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전 대통령은 2004년 남미 순방서 '기업 살리기' 강조… 文대통령 비슷한 상황 주목돼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사진은 지난 18일 파푸아뉴기니에서 대한민국을 향해 출발하기 직전 모습이다.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사진은 지난 18일 파푸아뉴기니에서 대한민국을 향해 출발하기 직전 모습이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G20 정상회의 등 5박 8일의 외교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출국했다.

    산적한 외교 일정을 감안하면 순방 과정에서 주로 북한 비핵화·대북 제제 완화 등이 논의될 전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미 순방에서 기업들을 칭찬한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도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시각이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11월 남미 순방 중에 브라질 교민 간담회에서 "한국이 발전한 진짜 이유를 브라질에서 새삼 깨달았다"며 "한국 기업에 대해 다시 한 번 평가하고 싶다"고 했었다.

    외교 중대기로… 경제도 풀어야 하는 '이중고'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남미 순방의 무게가 적지 않다. 여러 제반사항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G20, 한미정상회담 등 굵직한 외교 일정을 풀어가야 해서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은 세계 주요국들이 모이는 G20 정상회의 등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하는 상황이다. 미국과 북한은 지난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미북 고위급 회담이 북한 측의 무응답으로 열리지 않는 등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더군다나 북한은 26일 미국을 겨냥해 "인권 문제로 우리의 양보를 받아내려고 한다"며 비판의 수위를 올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미북 관계가 악화되기 전에 서둘러 한반도 관련 문제를 주요국과 조율할 필요가 있다.

    상황은 순탄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앞서 지난 10월 유럽 순방은 물론 11월 아세안·APEC 순방 일정 중에 있었던 정상회담에서도 대북제재 완화 등과 관련해 목소리를 냈었다. 그러나 여러 정상들이 CVID나 FFVD를 강조하면서 이견도 확인한 바 있어,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문재인 정부는 또한 이번 순방 중 현지시각으로 28일 체코 프라하에서 안드레이 바비시 총리와 회담을 갖고 원전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다음달 2일부터 4일까지 국빈 방문하는 뉴질랜드에서는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정책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재신더 아던 총리와 머리를 맞댄다. 어려운 외교일정 속에서도 경제 문제 또한 풀어가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남미 가는 文대통령, 盧 전 대통령의 2004년과 비슷

    남미로 떠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마음이 무거운 이유는 또 있다. 경제 관련 대외 현안 뿐 아니라 내부적인 현안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27일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출국 직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전화를 걸어 자영업자들을 위한 대책을 강구할 것을 지시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경제 문제에 깊은 고민을 안은 채 출국길에 나선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지표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장하성 전 정책실장을 경질하는 강수를 뒀다. 여기에 노조와의 문제도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고민거리다. 문 대통령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출범해 여기에서 노동문제의 해법을 찾고자 했지만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으면서 갈등이 커지는 양상이다.

    이같은 최근의 상황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미로 순방을 떠나기 직전인 2004년 11월과 비슷하다. 노무현 정부 역시 지난 2004년 11월에 전국공무원노조 파업 문제를 놓고 민주노총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내일신문〉은 이와 관련, 같은 달 15일 "민주노총과 참여정부가 대화와 타협 없이 각각 제갈길로 가는 결별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4년의 경기종합지수 추이 역시 지금처럼 긍정적이지 않았다. 2004년 3월 100.4이던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같은해 8월에는 97.1까지 연달아 하락했고, 선행지수 역시 3.6%에서 2.2%까지 하락했다.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의 동행지수 순환변동치 역시 지난 10월 31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산업활동동향' 자료에 따르면 6개월 연속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4년 남미 순방과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남미 순방이 겹쳐보이는 이유다.

    文 대통령도 기업 중요성 깨닫게 될까

    주목할만한 부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가진 2004년 남미 순방에서 우리 기업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연달아 꺼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11월 18일 브라질 교민 간담회에서 "독재정부 시절에는 권력과 결탁하고 권력의 특혜를 받기도 하고 금융상 혜택을 받으면서 경제를 해온 것이 사실이며 그 와중에 권력의 힘을 빌려 노동자 탄압하고 갈등을 빚어온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 한국 기업은 그렇게 해서 성공한 이익을 모두 한국에 다시 투자했고, 금을 사서 어디에 감추지도 않았고 해외 친척 집에 숨기지도 않았고 비밀계좌를 두지도 않고 전부 국내 기업활동에 재투자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기업의 애국심 덕분"이라면서 "우리 기업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성과라고 내놓는 제목들을 보면 기업들이 핵심적으로 한 것이고, 대통령은 그냥 뒤에 가서 밥 짓는데 부채질 한 번 해 준 수준 아니겠느냐"며 "(대통령의)실책 때문에 우리 경제가 다시 큰 홍역을 치르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경제가 반드시 어려움을 겪지 않고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잘하겠다"고 했다. '기업 기살리기'를 통해 밖으로는 세일즈 외교를 하고 안으로는 기업들을 독려한 셈이다.

    비록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대통령의 기업관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라며 확대해석에 선을 그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기업 인식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같은 해 10월 19일 시사저널 창간 15주년 축하 기고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러시아·인도·베트남 등의 해외 순방에서 한국의 위상을 지켜본 내용을 토대로 "밖에서 본 한국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었다"며 "실제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것은 우리의 상품이었다"고 회고했다. 경제지표가 어렵고 노조가 정부와 갈등을 빚는 시기에 세계를 상대로 뛰는 기업들을 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중요성을 늦게나마 인식한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도 2004년의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기업의 중요성을 인식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기업이 결국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미 순방을 통해 깨달은 것이 아니겠느냐"며 "대통령의 말 한마디도 규제권을 가진 행정부에는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