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자 공개 직전 '시민 검증' KBS 방식 도입 주장… "방송사 사장 선출에 지나친 개입" 비판
  • 장해랑 한국교육방송공사 사장이 지난달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방송공사(KBS)와 한국교육방송공사(EBS)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장해랑 한국교육방송공사 사장이 지난달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방송공사(KBS)와 한국교육방송공사(EBS)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최근 민노총 산하 언론노동조합이 지상파 4사의 보도·편성·인사권까지 영향을 미치는 산별 협약을 맺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EBS 사장 선출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다른 방송사와 다르게 방송통신위원회가 전권을 가지는 EBS사장 선출 방식을 두고, 언론노조가 "방식을 바꿔야한다"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교육방송공사 EBS는 5일 사장 후보자 11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장해랑(62) 현 EBS 사장도 연임에 도전했다. 후보자 가운데 EBS 출신 인사는 장해랑 사장을 포함해 총 6명이다. 김석태(58) EBS 융합미디어본부장, 노건(57) EBS 광고사업부 광고전문위원, 류현위(55) EBS TV프로그램 심의위원, 박치형(57) EBS 진로직업청소년부 PD, 정연도(60) 전 EBS 기술관리국장 등이다. 

    EBS 출신 이외에도 김영호(62) 전 KNN 본부장,  양기엽(60) 전 CBS 보도국 해설위원장, 이상범(61) 한국영상대 영상연출학과 교수, 정훈(67) 한국디엠비(QBS) 방송고문, 최진용(60) 전 제주 MBC 사장 등이 지원해, 후보자는 모두 11명이다. 

    앞서 2일 유규오 전국언론노조 EBS 지부장은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방송독립시민행동'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EBS도 사장선임 과정에서 시민 참여 절차를 보장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방송독립시민행동은 전국언론노조와 한국기자협회,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241개 단체로 구성된 단체다.

    언론노조, 갑자기 사장 선출 문제 딴지

    KBS, MBC 등 다른 방송사와 EBS의 사장 선출 방식은 다르다. EBS는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제9조 제2항에 따라 방통위가 전권을 가지고 있다. 방통위원장이 방통위 동의를 얻어 사장을 임명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8월 EBS 사장 공모에서 방통위는 총 21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를 진행, 최종적으로 장해랑 신임 사장을 임명했다. 지난 정부 때 임명된 우종범 전 사장이 임기 15개월을 남기고 사의를 표명하며 발생한 공석이었다.

    장해랑 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이력이 있어 사실상 친(親)정부 인사로 분류됐다. 이에 지난해 사장 선임 당시 '코드인사' 논란이 강하게 일었다. 그러나 눈여겨 볼 점은 언론노조가 최근 돌연 장해랑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지난 8월 언론노조 EBS 지부는 장해랑 사장이 허욱 방통위 부위원장과 수도권 UHD 송신설비 지원 밀실협약을 맺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방송법상 EBS 송신시설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KBS인데, 허 부위원장이 수도권 UHD 방송을 위한 비용을 EBS가 일부 부담하는 방향을 제안했고 장 사장이 해당 각서에 서명을 했다는 주장이다. 급기야 지난달에는 EBS 전 직원 579명 중 498명이 장 사장의 사퇴 요구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해랑 사장은 연임에 도전하며 제출한 지원 동기서에 "86%의 사원이 저를 반대한다는 여론의 엄중함을 잘 안다"며 "노조를 경영파트너로 인정하고 논의 중인 편성규약 등 공정방송 장치들을 충분히 보장해 회사 발전을 도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정을 아는 기타 많은 후보자들 역시 이번 사장 공모에서 '노사 갈등' 등을 주요 키워드로 언급하고 나서는 상황이다.

    지상파 보도·편성에 인사까지 노조 영향?

    현재 언론노동조합은 지상파 4사와 보도·편성·인사권까지 영향을 미치는 산별 협약을 맺은 상황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사장 선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상파 4사는 지난 6월 노조 측과 산별 교섭을 시작해 8월 31일자로 △공정방송 △제작 환경 개선  △지상파 방송의 공정성 강화 및 진흥 등의 합의안을 도출했다. 산별 협약의 핵심은 공정방송이다. 이를 위해 노사 동수의 관련 기구 설치를 의무화했다.

    윤창현 SBS본부장, 김연국 MBC본부장, 이경호 KBS본부장, 장해랑 EBS사장, 양승동 KBS사장, 최승호 MBC사장, 박정훈 SBS사장은 언론노조와 해당 협약에 서명한 상황이다.

    지난 2일 방송독립시민행동은 방통위가 위치한 경기도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EBS 사장 선출도 '국민 검증'을 거쳐야한다"고 주장하면서 KBS 사례를 들었다. KBS는 이번 사장 선임 때 170여명의 시민자문단의 평가를 40% 반영하는 제도를 새롭게 도입했다.

    그러나 이 역시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문단에서 결정한 후보 선택 결과가 비공개라는 점 △자문단이 후보를 평가하는 채점표가 이사회 측의 채점표와 배점 구성이 다른 점 △이전에 없던 '인사검증자료'를 자문단에게 제공한다는 점 등에서다.

    이에 일각에서는 "언론노조가 장해랑 사장에게 각을 세우는 표면적인 문제는 수도권 UHD 수신비용의 문제지만, 사실 언론노조가 공영방송사 사장 선출에 지나치게 개입해 떼법을 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섞인 시선도 나오고 있다.

    한편 방통위 측은 "국민 참여를 확대하고 절차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후보자들의 주요 경력과 업무수행 계획서를 방통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후보자들에 대한 국민의견을 수렴해 최종적인 사장 임명에 활용한다.

    방통위 홈페이지(https://kcc.go.kr/user.do)에 접속하면 EBS 사장 후보자 11명의 지원동기 및 주요 이력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방통위는 9일까지 국민의견 수렴을 실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