복건성 정부’ 관계자들만 참석한 조촐한 출정식이었지만, 여러 대만 기자들이 국민당 일색인 이 고도(孤島)의 조촐한 집권당 출정식을 취재하러 와 있었다.

민진당은 킨멘 내 3개 선거구에서 총 19명을 뽑는 시의원에 단 1명만 공천했다. 지난 시의원 선거에서도 민진당은 1명만 당선시켰다. 민진당 시의원 후보 차이젠웨이(蔡建偉)는 국민당 후보들이 언급한 킨멘의 불안에 대해 필자에게 “킨멘 주민들은 이미 수십 년에 걸쳐 이런 상황에 적응돼 있다. 킨멘 대교는 중앙정부의 의지가 없으면 킨멘에서 아무리 주장해 봤자 소용이 없다. 킨멘이 무너지면 대만도 무너진다. 대만이 완전분리 된다고 해도 킨멘을 포기하는 일은 절대 없다. 공산주의가 싫으면서 공산당과 친하게 지내자는 모순을 깨달으면 그런 소리가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킨멘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무소속 현장 셰이쟝(謝宜璋) 후보를 찾아갔다. 그는 양강(兩强)인 무소속 첸푸하이, 국민당 양전우 후보 뒤를 따라가는 제3후보였지만, 킨멘에서 자주 목격한 그의 특이한 유세방식을 본 뒤 마지막 방문 후보로 택했다. 킨멘에 흔히 보이는 것이 킨멘 고량주와 군사시설물이다. 킨멘 고량주는 중국의 봉쇄로 인한 식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건조지대 식물인 고량을 킨멘에 도입하면서 양조하게 된 것이 기원이다. 킨멘의 지하수를 사용하여 군사용 터널 안에서 숙성시켜 고유의 맛을 지니며, 킨멘의 많은 선거 후보들이 홍보수단으로 대포 같은 무기나 고량주를 사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킨멘 고량당’이란 1인 정당도 있었다.

▲ 킨멘 현장 무소속 셰이쟝(謝宜璋) 후보의 유세차량. 대만에서 제작하여 킨멘으로 수송했다. ⓒ허동혁
셰이쟝 후보는 유세차량 외관을 장갑차로 개조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어렵게 그와 연락이 되어 찾아갔다. 국민당 현 의원을 지낸 적이 있기도 했지만 그는 건설업자였다. 한국 업체와도 거래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영어는 유창했다. 마침 시내 유명식당에 선거운동을 가는 길이라며 필자를 데려갔다.

그러나 그와는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식당에서 손님들과 고량주를 계속 들이키고 만취해 버렸기 때문이다. 지명도보다 기존 인간관계가 중요한 킨멘의 후보들은 선거운동을 이런 식으로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덕분에 킨멘을 대표하는 고량주와 ‘밀리터리 아이템’을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킨멘 현장(県長)선거, 국민당 박빙의 차로 승리

현장 선거는 국민당 양전우 후보가 약 1.6%(801표) 차로 무소속 현직 첸푸하이 현장을 누르고 당선됐다. 그리고 현 의원 선거에서 민진당은 불과 190표(0.73%)를 득표하는 참담한 성적을 내고 참패했다. 킨멘에도 국민당 가오슝시장 한국유 후보 바람이 확실하게 분 것으로 풀이됐다. 낙선한 첸푸하이 현장은 현재 입법위원 보궐선거 출마를 고려중이다.

킨멘은 모순의 섬이었다. 주민들은 대륙과 공존을 원하기에, 중국 관광객이 매일 천여 명씩 들어오고 중국의 모바일 서비스가 통용되지만, 인근 샤먼의 해안가에 희미하게 보이는 대형 선전구호인 ‘일국양제 통일중국’을 바라고 있지는 않았다. 킨멘의 공산화는 싫은 것이다.

주민들의 숙원사업인 킨멘대교도 중국 관광객의 편의 외에는 의미가 없어보였다. 킨멘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보통 의료기술이 발달한 대만에 항공편으로 후송하지, 인접한 샤먼으로 보내는 일은 없다고 후보들은 설명한다. 또한 한 親국민당 후보의 가족은 필자에게 “킨멘에 없고 샤먼에 있는 건 값싼 안마밖에 없다. 그냥 섬 생활이 답답하니 가끔 샤먼에 나들이 나가고, 관광객 더 끌어 들일려고 다리 놓자고 하는 것”이라며 킨멘 사람들의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보통 변경 지방의 정서는 중앙정부 정책과 동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예로 일본 홋카이도의 가장 동쪽에 있어 러시아 쿠릴열도와 가까운 도시 네무로(根室) 주민들은 일본 정부가 러시아에게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네무로 인접 북방 4개 도서 반환을 원하고 있지 않다. 반환될 경우 네무로의 주 수입원인 러시아와의 해산물 거래 감소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 小金門 리위(烈嶼) 섬에 보이는 군사구호. ⓒ허동혁

또한 육지와 한참 떨어진 섬의 경우 독자 생존을 위해 ‘갈라파고스화’ 되기 쉽다. 이번에 당선된 무소속 둥센포(董森堡) 의원은 최근 킨멘에 세워진 프랑스계 대형마트 ‘까르푸’를 ‘지역 고용경제를 위협한다’며 연일 비판하고 있다. 외딴 섬은 외래문화에 대한 두려움이 이렇게 폐쇄국가보다 더 심할 수도 있다.

대륙은 육안으로 보이고 대만과는 270킬로미터나 떨어진 킨멘의 정서가 대만 중앙정부와 다른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전임 첸푸하이 현장은 기존 小三通(킨멘-샤먼간 교통, 우편, 통상 교류)에 이어 新三通(샤면과의 수도, 전기, 대교 연결) 정책을 추진하며 올해 8월 수도관을 개통시켰다. 신임 국민당 양전우 현장도 이 정책을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륙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중앙의 민진당 정부는 이런 정책에 미온적이다. 대만 중앙정부의 킨멘 포기 가능성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이 대륙과의 교류를 강화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원인으로 보였다. ‘킨멘 포기’ 공포는 킨멘의 공산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런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것이 킨멘의 우선 현안으로 느껴졌다.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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