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군부대 시찰 과정서 생긴 해프닝이 '유일 체계 10대 원칙' 불복종으로 비화
  • 지난 2103년 12월 9일 북한 로동신문이 장성택의 실각을 상세히 소개했다. ⓒ 연합뉴스
    ▲ 지난 2103년 12월 9일 북한 로동신문이 장성택의 실각을 상세히 소개했다. ⓒ 연합뉴스
    태영호 전 주영북한공사가 장성택 처형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14일 공개했다. 장성택 처형이 북한 내 정치세력들의 파워게임에 따른 '조직적 제거'가 아니라 우발적인 사건이었다는 게 요지다. 그리고 '처형'의 기저에는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 깔려 있다는 게 태 전 공사의 분석이다. 태 전 공사는 이날 서울 시내 모처에서 비공개로 열린 강연회에서 그같은 정황을 상세히 전했다. 

    국정원이 장성택 숙청 사실을 공개한 게 지난 2013년 12월 3일이다. 북한도 12월 9일 자 로동신문 1면을 통해 장성택의 실각을 상세히 소개했다. 당시 북한 당국이 나열한 장성택의 죄명은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저해하고, 최고사령관 명령에 불복해 파벌을 형성한 것"이다. 태 전 공사는, 강연에서 장성택이 저해한 '당의 유일한 영도체계'가 무엇인지 상세히 설명했다. 

    김정은, "수산사업소 활용 공군부대 식사 질 높여라"
    김정은은 2013년 3월 서해안에 위치한 북한군 항공 및 반항공군 연합부대를 시찰하는 과정에서 비행사들의 열악한 식사조건을 지적하며 “근처에 수산사업소들이 많은데 그곳들을 접수해 공군부대의 식사 질을 높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해당 기관의 관련자들은 난색을 보였다고 한다. 당시 서해안 수산업은 장성택이 관리했다. 장성택은 사업소들에서 나오는 수산물을 중국으로 수출해 조달한 자금으로 평양시의 타일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타일공장에서 나오는 건자재들은 김정은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각 지역 건설장들에 공급되고 있었다는 게 태 전공사의 설명이다.  

    장성택 "김정은 본인의 지시에 반하는 내용... 직접 토의해보겠다"
    그런데 관련 보고를 받은 장성택이 자신이 직접 김정은과 토의해 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수산물 수출과 타일공장 운영 자체가 김정은이 직접 비준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부는 장성택의 처사를 최고사령관 명령 불복종이라고 김정은에게 보고했다. 김정은은 삼촌이 어린 자신을 우습게 보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떨어뜨린 명령이 장성택 처벌이었다. 당과 수령의 권위를 절대화하고, 당의 노선과 방침에 대해 무조건성의 원칙을 지킬 데 대한 '10대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했기 때문이다.  

    특별군사재판에서 장성택은 '혁명의 대가 바뀌는 역사적 전환의 시기에 후계자 추대 문제에서 왼새끼를 꼬았다(딴 생각을 했다)"는 죄목이 더해졌다. 이 부분에 대해 태 전 공사는 "김정일의 후계자 결정 과정에서 둘째인 김정은 추천을 두고 장성택이 ‘장자혈통원칙’을 주장한 부분이 문제가 됐다"고 해석했다. 이 역시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세우는데 저해를 주는 사소한 현상과 요소에 대해 묵과하지 말고 견결히 투쟁해야 한다"는 10대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2013년 12월 12일 노동신문은 장성택이 특별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 판결은 즉각 집행됐다고 보도했다. 

    "10대 원칙'은 악마의 법, 北인권 문제의 근원"
    태 전 공사는 이날 강연에서 "10대 원칙은 북한의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악마의 법’이며, 북한인권문제의 원인을 제공하는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태 전 공사의 주장에 따르면 1960년대 북한 노동당에는 여러 파벌이 존재해 지금과 같은 수령 유일체제가 아니었지만, 김일성은 1967년 노동당 제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모든 파벌들을 제거하고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선포했다. 

    1970년대 들어와 중국과 소련의 후계자 실패로 인해 북한에서도 후계자의 배신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김일성의 2, 3인자는 김일성의 동생인 김영주와 김일성의 둘째 부인인 김성애 그리고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이었지만 "선대 수령을 배반하지 않을 후계자는 직계혈통밖에 없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되었고 김일성은 1974년 김정일에게 권력을 인계했다. 

    권력을 잡은 김정일은 1974년 4월 14일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원칙"을 공식 제정하고 당 권력을 장악했다. 김정일이 만든 '10대 원칙'은 제일 먼저 김일성의 가족 중 곁가지들을 정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했다. 수령의 직계혈통 후계 원칙으로 인해 북한의 2인자였던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와 김일성의 둘째 부인 김성애, 그리고 그의 자식인 김평일이 차례대로 권력의 자리에서 쫓겨났다. 

    태 전 공사는 2013년 새롭게 개정된 10대 원칙의 특징도 소개했다. 개정된 10대 원칙에는 김일성뿐 아니라 김정일도 신으로 추앙하고, 김정은을 노동당으로 표기하는 것으로 3대 세습을 원칙화했다. 또한, 북한의 기본 이념을 '김일성-김정일 주의'로 새롭게 규정하고 과거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와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표현을 삭제했다. 공산주의 이념 추구는 북한의 세습체제와 충돌하기 때문에 취한 조치라는 것이 태 전 공사의 설명이다. 

    "김정은, 세습 위해 프롤레타리아 독재 표현도 삭제"
    실제로 김정은은 집권 후 김일성 광장 옆 무역 청사에 걸려 있던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화를 제거해 공산 진영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새롭게 개정된 10대 원칙에는 수령의 유훈 관철로 핵무력을 강조했다. 또한, 10조 2항에는 백두혈통의 계승발전을 규정해 세습을 공식화했다. 

    '악마의 10대 원칙'은 북한 주민들의 맹목적인 희생을 강요했다고 태 전 공사는 말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혁명적 군인정신'이다. 1988년부터 1998년까지 10년간 북한강 상류에서 진행된 안변청년발전소 댐을 건설 과정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각종 사고와 질병,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당시 건설에 동원된 군인들이 수로용 갱도 공사 중 지하수맥을 건드려 갱도에 물이 차오르자 대피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 지하수 맥을 막는 과정에서 1개 중대 인원이 익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노동당은 이를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규정하고 전국에 장려했다. 태 전 공사는 이를 '북한판 가미카제 정신'으로 표현했다. 

    개인 집에 화재가 발생해도 북한 주민들이 자기 자식보다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먼저 지켜내는 황당한 현상도 이 10대 원칙 때문이라고 태 前 공사는 지적했다. 그는 북한 사회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악법 중의 악법인 10대 원칙 부터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