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초대 경무국장' 부각해 1919년 건국론 강조… 건국대통령, 헌법, 국회 정당성 잃게 돼
  • ▲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서울 용산구 백범 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73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뉴시스
    ▲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서울 용산구 백범 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73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뉴시스

    25일 열린 '경찰의 날' 73주년 기념식이 여러모로 논란이다. 경찰의 날은 10월 21일이다. 경찰청은 나흘의 지연에 대해 "일요일을 피해 행사 날짜를 잡았다"고 이유를 밝혔지만, 다른 속내가 있었다는 전언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유럽 순방 일자 때문에 늦춘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관례적으로 참석하던 행사다. 대통령 일정을 고려했다는 사실을 굳이 감출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진짜 논란거리는 일정이 아니라 장소다. 통상 세종문화회관·광화문에서 진행되던 행사가 뜬금없이 백범 기념관으로 옮겨 갔다. 백범 김구와 경찰 사이에 무슨 관계라도 있을까?

    행사 당일 대통령의 기념사를 들여다보면 답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99년 전인 1919년 8월 12일,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에 취임하며 대한민국 경찰의 출범을 알렸다"며 "'매사에 자주독립 정신과 애국안민의 척도로 임하라'는 '민주경찰' 창간호에 기고한 선생의 당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경찰 정신의 뿌리가 됐다"고 했다.

    경무국장은 지금으로 치면 경찰청장이다. 백범 기념관이 행사 장소로 낙점된 건, 바로 백범의 임시정부 경무국장 경력 때문이다. '경무국장'이라는 타이틀은 다소 생소하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직접 김구의 경무국장 이력을 언급한 것에는 다른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919년 건국설'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현 정부는 대한민국 건국을 1948년 8월 15일이 아닌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한 1919년 4월 11일로 보고 있다. 당시 중화민국 땅에 세워진 임시정부는 '항일·광복', 즉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망명정부'다. 그렇기에 임시정부 '대한민국 건국강령'에서는 임정 활동 기간을 '건국기 이전의 나라를 되찾는 복국기간'으로 한정하고 있다.

    "건국 시기로 들어가는 과도적 단계"...김구도 강조했는데

    김구 역시 '국내외 동포에 고함(1941)'이란 성명에서 "우리가 처한 현 단계는 건국의 시기로 들어가려는 과도적 단계"라고 밝힌 바 있다. 사실상 임정이 당초 목적으로나 결과적으로나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준비단계였음이 명확해지는 사료다. 그럼에도 이는 '분단 이전 남북 공동의 역사'라는 점에서, '남북 공동체론'을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에 의도치않게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1919년 건국론'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국가 구성의 4개 필수 요소인 영토, 국민, 정부, 주권은 차치하고 당장에 드는 의문만 수십가지다. 만약 1919년 건국이 맞다면, 왜 3000만 국민이 45년까지 일본 국적자로 살았나. 이승만·김구는 이후에도 왜 독립운동을 했나. 

    1948년 총선, 국회, 제헌… 모두 정당성 잃을 판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1919년 건국설을 고집하면 1948년에 실시한 총선, 국회, 헌법 제정이 모두 정당성을 잃는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금이 간다는 이야기다. 두 개로 쪼개진 분단국에서 한 진영의 국가 정통성이 사라진다는 게 뭘 의미하나. 최근 역사교과서에서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 '자유민주주의' 표현이 빠져 나라 전체가 들끓었던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반면 북한은 지난 9월 9일에도 '공화국 창건일' 기념 행사를 가졌다.

    이런 상황에 최근 정부·집권여당은 계속해서 이해하기 힘든 논리를 펼치고 있다. 국군의 뿌리는 광복군이고, 경찰의 뿌리는 김구라는 것이다. 임시정부 법통을 부인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임정을 떠받들려면 '1948년 건국'과 '이승만'도 배제시키지 말아야한다. 김구가 임정 초대 경무국장을 지내기에 앞서 초대 국무총리·대통령이 이승만이었다는 사실은 왜 쏙 빼놓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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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공권력보다 인권 강조... 경찰 힘 빠져

    1919년 건국론을 펼치기 위해 경찰과 김구의 연결고리를 찾아낸 점까지는 또 그렇다 치자. 그러나 이번 행사는 '경찰의 날' 역설적이게도 경찰 힘을 도리어 쏙 뺐다는 내부 비판도 낳고 있다. 문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공권력보다 시민의 인권을 강조한 것이다.

    이날 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약속한다. 더이상 공권력의 무리한 집행으로 국민과 경찰이 함께 피해자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이 과거와 다르게 시민의 기본권·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도록 집회시위 대응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고 칭찬한 직후에 덧붙인 말이다. 자칫 과거 경찰이 행사한 공권력에 대한 부정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현직 경감이 "불법 시위대와 타협은 안된다"고 호소하며 경찰청 앞 1인 시위를 벌인 사실을 문 대통령은 알고 있을까.

    대통령의 얘기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일화가 하나 있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경찰 관계자의 웃지 못할 발언이다. "요즘 집회를 나가면 시위꾼이 무슨 짓을 해도 지켜만 봐야지, 함부로 제재 가했다간 어휴 큰일나요. 걱정말고 다녀오시라고 저희가 화장실 가는 길도 '에스코트'합니다."

    경찰의 날은 건국·구국·호국 경찰로서 역경과 시련을 극복한 경찰사를 되새기고 선진조국 창조의 역군으로서 새로운 결의를 다지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1945년 10월 21일 미 군정청 산하 경무국이 창설된 이후 1948년 처음으로 기념행사를 가졌다. 1957년 11월 내무부 훈령에 따라 이날을 '경찰의 날로' 지정했다. 

    '임정 법통' 계승한 대한민국 정체성을 말할 수는 없었나

    '경찰의 날'을 기념하려거든 "불법·폭력 시위에는 단호한 공권력"을, '건국'을 기리려거든 "1919년 임정 법통을 계승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외쳤어야했다. 이번 기념식이 누굴 위한 행사였는지 모르겠다. "정권의 명분을 위해 위인과 경찰이라는 거대 조직을 이용했다"는 비판이 나와도 할 말이 없다. 이번 경찰의 날 행사에 다른 복선이 깔린 건 아닐 거라 믿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씁쓸한 이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교과서를 추진했을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발언도 문득 떠오른다. "전체주의 발상이다". 그때는 맞고 오늘은 틀리다? 당시 문 대표와 오늘의 문 대통령이 다른가보다. 1919년 건국을 못박아버렸다. 누구도 '건국'과의 연관성을 떠올리지 못한 경찰의 날, 백범기념관에서 말이다. 대한민국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들의 속내는 어땠을지, 갑자기 경찰총수로 자리매김한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이 행사를 봤다면 뭐라 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