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하지 않았으나 피할 수도 없었던 길이다. 결국 발길이 다시 서울구치소를 향하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스쳐간다"

     "지금은 소의 등에 말안장을 얹는 것만큼 힘든 상황이지만 만물은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한다. 툭툭 털고 일어나 지금의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

     "자유가 만개하는 ‘열린사회’는 저절로,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나도 내 방식으로 감옥에서 싸울 것이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 본다. 내 마음에 새겨진 투지와 희망을 어루만진다. 다시 시작하자!”

    2018. 10. 5. 서울구치소를 향하며, 허현준.“

     이상은 박근혜 정부 때의 청와대 행정관 허현준 씨가 서울구치소로 재수감되면서 남긴 소감이다. 판사의 언도가 나기가 무섭게 교도관들이 다가와 그의 팔목에 수갑을 채웠을 것이다. "찰칵!" 하고. 낮익은 소리다. 그 '찰칵'이야말로 한국 현대정치사의 상징음(音)으로 칠 만하다.   

       처연하다.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은 그렇게 해서 다시 구치소로 갔다. 그는 1980년대엔 전북지역 주사파 학생운동 리더의 하나였다. 그러다가 그게 잘못된 길인 줄 깨치고 자유주의자가 되었다.

       이런 과정은 ‘민주사회주의자’임을 자임하던 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가했다가 스탈린주의의 죄악을 발견하고 그 누구보다도 치열한 반(反)전체주의자로 나아간 것과 결국은 다 같은 것이다. 진정으로 진보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스탈린과 새끼 스탈린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더 치열하게 반대할 수밖에 없다.

        허 행정관은 그 후 자유주의연대에서 활동하다가 근년엔 박근혜 정부에 가담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붕괴와 더불어 청와대 관련 뭔 사건인지에 ‘졸(卒)’로 몰려(그 자신의 말)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되었다.

     그가 법률적으로 사건에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는 필자는 잘 모른다. 본인, 변호사, 판사. 검사가 더 잘 알 것이다. 그러나 나도 나만이 더 잘 아는 것이 있다. 필자는 노무현 정부 때 그를 포함하는 일단의 젊은 자유주의 운동가들과 만난 적이 있다. 필자의 눈에 보인 그는 한 마디로 매우 겸손하고 신중하며  인간적 신뢰감이 가는 과묵한 일꾼 스타일이었다. 이 점만은 필자는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쓸쓸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다시 구치소로 발을 옮기는 장면을 상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그는 강인한 정신력을 잃지 않고 ”다시 시작하자“며 오히려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그는 역시 투사이고 전사(戰士)다.

       그는 말한다. ”고모부와 그 가족을 고사포로 총살하고, 이복형을 독극물로 살해하고, 리설주 성추문이 알려졌다 하여 은하수악단 단원들을 화염방사기로 태우고, 체제를 비난했다거나 간첩으로 몰아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고, 폭력을 동원한 극한의 훈련으로 어린아이들의 집단체조를 연출하여 수령체제를 선전하는 패륜적 범죄자 김정은을 부추기고...“

       그렇다.  억장이 무너지게 만드는 세상이다. 이 처절한 시대적 고통만 잘 반추해 삭히면  그는 오래지 않아 다시 사회로 나와 자유대한민국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게 마련이고, 시간이 흐르면 감옥문은 열리게 마련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건 변하고 바뀌게 돼있다. 그 때쯤이면 허현준 씨는 더 원숙한 사색인(思索人)이자 활동가로 거듭나 있을 것이다.

       허현준 씨, 건강만 잘 유지하십시오. 그리고 절대로 증오심에 불타지는 마십시오. 그렇다고 종교인들처럼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나의 수준에선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감방에 넣은 진영 사람들처럼은 되지 마십시오. 우리 정말 그렇게는 되지 맙시다. 보기 아주 안 좋습디다.

       그 대신 넬슨 만델라처럼 생각하도록 노력합시다. 그가 긴긴 옥중 생활에서 가장 걱정했던 건 자신이 누굴 반대하는 나머지 혹시 너무 편향적인 사람이 되진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멋있는 이야기  아닙니까? 진지하게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러다가 자신도 닫힌 마음으로 굳어지지 않을까를 우려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권력자들인 586 운동권이 바로 그렇지 않습니까?

      두껍게 껴입으세요. 겨울 감방, 정말 춥습니다. 나도 그 때 귀에 동상이 왔다니까요. 허현준 씨,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홧팅!. 이 기회에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들과 더 깊고 뜨거운 사랑과 친교(親交) 익히세요.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2018/10/15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