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교수의 세상읽기> 새 강연… '1919년 건국''1987년 민주화''이승만 친일파' 주장 등 조명
  • ▲ '김영호 교수의 세상읽기' 유튜브 캡처ⓒ
    ▲ '김영호 교수의 세상읽기' 유튜브 캡처ⓒ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한국현대사에서 왜곡되고 있는 9가지 거짓말을 살펴보고, 각 내용들을 비판적으로 파헤쳤다.

    김 교수는 <김영호 교수의 세상읽기> 새 강의로 지난 12일 '한국현대사 10대 거짓말은 무엇인가?' 편을 올렸다. 김 교수는 해당 강의를 통해 2018년은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한국 현대사와 관련해 많은 역사적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 6·25 북침설 ▲1919 건국설 ▲김일성 민족 ▲북핵은 남한을 노리지 않는다 ▲한국 민주화는 1987년 처음 이뤄졌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는 유일한 합법 정부가 아니다 ▲이승만은 친일파였다 ▲해방 후 북한이 한국보다 먼저 단독 정부 수립했다 ▲38선 분단 책임은 미국 탓 등 총 9가지의 잘못된 거짓말들을 언급했다. 마지막 한 가지는 시청자들이 뽑아줄 것을 당부했다.

    김 교수 주장에 따르면 첫 번째, 남한이 북한을 먼저 침략해 6·25 전쟁이 발발했다는 '김일성 북침설'은 김일성이 전쟁 책임을 남한에 전가하기 위한 거짓말이다. 이같은 사실은 소련·중국·북한이 사전에 긴밀히 공모해 6·25전쟁을 일으켰다는 소련과 중국의 극비문서 등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

    두 번째, 문재인 대통령이 주장하는 '1919 건국설'은 당시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영토·주민·주권이라는 3요소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다.

    세 번째, 우리 민족이 '김일성 민족'이라는 주장 역시 북한 3대 세습 전체주의체제를 옹호하기 위한 거짓말일 뿐이다. 

    네 번째, 북한이 갖고 있는 핵무기가 '민족의 핵'이기 때문에 남한에게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헛된 상상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정치적 위협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1987년 민주화가 최초로 실행됐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한국은 1948년 5·10선거에서 민주화가 처음 실시됐다.

    여섯 번째,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 전체를 통틀어 유일한 합법 정부가 아니라는 주장은 1948년 12월 12일 채택된 유엔총회 결의안 195(III)을 통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

    일곱 번째, 이승만 박사는 그의 책 '일본내막기'가 보여주는 것처럼 철저한 반일주의자임으로 친일파 주장 역시 잘못된 사실이다.

    여덟 번째, 소련 극비문서를 보면 스탈린이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20일 북한에 단독 정권 수립을 지시했다. 겉으로는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하면서 뒤로는 남한보다 훨씬 먼저 북한에서 단독 정권을 세워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해방 후 한국이 북한보다 먼저 단독 정부 수립에 했다'는 왜곡된 주장이다.

    아홉 번째 미국은 1945년 8월14일 스탈린에게 38선을 중심으로 일본군 무장해제를 할 것을 제의했고, 8월 16일 스탈린이 미국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미국과 소련의 합의에 의해서 38선이 그어지게 되었다. '미국이 38선을 단독 분할하고 남북 분단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것 역시 거짓이다.

    해당 강의는 유튜브 채널 '김영호 교수의 세상읽기(https://www.youtube.com/channel/UCy3ccMfJL911Wvk9x8XRVVg)' 또는 '뉴데일리TV(http://tv.newdaily.co.kr/)'에서 볼 수 있다.
  • [전문]
    - 한국현대사 10대 거짓말은 무엇인가?
    2018년은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뜻깊은 해에 우리 사회에서는 한국현대사와 관련하여 많은 역사적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는 “권력을 가진 자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문재인대통령이 나서서 아무런 역사적 근거도 없는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면서 역사 왜곡에 앞장서고 있다.

    문재인대통령은 평양남북공동합의문에서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북한과 공동으로 기념하기로 했다. 북한은 3·1운동을 김일성 아버지 김형직이 주도했고 당시 8살에 불과했던 김일성도 적극 참여했다고 역사를 왜곡하여 선전하고 있다. 북한의 주장은 민족지도자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그 운동을 주도했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도 문재인정부가 어떤 역사적 공통분모를 근거로 공동 기념행사를 하겠다고 하는 것인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에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한국현대사 관련 10대 거짓말은 어떤 것들인지 살펴보고 그 왜곡 내용을 비판적으로 파헤친다.

    한국현대사 첫 번째 거짓말은 남한이 북한을 먼저 침략하여 6·25전쟁을 일으켰다는 ‘김일성의 북침설’이다. 김일성의 거짓 주장은 전쟁의 책임을 남한에 전가하기 위한 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 공개된 소련과 중국의 극비문서와 전쟁 중 노획된 북한군의 남침 관련 작전 문서들을 보면 소련-중국-북한 북방 공산 3국이 사전에 긴밀히 공모하여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탈린은 북한에 소련군사고문단을 1950년 2월에 이미 파견하여 ‘선제타격계획’이라고 하는 3단계로 된 남침 계획을 작성하도록 했다. 이런 사실을 보면 ‘김일성의 북침설’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한국현대사의 거짓말은 문재인대통령이 주장하는 ‘1919년 건국설’이다. 그는 제19대 대통령으로 선서하고 취임했다. 역산해서 올라가보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48년에 취임했다. 문재인대통령의 주장은 대한민국이 1948에 건국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의 정체성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영토, 주민, 주권이라는 3요소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했고 국제사회로부터 외교적 승인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것은 1948년 민주혁명을 통해서 세워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세 번째 거짓말은 우리 민족이 ‘김일성 민족’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북한 3대 세습 전체주의체제를 옹호하기 위한 거짓말이다. 네 번째 거짓말은 북한이 갖고 있는 핵무기가 ‘민족의 핵’이기 때문에 북한이 남한에게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통일이 되면 북핵이 우리 통일된 민족의 유용한 핵무기가 될 것이라는 한국 내의 ‘쓸모있는 바보들“의 어리석은 주장도 이런 거짓말에서 나온다. 

    다섯 번째 역사 왜곡은 한국의 민주화가 1987년 처음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과 달리 한국 최초의 민주화는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1948년 5·10선거였다. 이 선거를 통한 ‘민주혁명’을 통해서 자유민주주의체제에 바탕을 둔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 

    여섯 번째 역사 왜곡은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 전체를 통틀어 유일한 합법 정부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1948년 12월 12일 채택된 유엔총회 결의안 195(III) 영문 내용을 교묘하게 왜곡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런 왜곡과 달리 이 결의안은 대한민국 정부가 남한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통틀어 유일합법정부라고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여기서 ‘합법성’이라고 하는 것은 자유선거를 통해서 주민의 자유의사가 반영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북한에서는 지금까지 자유선거가 실시된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 정권은 합법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일곱 번째 거짓말은 이승만박사가 친일파였다는 주장이다. 이승만박사는 모든 일생을 미국과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데 바쳤다. 그의 책 ‘일본내막기’가 보여주는 것처럼 그는 철저한 반일주의자였다. 그는 조지 워싱턴대학 학사, 하버드대학 석사, 프린스터대학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신념, 지식, 전략이라는 세 관점에서 볼 때 그는 동시대의 다른 인물들과 비교되지 않는 건국 지도자가 가져야 할 신념과 지식과 전략인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비르투’를 가진 인물이었다. 

    여덟 번째 거짓말은 해방 후 한국이 북한보다 먼저 단독 정부 수립에 했다는 주장이다. 그런 냉전 종식 이후 공개된 소련 극비문서를 보면 스탈린이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20일 북한에 단독 정권을 수립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그 직후 북한은 북조선임시위원회를 만들어 토지개혁을 하고 인민군을 창설했다. 이런 사실은 소련이 미국과 모스크바3상회의 합의에 따라서 겉으로는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하면서도 뒤로는 남한보다 훨씬 먼저 북한에서 단독 정권을 세워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홉 번째 역사 왜곡은 미국이 38선을 단독으로 분할했고 분단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공개된 미국 외교문서에 따르면 미국이 1945년 8월 14일 스탈린에게 38선을 중심으로 일본군 무장해제를 할 것을 제의했고, 8월 16일 스탈린이 미국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미국과 소련의 합의에 의해서 38선이 그어지게 되었다. 냉전 후 공개된 소련문서에 따르면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투하되고 일본의 항복이 분명해졌을 때 소련은 당일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150만 병력을 동원하여 ‘8월 폭풍작전’을 감행하면서 만주와 북한 지역으로 물밀 듯이 밀려왔다. 만약 미국이 38선 분할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당시의 군사적 상황으로 볼 때 한반도 전체가 소련의 군사점령 하에 들어갔을 것이고 남한은 동구권처럼 공산화되고 말았을 것이다. 미국이 제한하고 소련과 합의 하에 그어진 38선은 남한의 공산화를 막는 데 기여했다. 열 번째 한국현대사 거짓말은 이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이 나름대로 뽑아볼 것을 제안한다. 

    김영호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

    약력 :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박사
    전 청와대 통일비서관
    전 외교부 인권대사 
    일본 게이오대학교 교환교수 역임

    현재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

    주요 저서 : 
    대한민국과 국제정치 (성신여대출판부, 2018)
    한국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 (북앤피플, 2018, 편저)
    대한민국의 건국혁명 1, 2 (성신여대출판부, 2015)
    정치학적 대화 (성신여대출판부, 2015)
    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과정 (성신여대출판부,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