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행정구조의 특징' 비공개 강연서 피력… "쉽게 붕괴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 ▲ 태영호 전 주영북한공사가 지난 23일 저녁 서울 모처에서 가진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본 북한의 행정구조 특징'을 주제로 한 강연회에서
    ▲ 태영호 전 주영북한공사가 지난 23일 저녁 서울 모처에서 가진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본 북한의 행정구조 특징'을 주제로 한 강연회에서 "남한과 국제사회가 북한을 마르크스 레닌주의 공산국가로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밝혔다. ⓒ 뉴데일리DB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을 마르크스 레닌주의 국가들과 같다고 보지만, 북한의 현 체제는 과거 동유럽 국가들과는 다른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공산주의 체제'로 봐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태 전 공사는 지난 23일 저녁 서울 모처에서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본 북한의 행정구조 특징’이라는 주제의 강연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이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을 때 남한과 국제사회는 북한 체제의 붕괴를 기정사실로 믿고 있었으나 북한은 붕괴하지 않았다”며 “이는 북한이 소련 체제와 같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특수한 행정구조로 돼 있어 붕괴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김정일이 집권한 뒤 북한에서 ‘공산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표현을 삭제한 대신 ‘우리식 사회주의’를 주장한 것이 김씨 일가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국내에서 사용하는 ‘종북·친북’이라는 표현도 ‘종김·친김’이라 해야 정확하다고 주장했다.

    북한 체제가 쉽사리 붕괴하지 않는 다른 이유로는 엄격한 주민감시체계를 지적했다. 노동당, 행정기관에다 국가보위부의 협력자, 사회보안성의 협력자 등 최소한 4개의 감시망이 주민을 감시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여기다 모든 주민을 군사조직화하고 전시동원체계로 주민들을 옭아매는 것도 체제 유지의 수단이라고 봤다. 각 지역 노동당 위원회 아래에 ‘노농적위대 대장’과 ‘교도대장’이 있고, 여기에 속한 개인들은 보름치 식량과 생필품이 든 ‘비상 배낭’을 항상 비치해야 하며, 매월 마지막 토요일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행군을 하고, 각종 공사나 행사에 동원되는 등 국가 전체가 사실상 병영처럼 돼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북한 주민 생활, 평양과 지방만 차이나는 게 아니라 각 지방별 차이

    태 전 공사는 또한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통제하기 위한 수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방침등록대장’과 ‘월별 개인 평정서’이다. ‘방침등록대장’은 지도자의 각종 지시를 날짜별로 기록한 뒤 이를 주민들이 이행하는가 평가하는 장부이고, ‘월별 개인 평정서’는 사상교육이나 조직 생활의 성실성, 사생활까지 따져 기록하는 감시 장부라고 한다. 이런 장부 기록이 나쁠 경우에는 숙청 당하기도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북한 배급체계에 대해서도 한국 사회에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태 전 공사의 주장이었다. 그는 “북한 주민 대다수가 자신의 월급날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2013년 자신의 월급이 북한 돈 2900원이었는데 시장 환율로는 80센트(한화 약 900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사실상 의미가 없는 월급보다는 식량 배급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태 전 공사는 자신이 과거 북한에서 받았던 배급량을 소개했다. 그의 하루 식량 배급량은 500그램, 미성년 자녀 1인당 250그램 등으로 계산해 매달 25킬로그램의 식량을 받았다고 한다. 이를 시장가격으로 환산하면 20달러(한화 약 2만 2000원)에 달했다. 월급의 20배 이상인 것이다. 여기다 직장 내 지원부서에서 콩기름 3리터, 조미료 500그램, 설탕 1킬로그램 등 부식을 받았다고 한다. 이것이 또 10달러(한화 약 1만 1000원) 상당이었다고 한다. 즉 월급보다는 배급받는 물자가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었다. 여기다 외무성 직원만의 특권이지만 취직한 지 3년이 되면 집을 공급받았고, 직원 식당에서는 점심마다 무료로 국수를 제공해준 것도 가계에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에 따르면, 이런 배급 체계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모두 무너졌다고 한다. 이후 북한 주민들의 경제는 ‘각자도생’이 됐다고 한다. 또한 “북한 당국이 충성계급이 거주하는 평양만 잘 챙긴다”는 외부 세계의 분석 또한 정확하지는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양 시민들에 대한 특혜가 어느 정도는 있지만 그보다는 각 지역별로 먹고 사는 방식이 다르다고 봐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이 때문에 군대와 기업소, 지자체 등의 생활 형편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